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가 관찰자 시점’
‘아트 인 메타버스’展 서효정 작가 인터뷰
어느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가 관찰자 시점’
2022.03.01 00:59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제 작업은 일종의 레시피를 만드는 일이에요. 그걸 수많은 관객들에게 공유하면, 각자 느끼고 이해한 방식으로 요리를 완성하는 거죠. 어떤 요리들이 탄생할지 궁금하지 않나요? 바로 그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이 제 작업의 묘미입니다.(웃음)” 

서효정(49) 작가는 스스로를 생산자이자 관찰자라고 말한다.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열린 세계를 만들어 놓고, 관람객들이 그 세계를 채워가는 모습을 관찰한다는 의미다. 작가의 의도나 메시지보다 중요한 건 참여와 체험을 통한 관객의 감상이라고 믿기에, 잡힐 듯 말 듯 난해한 예술을 관객들 손안에 덥썩 쥐어준다. 첫 작품을 선 뵌 지 벌써 18년이나 흘렀지만, 아직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한 것도 커리어 내내 관객들과의 ‘콜라보’를 추구했던 서효정 작가의 독특한 예술관 때문이다. 액션과 리액션 사이에서 완성되는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작업실이 아닌 전시장에서 마무리된다. 

 

서효정(사진) 작가
서효정(사진) 작가

| 과학 꿈나무에서 미디어 아티스트까지… ‘피벗’은 나의 힘
서효정 작가의 삶은 꽤나 분주했다. “좋아하는 일을 쫓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너스레에는 다양한 것에 도전했던 삶의 궤적이 녹아있다. 학창시절 과학을 좋아해 화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엔 돌연 패션에 빠져 디자인 분야로 학업을 연장했다. 서 작가는 “하나를 끝없이 파 내려가기보단, 하나를 깨치면 그걸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라며 “그러다보니, 디자인 분야가 가진 특유의 확장성에 금세 매료되더라”고 회상했다. 

서효정 작가가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 1995년은 우리나라 일반 가정에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기였다. 웹페이지들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멀티미디어를 포함하며 화려해졌고 마우스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급부상한 하나의 키워드는, 향후 서 작가의 인생을 관통할 키워드가 된다. 바로 ‘인터랙션(interaction‧상호작용)’이었다. 

“이전까진 그저 텍스트로만 만들어지던 웹페이지가 굉장히 다이내믹하게 바뀌더라고요. 특히 마우스 움직임에 따라 반응이 나타나는 인터랙션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화면 속의 데이터를 직접 만지는 느낌이 들어서 ‘이거다!’ 싶더라고요. 아예 ‘디지털 미디어’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진학해버렸죠.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제 작품 스타일이 나온 것도 그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거예요.” 

 

‘인터랙션 디자인’을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가 된 서효정 작가
‘인터랙션 디자인’을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가 된 서효정 작가

인터랙션 디자인의 세상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사물, 공간, 프로그램의 영역까지,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지점은 언제나 흥미로웠고, 그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깊어질수록 서 작가의 활동 범위도 점차 확장됐다. 그렇게 도달한 곳이 바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였다. 지도 교수의 무대 공연에서 무용수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영상작업을 도운 게 계기가 됐고, 2004년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의 체험 공간 설치 작가로 참여하며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 수용자 중심으로…디자인 전공자의 예술은 더 친절하다
서효정 작가의 독특한 이력은 그녀의 예술관에 고스란히 녹아 들었다. 화학을 배워 촉매의 가치를 중시하고, 디자인을 해봤기에 사용자경험을 적극 고려하는 식이다. 스스로 촉매제가 되어 관객과 예술의 화학반응을 유도하고, 기존 사물의 사용자경험을 비틀어 전혀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디자인에서는 디자이너의 의도나 원칙대로 제품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예술은 결이 달라요. 달리 해석할 여지를 열어두는 거예요. 작품의 형태를 통해 어느 정도의 행동은 유도하겠지만, 제가 제공한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받아들일지는 오로지 관객에게 달려있는 거죠. 제 작업이 관객에게 오픈되는 순간 비로소 시작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서 작가의 포트폴리오는 실제로 관객과의 ‘협업’으로 가득 차 있다. 관객들의 참여를 통해 이야기의 결말을 만들어 나가는 설치작품 ‘테이블 위의 백설공주’(2006), 음악‧안무가들과 협업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했던 공연작업 ‘Transformation 301’(2007), 일본 기타큐슈 지역 사람들과 함께한 워크숍을 통해 버려진 백화점 지하에 만든 박물관 시리즈 ‘사물의 기억 박물관’(2012) 등이 대표적이다.

