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40년 전에 비해 60% 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난민연구기관인 국내난민감시센터(이하 IDMC)는 2014년 연간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1930만 명의 사람들이 자연재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해야만 했는데요. 2008년부터 7년간 연 평균 2,640만 명, 초당 1명꼴의 이재민이 탄생하는 셈입니다.
지난해 자연재해로 인한 이재민 발생 동향을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아시아에서 1,670만 명으로 전체 수의 87%를 차지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160만명‧8.3%), 아프리카(77만명‧4%)가 그 뒤를 잇습니다.
재해 유형별로는 910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태풍‧허리케인 등의 폭풍과 830만 명의 이재민을 낳은 홍수가 각각 48%와 43%로 가장 많았습니다.
붉은색이 짙어질수록 자연재해에 노출된 사람들의 수가 많음을 의미하는데요. 특히 아시아 지역이 짙은 붉은색으로 표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재해에 취약한 사람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요. 재난에 대한 방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로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왔기 때문입니다.
1970년 이래, 개발도상국에서의 도시 인구는 세 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중앙정부의 역할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진행된 이들 인구의 급속한 성장은 재난재해에 대한 노출과 취약성을 크게 높여왔습니다.
노르웨이난민위원회의 얀 에겔란드(Jan Egeland) 사무국장은 “재해에 수백만 명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은 불가항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취약한 건축물이나 잘못된 정책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2014년 2월, 인도네시아의 클루드(Kelud) 화산이 폭발해 최소 7명이 숨지고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이재민들의 피난생활이 장기화하는 경우도 많다고 보고서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1988년 발생한 아르메니아의 스피탁(Spitak) 지진 피해자들의 피난 생활은 벌써 26년 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난 이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피난민들을 ‘기후난민’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들은 낯선 공간에서 사회‧경제서비스를 보장받지 못한 채 위험하고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빈곤과 범죄, 성폭력, 사회적 갈등 등 이들의 현실은 다양한 문제로 얼룩져 있습니다.
10년째 기후난민, 파푸아뉴기니 마남 섬 주민들
파푸아뉴기니는 남태평양 서쪽 끝 뉴기니섬의 동반부에 위치한 섬나라입니다.
이곳은 가뭄‧홍수‧싸이클론‧산사태 등 기상재해를 비롯해 화산폭발‧지진‧쓰나미(지진해일) 등 광범위한 자연재해에 자주 노출되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도 상당히 취약한 곳이기도 하죠.
파푸아뉴기니에서 가장 많은 이재민을 초래한 자연재해 중 하나는 2004년 말 만당(Mandang) 주의 마남(Manam)섬에서 일어난 화산폭발입니다.
마남 섬의 주민 1만1000여 명은 15km나 떨어진 보지아(Bogia) 지역으로 피난해야 했고, 상당수가 정부가 제공한 임시 보호시설에 머무르게 됐습니다.
화산폭발은 마남 섬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땅으로 만들었고, 당국은 섬 이재민들의 대안적인 거주지를 고민해야만 했습니다.
땅과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임시 보호시설이 들어선 보지아 지역에서는 원주민과 이재민간의 긴장감이 높아져갔습니다. 정부는 보호시설이 들어선 땅을 국가 소유로 선언했지만, 원주민들은 그들이 땅의 주인이라며 맞섰지요.
2년이 지난 2006년, 정부는 보지아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안다룸(Andarum) 지역에 이재민들을 다시 이주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이재민들은 도로, 학교, 보건소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 및 경작할 수 있는 충분한 땅을 지원 받는 조건으로 이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2009년 무산되고 맙니다. 자금 부족, 당국의 관료주의적 비효율성 및 정치적 의지 부족, 낮은 기술력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이주가 시작된 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이재민들은 여전히 보지아 근처의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들의 수는 오히려 더욱 증가해, 2014년 10월 현재 1만5000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재민의 2차 난민화, 아이티의 포르투프랭스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는 2010년 1월 발생한 규모 7.0의 지진으로 최악의 참사를 겪었습니다.
