"17년간 목표 없던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
"17년간 목표 없던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
"17년간 목표 없던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
2014.08.05 14:45 by 황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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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사람이 가장 빛날 수 있는 공간이야. 너희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이곳에 섰을 때 얼마나 빛나는 존재가 되는지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연을 잘 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아. 무대에 서 있는 너희들 그 자체가 감동이야.” 

공연 시작 전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치기 바쁜 아이들 사이에 선 이기봉 강사는 으름장을 놓기에 앞서 아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이 진지한 말이 끝나자 들떠있던 분위기도 잠잠히 가라앉았다. 초대된 관객은 아무도 없는 특별한 공연장. 서로가 무대의 주인공이자 관객이 될 아이들은 까만 눈을 모아 한 곳을 응시하고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7월29일부터 31일까지 경기도 용인시 용인대학교 문화예술대학에서 진행된 보육원 퇴소 대상 청소년 자립지원 프로그램 ‘드리밍 버터플라이(Dreaming Butterfly)-꿈꾸는 예술 캠프’의 한 장면이다. 

도이치은행그룹과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ARCON)이 함께 하는 ‘드리밍 버터플라이’는 만18세가 되어 보육원을 퇴소하는 청소년들이 보육원 퇴소 이후에도 스스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립 능력 개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자립에 필요한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을 통해 자립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2박3일간 진행되는 ‘꿈꾸는 예술 캠프’도 프로그램의 연장선에서 연극, 미술, 게임, 토론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이어간다. 캠프의 정점은 이튿날 열리는 공연. 전국 8개 보육원에서 모인 92명의 아이들이 각각 4개의 모둠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공연을 선보였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선 오렌지 팀은 공포를 주제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펼쳤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난도질 당하는 자아를 표현한 공연은 진지하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린팀은 사랑을 주제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용기내 표현했다. 각각의 족쇄들을 몸에 달고 등장한 아이들이 굴레를 스스로 집어 던지는 과정이 담겼다. ‘당당하게 살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용기를 내자’고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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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등장한 블루팀의 주제는 꿈이었다. 작은 나무 막대를 든 아이들이 합심해 여행, 자동차, 좋은 집, TV스타 등 형상화 된 꿈을 만들었다. 꿈을 소리쳐 말하는 퍼포먼스도 이어졌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솔직한 대답부터 좋은 대학 입학, 태권도 국가대표, 중소기업 직원, 은행원 등 개성만큼 다양한 꿈들이 쏟아졌다. 한 아이는 “17년 간 목표 없이 살아온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진솔한 고백을 했다. 마지막 옐로우 팀은 탈출을 주제로 무대에 섰다. 작은 빛을 쫒아 몰려가다가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퍼포먼스를 통해 덩달아 꿈꾸는 희망에서 탈출해 자신만의 희망과 꿈을 찾아가자는 메시지가 전달됐다. 

공연은 편의상 연극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만 꿈을 향한 몸부림이자 하나의 놀이이며 해방의 도구였다. 나를 뽐내기 위해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회복하고 온전히 바로 서게 만드는 기회였다. 무대에 선 아이들에게 어설픈 모습이 존재했고 서로의 실수를 바라보며 종종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게 공연을 바라보며 서로의 꿈을 응원했다. 작은 박수와 따뜻한 격려가 더해지자 아이들은 달라졌다. 표정이 달라졌고 태도가 바뀌었다. 공연이 모두 끝난 후 이어진 축하파티에서 한 아이는 “나도 예쁘다”고 외치기도 했다. 캠프를 통해 당장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바뀔 일은 없지만 아이들 내부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달라진 아이들을 보며 누구보다 놀라고 있는 이들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보육원의 교사들이었다. 서울 시온원의 이애경, 대전 성우보육원의 이나연, 용인 선한 사마리아원의 김명숙 교사는 입을 모아 “우리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보육원 아이들은 방학이면 각종 단체에서 실시하는 캠프로 바쁜 스케줄을 보낸다. 그래서 어떤 캠프에서도 새로운 반응을 얻기란 쉽지 않다. 금방 싫증내고 새로운 자극을 주어도 쉽게 식상해한다. 그러나 ‘꿈꾸는 예술캠프’에서는 2박3일의 일정동안 스스로 작품을 만들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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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첫날 아침에만 해도 가기 싫다고 투정 부리던 아이들이 밝은 얼굴로 재미있다는 인사를 건네요. 이렇게 신기할 수가 없어요. 지난 해 다녀온 아이들도 올해 참여하는 친구들에게 ‘그 캠프 재미있어’라고 추천하더라고요. 또래 친구들을 만나 꿈을 확장하고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캠프이기 때문에 시간 때우기 식의 몇몇 행사와는 다른 것 같아요.” 

캠프를 기점으로 아이들은 일상 생활 기술, 경제, 직장 예절 등 앞으로 자립하는데 있어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 자존감이 회복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춘 이후 실질적 교육을 받을 때 더욱 효과가 크다. 김명숙 교사는 “지난 해 학교를 그만 둘 정도로 심한 문제 아이가 캠프에 참여했었다. 그 어떤 질문에도 부정적인 답을 하던 아이였는데 캠프 이후 긍정적으로 변했다. 3일 동안 또래 아이들과 생활하며 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캠프 내내 아이들을 인솔한 프로젝트 연의 이기봉 강사에게 달라진 아이들의 눈빛은 가장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강사이기에 앞서 세상을 먼저 살아온 어른으로서 이 험한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당장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마음에 앞서 진심으로 다가가고 아이들과 소통하려 한다. 

“아이들이 캠프에 오면 굉장히 무기력한 상태에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아요. 반응조차 없는 아이들에게 꾸준히 다가가서 진심을 전해야 해요. 진솔한 모습 그대로 다가가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고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하죠. 아이들도 진심을 느끼면 공감되는 순간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하죠. 관심이나 칭찬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칭찬하고 인정하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어요.” 

이기봉 강사는 아이들을 향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든지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꿈을 꿀 때조차 현실적인 테두리를 먼저 긋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는데 절대 가난한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실패하더라도 자존감은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겠지만 마음 안에 자존감과 긍정적인 가능성에 대한 싹을 틔우면 결국 아이들의 인생도 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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