 

[Transformation 301] P.Art.y (People, Art& Technology), 남산드라마센터 2007(왼쪽), [물의 형태] 물의 예술제, 일본시가현민예술창조관 2012
[Transformation 301] P.Art.y (People, Art& Technology), 남산드라마센터 2007(왼쪽), [물의 형태] 물의 예술제, 일본시가현민예술창조관 2012

그중에서도 ‘테이블 위의 백설공주’는 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2006년 일본 ‘오가키 비엔날레’ 출품 이후, 총 8회에 걸쳐 국내외 전시에 초대됐을 정도로 많은 관객들과 만났다. 관객들이 백설공주 인형을 어디에, 누구와 배치시키느냐에 따라 테이블 위의 그림자를 통해 다양한 갈래의 스토리텔링이 전개되는 관객 참여형 작업으로, 2013년 국내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일본에선 작품을 경험하신 동네 할아버지께서 다음날 할머니를 모시고 와 열심히 설명해주는 풍경을 목격했어요. 프랑스 전시에선 꼬마 관람객이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며 제 의도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작품과 소통하는 모습도 지켜봤죠. 작품을 ‘감상'한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처음으로 ’작가가 되길 잘했다‘고 느낀 시간이기도 했고요.”

 

[테이블 위의 백설공주] 오가키비엔날레, 쥬로쿠깅코 2006
[테이블 위의 백설공주] 오가키비엔날레, 쥬로쿠깅코 2006

| 관객에서 알고리즘으로, 협업의 대상을 바꾸다
전시장에서 비로소 완성됐던 서효정 작가의 예술 세계는 뜻하지 않은 시련에 좌초위기를 마주했다. 2020년 초입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펜데믹이었다. 관객과 호흡하던 서 작가에게 ‘비대면’은 ‘비활동’을 의미했다. 고민 끝에, 작품을 만드는 협업자로서의 관객의 존재 대신 컴퓨터의 계산 능력을 활용한 알고리즘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제너러티브 아트’(Generative Art‧정해진 규칙에 따라 우연적인 결과물을 생성하는 예술)를 인스타그램에서 선보이는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했다. 

이런 서효정 작가의 변신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지난 2월 21일부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다. 서효정 작가가 출품한 작품 <LoOP LOoP : Every day is a code>는 지난 2년 간 지속해온 고독한 실험이자,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인터랙션의 결과다. 

“팬데믹 상황 속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매일 코딩 작업을 하고 기록을 남겼어요.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의식 같은 거였죠. 우리 주변의 풍경이나 사물을 포착해, 이를 특정한 이미지로 표현해내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과 환경을 창작했다는 점에서 이전 작품들과의 연결점이 있는 거죠.” 

 

[LoOP LOoP : Every day is a code] 아트인메타버스, 아트스탠드 2022
[LoOP LOoP : Every day is a code] 아트인메타버스, 아트스탠드 2022

해당 작품은 서효정 작가가 지난 2년 간 매일 코딩한 이미지 중 자연의 물이나 바람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카테고리의 작품 15개를 추려 3개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순환되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를 위해 주기적으로 일정 범위의 값을 발생시키는 ‘웨이브(wave)’, 두 개 이상의 패턴이 겹쳐질 때 만들어지는 ‘모아레(moire)’, 주변 값에 반응해 일정 범위 내에서 변화하는 ‘펄린노이즈(perlin noise)’ 등의 알고리즘이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서효정 작가는 “이번 작품은 이미지를 생성하는 요소에 변수를 부여하고 반복적으로 그 값을 바꾸는 과정의 결과”라며 “프레임마다 펼쳐지는 고유의 이미지를 통해, 친숙하지만 낯선 자연현상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촉매제’로서의 아츠클라우드 역할에 큰 기대 
서효정 작가는 여전히 “전시장에 있으면 참 배우는 게 많다”고 강조한다. 관객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반응을 기록하는 작업은 스스로 더 강력한 예술적 촉매제가 되기 위한 노력이다. 이번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를 기획‧운영하는 ‘아츠클라우드’에게 강력한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도 그래서다. 

“전시가 결과이자 목적인 플랫폼은 많잖아요. 그런데 아츠클라우드는 이번 전시를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보는 것 같았어요. ‘훌륭한 디지털 아트와 아티스트를 한 곳에 모아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자’는 듯했죠. 작가, 작품, 관객, 기업, 세상의 화학반응을 기대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겠다는 거잖아요. 괜스레 친근감이 커지더라고요.(웃음)”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고부터 매일 본인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서효정 작가의 작업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고부터 매일 본인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서효정 작가의 작업들

서효정 작가의 예술 세계는 여전히 확장되고 있다. <LoOP LOoP : Every day is a code>의 모체가 됐던 데일리 코딩 작업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현재는 모교에서 디자인 강의를 하는 교수로서, 자신의 예술관을 후학들에게 계승하는 일에도 매진 중이다. 일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서 작가가 창작하고 가르치는 바로 그 ‘예술’이다. 

“즐겁고 흥미로운 것을 쫓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아마 작품 자체가 목표였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과정을 오롯이 즐기면서 작품이라는 결과물까지 얻은 셈이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창작자로서 관객과 예술을 잇는 구름다리가 되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보다 새롭고 즐거운 무언가를 던져주고 싶습니다. 예술은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사진: 서효정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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