오랜 시간 되풀이되는 자연재해 중에서도 당시의 지진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죠. 무려 230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습니다. 이들 중 약 150만 명은 수도 포르투프랭스(Port-au-Prince) 근처의 야외 캠프에 수용됐습니다.
5년이 지난 현재는 약 6만5000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남았습니다. 이들은 매우 빈곤한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높은 인구밀도와 안전하지 못한 주거시설로 인해 각종 범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포르투프랭스의 캠프를 떠난 사람들은 140만 명이 넘습니다. 이 중 일부는 폭력적으로 쫓겨났습니다.
이재민 천막이 들어선 지역의 땅 주인들이 소유권을 주장했고, 경찰과 사설 용역들에 의한 폭행과 강제적 철거가 이들을 압박했습니다.
이렇게 내몰린 사람들은 6만 명 이상으로, 대안적인 주거를 보장받지 못한 채 또다시 난민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던 26만여 명은 1년간 주거 보조금을 받고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캠프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년 후, 대부분 다시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생계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단을 찾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허리케인, 폭우 등 다양한 자연재해가 빈번한 현지에서 캠프는 안전한 주거지로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캠프를 떠난 나머지 110만 명은 어떤 이유로 이곳을 떠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안정된 거주지 확보와 같은 해결책은 찾지 못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이티는 현재까지도 심각한 주택 대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10만5000채의 주택이 반파되고 20만8000채의 주택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이미 지진 이전에 약 70만 채의 주택이 부족했던 것을 감안하면 100만 채 이상의 주택 공급이 이뤄져야 하는 실정인데요.
하지만 2010년 지진 후 올해 초까지 약 3만7000채의 가옥만이 수리되거나 새로 지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시화로 수도 포르투프랭스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했지만, 주거정책 등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해 빈민촌과 같은 불안정한 거주지가 급속히 늘어났습니다.
이는 강진이 강타한 후 수백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주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방글라데시 갠지스 삼각주, 반복되는 자연재해로 복구 여력 상실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방글라데시는 싸이클론, 홍수, 산사태 등 다양한 기상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IDMC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이 지역에서 적어도 470만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특히 갠지스(Ganges) 삼각주 지역에서는 반복되는 재난으로 많은 주민들이 사회적 문제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2009년 5월, 싸이클론 아일라(Aila)는 방글라데시 갠지스 삼각주 지역에 상륙해 바닷물로 마을과 들판을 집어삼켰습니다. 길게 이어진 해안 저지대의 제방이 무너졌고, 84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낳았습니다.
반복되는 싸이클론과 밀물로 인한 경작지의 염분농도 상승은 이재민들이 예전의 삶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제방을 고쳤고, 우리의 마을이 겨우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1주일 뒤 우리는 또다시 집을 잃고 말았습니다.”
2010년, 갠지스 삼각주의 다코프(Dacope) 지역 주민들은 싸이클론 아일라로 훼손된 제방을 겨우 수리해 마을을 복구했지만, 그로부터 1주일 후 밀물로 인해 마을에 홍수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또다시 발생한 재해로 지역 주민들의 생계도 무너져버렸습니다. 이제 주민 대부분은 이주와 재정착에 필요한 높은 금액을 감당할 여력도 없습니다. 이주에는 대략 1000달러가 드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1인당 평균 소득은 1190달러 선에 불과합니다.
해당 지역에서 난민 생활이 장기화하면서 생계유지를 위한 남성 이재민들의 이동은 빈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이 가족을 떠나 논밭이나 건설현장에 뛰어든 사이, 남겨진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폭행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위험요소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후난민의 발생이 저개발 국가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2012년의 허리케인 샌디 피해로 3만9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여전히 주택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2011년의 대지진, 쓰나미, 원전사고 등의 영향으로 아직도 23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가설주택 등 불안한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발생한 기후난민 열 명 중 한 명은 소위 ‘잘 사는 나라’ 사람입니다.
IDMC는 “극도의 위험요소에는 모든 국가가 취약하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노출 빈도가 증가하면서 자연재해로 인한 난민 문제는 향후 10년간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
- 참고문헌: Global Estimates 2015: People displaced by disasters, July 2015, Internal Displacement Monitoring Cen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