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관과 철학…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입니다.”
‘아트 인 메타버스’展 고명진 작가 인터뷰
“나의 주관과 철학…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입니다.”
2022.04.01 15:33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저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에요. 언론도, 여론도 제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죠. 유행 따르는 것도 체질에 안 맞고요. 저의 철학을 온전히 표현해 냈다면, 그게 무엇이든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정신세계가 곧 저의 작품세계인 것이죠.”

고명진(25) 작가는 곁눈질하지 않는 아티스트다. 유행이나 대세 같은 흐름을 거부한 채, 오로지 자신의 신념과 철학으로 사유한다. 이러한 원리는 표현의 영역으로도 계승된다. 동시대의 삼라만상을 자유로이 다루지만, 주제만큼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모아진다. 그가 표현하는 세상에선 미디어에 의해 각인된 사고방식이 기능하지 않는다.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예술관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를 연상케 한다. “나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예술”이라고 덤덤히 밝히는 고 작가에게서 살바도르 달리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는 이유다. 

 

고명진(사진) 작가
고명진(사진) 작가

| 유별났던 소신의 아이…선택지 밖의 선택을 찾아서
고명진 작가는 어릴 때부터 ‘소신파’였다. 또래 친구들이 열광하던 것들에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모두가 좋다 해도 본인이 내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확고하게 잡힌 뭔가가 있었어요. 주관이라 해도 좋고, 소신이라 부를 수도 있겠죠. 그러다보니 또래들과 어울리기가 조금 힘든 면도 있었어요. 오히려 한참 선배들과 어울리는 게 편했죠.” 

이런 성향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에도 영향을 줬다. 교육과 관련된 부분이 대표적이다. 수능 성적에 따라 줄 세우는 대학입학 제도 역시 그에겐 타의에 의해 각인된 통념에 불과했다. 고 작가는 “어린 나이에도 ‘국‧영‧수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게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더라”면서 “오히려 자유롭게 표현하고 창작하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디자인 공부는 기대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었다. 적성에 맞았고, 자신의 독립적인 생각들을 표현하기도 수월했다. 대학이란 무대를 거치며 표현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본격적으로 영상 작업을 다루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사실 예술가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저 저만의 독립된 생각으로 행동하다보니 창작의 영역에 이르게 된 거죠.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즐기고 있더라고요. 다들 스트레스 받는다는 실습 과제도 전 늘 재밌게 했거든요. 덕분에 학창시절 내내 다양하고 풍부한 창작활동을 경험할 수 있었죠.”

 

작업 중인 고명진 작가
작업 중인 고명진 작가

| 예술을 투사하는 기술…프로젝션 맵핑에 빠지다
고명진 작가가 학창시절 내내 생각했던 진로는 영상 디자인이나 광고 분야였다. 줄곧 2D‧3D그래픽과 영상 작업에 매진해왔던 그에겐, 자신의 표현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연히 보았던 광고 영상 하나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2015년 유명 자동차 회사 프로모션 영상 속에서 접했던 ‘프로젝션 맵핑’은 전혀 다른 층위의 표현을 실감케 했고, 완전히 다른 꿈을 꾸게 만들었다. 

“자동차 광고만큼 뻔한 게 없잖아요. 그런데 그 광고에선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자동차는 분명히 멈춰있는데, 배경에 빛을 쏘니까 여러 가지 상황에서 힘차게 달리고 있는 거예요. 너무 신기했고 아름답기까지 했어요. 단숨에 매료된 거죠. 표현의 확장성이 무궁무진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고명진 작가가 프로젝션 맵핑을 처음 접했던 B사의 광고 프로모션 캡처(출처: MomentumChannel)
고명진 작가가 프로젝션 맵핑을 처음 접했던 B사의 광고 프로모션 캡처(출처: MomentumChannel)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은 대상물의 표면에 빛으로 이루어진 영상을 투사하여 변화를 주는 기술이다. 2D‧3D의 디지털 이미지 혹은 영상을 활용하는 만큼, 고 작가가 접근하기 수월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배우기는 쉽지 않았다. 고명진 작가는 “처음 접했을 당시만 해도 꽤 희소한 분야여서, 주변에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고 했다. 어렵사리 찾아낸 오프라인 클래스는 그에게 기술 이상의 것을 선사했다. 클래스를 통해 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해 미디어 아트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과 인연을 맺었고, 그들의 전시작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졌다. 추상적이었던 꿈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상 작업을 오래했지만, 그저 산업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분들과 교류하면서 미적인 개념이 확장됐고, 작가정신도 배울 수 있었죠. 무엇보다 제가 예술을 동경했었고, 하고 싶었다는 걸 확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됐어요.”

