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뱃속의 아이와 물에 빠진 아이 모두 무사하니 됐죠.”
이제 6개월을 갓 넘긴 딸 수아 양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전창희(34) 씨가 말합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하는데요. 다름 아닌 아내 정나미(27) 씨의 용기 있는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나미 씨는 지난 1월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했는데, 당시 그는 임신 6개월차 임신부의 몸이었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세종로의 정부서울청사에서 2014 생명수호지기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생명수호지기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와 소방방재청이 함께 각종 재난재해 현장에서 소중한 목숨을 구한 사람들에 수여하는 상으로, 올해는 7명의 생명수호지기가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나미 씨는 당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4 생명수호지기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처음엔 하늘을 보고 허우적댔는데…
이윽고 물속에 머리를 박은 아이의 모습에 위급함 느껴
“살려야겠다” 임신한 배 움켜잡고 얼음물에 뛰어들어


경기도 용인에 사는 정나미 씨는 임신을 하게 되면서 매일같이 인근의 경안천변을 운동 삼아 걸었다고 합니다. 지난 1월 21일도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던 중이었는데, 그날따라 평소보다 더 멀리까지 걷게 됐다고 해요. 방향을 바꿔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쯤이었을까요. 갑자기 한 할아버지가 공사장의 비닐 끈을 집어 들고 황급히 달려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나미 씨가 할아버지가 향하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놀랍게도 살얼음이 낀 냇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초등학생 김모(10) 군. 얼음 위에서 놀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몇 번이고 비닐 끈을 던졌지만 하천변에서 5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빠진 김 군에게 좀처럼 닿지 않았습니다. 주위에는 아이들과 노인 뿐, 모두 발만 동동 구르며 119를 부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주위에 저 말고는 바로 뛰어들어 구할 사람이 없었어요. 물론 뱃속의 아기가 걱정이 됐죠. 하지만 눈앞의 아이가 너무나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허우적대던 김 군이 이내 물속에 고개를 박고 의식을 잃어가던 찰나, 나미 씨가 물속으로 향했습니다. 영하 10도에 가까운 맹추위 속에서 살얼음이 낀 물을 헤집고 첨벙 첨벙 다가갔습니다.

“먼저 아이를 뒤집어 하늘을 보게 해 숨을 쉴 수 있도록 한 후에 다급히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어요. 아이의 의식은 희미한 상태였는데, 그 다음은 저도 너무 추워서 어떻게 해 주진 못했고, 주위에 있던 다른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다행히 수심이 허리까지 차는 정도여서 큰 어려움 없이 김 군을 구할 수 있었고, 주위를 지나던 한 대학생이 신속하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의식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도착한 119 구급대에 김 군과 나미 씨가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이들과 태아 모두 건강에는 큰 지장이 없는 상태. 천만 다행이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태아나 산모 모두 큰일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나미 씨는 임신부의 몸으로 어떻게 이런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요.
“오래 됐지만 수영을 배운 적이 있어요. 당시 선생님이 하셨던 ‘쉽게 사람 구하기 힘들다. 잘못 구하면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말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대학시절엔 교과과정을 통해 인명구조자격증도 취득했어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인명구조도 배운 거잖아요. 그때 배워뒀던 게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원래 신체적 능력이 탁월했던 나미 씨는 학창시절엔 배구를 했다고 합니다. 대학에서는 사회체육을 전공하며 인명구조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는데요. 지난 사고 당시 자신의 능력과 배운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지요. 이런 나미 씨의 모습, 이미 준비된 생명수호지기라고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엄마의 용기 있는 행동 덕분일까요, 주위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아서였을까요. 생후 6개월이 갓 지난 딸 수아 양은 또래들보다도 더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나미 씨에게 또 다시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날 일로 시어머니께서 많이 놀라셨어요. 다신 그러지 말라고 당부도 하셨죠. 그런데 글쎄요. 또 이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그리고 주위에 아무도 행동할 사람이 없다면, 그땐 또 제 몸이 먼저 움직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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