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죠? 이거 먹어요.”
선준이(가명‧11)가 슬며시 다가와 차가운 커피를 건넸습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입니다. 기자가 잔을 받아드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는 선준이. 3년 전만해도 사회복지사를 피해 책상 밑에 숨기 바빴던 아이였습니다.
무관심한 부모님들의 시선을 아이에게로 돌리다선준이가 웃음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명천사회복지관’(충남 보령시)의 부모자녀 관계 개선 프로그램 <힐링속으로> 덕분입니다. <힐링속으로>는 부모‧자녀 간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교육‧정서‧여가활동을 지원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소통을 돕는 이 프로그램은 <중부재단의 한울타리 사업>에 지원받아 벌써 3년째 운영되고 있습니다.
부모의 양육태도와 언어 습관은 자녀의 인격을 형성하고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 가족 간에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명천사회복지관 인근 지역의 경우, 한부모 가정, 탈북자, 저소득층, 독거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다 보니, 자녀의 양육보다 생계유지가 우선인 부모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소득층 밀집지역이다 보니 자녀들은 방임되기 일쑤고 범죄에도 노출되기 쉽죠. 하루에도 몇 번 씩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오가는 곳이에요. 이런 문제의 대한 해결책은 결국 가정 안에 있다고 봤어요. 명천사회복지관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이유입니다”
채유지 사회복지사의 말입니다. 이제 갓 4년차를 맞은 그녀는 <힐링속으로>와 함께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부재단에서 3년 연속으로 지원 받아,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대상자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다보니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도 커졌습니다. 이제는 각 가정들의 욕구에 부합할 수 있도록 세심한 상담을 통해 대상자를 선정하며, 밴드, 연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부모 교육을 받아야합니까?”라고 외치던 아버지의 변화<힐링속으로>는 놀라운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선준이 가족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적장애인 어머니와 형, 비장애인인 아버지 최지훈(가명‧47)씨와 함께 살고 있는 선준이는 가족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강압적인 양육태도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선준이의 말이나 행동도 거칠었죠.”(채유지 사회복지사)
<힐링속으로>에서는 선준이 아버지를 정기적으로 상담하고 부모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선준이와 함께 문화 체험 프로그램도 참여하도록 권했죠. 변화의 모습을 먼저 보인 건 아버지 최지훈씨였습니다. 아이를 향한 애착이 생겼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러자 아이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트였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습니다.
<힐링속으로>의 강점은 ‘지속성’입니다. 현재 프로그램 참여 가정 중 절반은 첫 해부터 함께 하고 있습니다. 꾸준한 상담과 교육이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낸 원동력입니다. 참가자들 역시 스스로의 변화에 대해 놀라워합니다.
“전에는 집에만 가면 짜증이 나고 답답할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하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가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에요. 진짜 힐링이 되는 셈이죠. 무엇보다 아이와 가까워졌어요. 이젠 어디가든 저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요.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게 자라는 아이가 안타깝고 기특합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요.”(최지훈 씨)
이러한 기적 같은 변화는 비단 선준이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아이의 단점만 나열하던 부모들이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아이의 장점을 자랑해요. 서로 칭찬하기 바쁠 정도죠.(웃음) 이런 관심 속에서 자란 아이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나요.” 채유지 사회복지사는 가정 내에서 시작되는 작은 변화들이 결국 아이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모두의 행복을 위한 내일을밴드, 연극 등 다양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성장해나가는 <힐링속으로>는 앞으로 더 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사회복지기관 프로그램은 하나하나 의미가 있을 텐데, 얼마나 꾸준히 운영할 수 있는지 여부도 중요한 것 같아요. <힐링속으로>는 그동안 중부재단의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프로그램을 안정화 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어서 더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채유지 사회복지사)
내년부터는 그동안 활동했던 것에서 나아가 유적지 탐방, 뮤지컬 관람 등 가족 중심의 문화 활동으로 프로그램을 확장시켜 갈 계획입니다. “<힐링속으로>의 핵심이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채유지 사회복지사. 그녀의 채비도 갈수록 분주해집니다.
“3년 동안 <힐링속으로>를 진행하며 결국 부모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하죠. 결국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웃음)”
중부재단의 한울타리 사업은 충청남도 지역사회 복지증진에 기여하는 복지서비스 및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복지기관과 단체, 시설을 지원합니다. 매년 1월 중, 지원기관으로 선정된 단체에는 지원금과 정기적인 슈퍼비전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