세상의 눈보단 자신의 시각이 소중했던 고명진 작가의 철학은 프로젝션 맵핑과 만나며 작품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졸업 작품으로 선보였던 ‘High_2wenty’는 가장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20대 후반의 위태로움을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젠가’에 비유한 것으로, 우리 사회 속에 비쳐진 20대의 답답한 현실은 물론, 스스로 안고 있는 사회초년생으로서의 부담감이나 두려움도 투영되어 있다. 고명진 작가는 “졸업을 앞두니 괜스레 걱정도 많아지고, 압박감도 몰려오더라”면서 “그런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작업이라 여운도 남고, 애착도 많이 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고명진_[High_2wenty]_젠가와 빔프로젝터_15.2x51x15.3cm_2021
고명진_[High_2wenty]_젠가와 빔프로젝터_15.2x51x15.3cm_2021

| 이분법적 삶이 만든 암울한 현실…한번 보실래요?
프로젝션 맵핑이라는 창구를 통해 미디어 아트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 고 작가는,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펼쳐 보이려 한다. 작년까지 학생 신분이었던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전시 무대다. 지난 1월 21일부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가 새로운 출발점이자 무한한 기회의 장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래서다. 

“아츠클라우드의 전시 공모를 접하곤 서로의 니즈가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츠클라우드는 작가를 발굴‧육성‧지원하는 목적을 가졌고, 저는 작품을 소개하면서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울타리가 필요했으니까요. 아츠클라우드에서 기획한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가 그 시작점이라 생각했죠.”

이번 전시에서 고명진 작가가 선보인 ‘Dead Society’는 흑과 백으로 편을 가르고 갈등하는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고 작가는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치부해버리는 사회는 싸늘하게 죽어버린 세상”이라며 “현대사회의 이런 세태를 오로지 흑과 백만으로 불편하게 표현하려 했던 게 이번 작품의 기획 의도”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기획을 시작한 해당 작품은 인물 뒤의 배경에 영상을 오버레이(overlay‧덮어씌우기)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기획 초기에는 마네킹을 활용해, 작가의 전매특허인 프로젝션 맵핑을 시도할 계획이었지만 작업 중 마네킹이 실제 사람으로 바뀌면서 방향이 조금 수정됐다. 고 작가는 “마네킹보다는 사람에게 주는 효과가 더 드라마틱하다는 주변의 의견을 수렴하다보니, 정지된 사물에 최적화되는 프로젝션 맵핑 역시 무리인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명진_[Dead Society]_빔 프로젝터_3840x2160 pixel_2021
고명진_[Dead Society]_빔 프로젝터_3840x2160 pixel_2021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불편함’이다. 비판적 성격이 강한데다, 둘로 쪼개져 서로 갈등하는 답답한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대중들이 불편함을 느낄만한 비주얼과 사운드를 작품 곳곳에 배치시켰다. 과격하면서도 추상적인 표현은 갇혀 버린 사고와 사상을 향해 울리는 경종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이미지나 단어가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칠판 긁는 소리나 난잡한 소리도 귀를 거슬리게 하죠. ‘현실이 이렇게 불편한 거다’라는 메시지라고 보시면 되요. 기본적으로 다다이즘(기존 체계와 관습적인 예술에 반발한 문화 운동)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작품이죠.”

날 것 그대로의 불편함을 통해 메시지를 드러내는 고명진 작가의 표현 방식은 그의 삶 자체와 궤를 같이 한다. 고 작가가 “나의 작품세계는 나란 사람 자체이며 온전히 나를 표현해 내는 수단”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건 ‘자아의 회복’이다. 우리 모두 고유한 자아와 주관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고, 그게 통념이나 유행보다 값질 수도 있다는 메시지다. 

 

“나의 작품세계는 나 그 자체”라고 강조하는 고명진 작가
“나의 작품세계는 나 그 자체”라고 강조하는 고명진 작가

세상의 휩쓸리지도, 유행에 편승하지도 않는 그의 예술 세계는 이제 본격적으로 열린 것일지도 모른다. 고명진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같은 용어보다 더 중요한 건, 그의 작품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은 그의 진심’이란 사실이다. 

“세상의 통념과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특히 예술가라면 더욱 그렇고요. 앞으로 선택지 외의 답을 탐구하는 예술가로써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사진: 고명진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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