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살아있네!” 청소년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 (전편)
“인문학, 살아있네!” 청소년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 (전편)
“인문학, 살아있네!” 청소년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 (전편)
2015.12.04 22:12 by 강연우

“동네서점은 오래 사귄 친구의 집과 같다.” (작가 피코 아이어)
친구의 집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전국에 남은 서점 1624곳(2013년 기준), 10년마다 4곳 중 1곳이 문을 닫는다. 이런 ‘종이책 멸종 시대’에 살아남은 동네서점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눈물 나는 분투기와 훈훈한 사람 냄새가 함께하는 그곳. 동네서점의 문을 열어본다.

2004년 8월 28일 부산 남천동에 문을 연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깐깐한 심사로 선정한 인문학 도서만을 판매하고 청소년, 청년, 성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문학 토론 행사를 연다. 2년 전에는 공익법인 ‘정세청세’를 세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중이다. 이미 인디고서원의 움직임에 감동한 가라타니 고진 등의 세계 석학, 서울대 조국 교수와 같은 국내 유명 인사들이 청소년들과 토론하기 위해 이곳을 다녀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아이를 꾸짖는 어른들의 말이다. 그런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이들이 진지하게 앉아서 ‘인문학’을 논한다면? 지난 11월 13일, 전국 21개 지역에서 파릇파릇한 14~19세 청소년들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세청세에 참가한 학생들이 조별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책상 가운데는 2조를 뜻하는 팻말이 보인다.

“여러분들이 느끼는 미의 기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오전 11시 부산 금정예술공연지원센터(이하 센터)에서 열린 ‘정세청세’ 행사에서 구승회(18‧지역팀)군이 질문을 던졌다. 마주보던 학생 5명의 눈동자가 빛났다. 손을 든 정다빈(16·지역부팀장)양이 구 군의 눈을 보며 “남을 따라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김서영(16·부산지역 참가자)양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다 남이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미적 기준이 된 게 아닐까요?” 조용하던 센터가 10분 만에 청소년들의 뜨거운 토론장이 됐다. 6~7명 씩 조별로 모인 학생들은 각자 아름다움에 관한 생각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2008년 시작한 정세청세(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는 인디고서원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인문 토론 행사다. 한두 달에 한 번 같은 시간,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서울·부산·제주 등 전국 21개 지역의 청소년들이 토론을 벌인다. 한 지역 당 많게는 150명에서 적게는 30여명이 참석한다. 올해 부산지역은 248명의 청소년이 정세청세를 다녀갔다.

“친구의 권유로 토론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가 올해부터 부산지역 부팀장을 맡았어요. 새로운 사람,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토론을 통해서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아요” 2년 전 겨울부터 정세청세에 참여한 정다빈 양의 말이다.

행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청소년들의 손으로 만든다. 처음 1시간 동안 기획팀에서 직접 만들고 편집한 영상을 보고, 나머지 1시간은 조별로 토론을 펼친다. 시스템도 체계적이다. 21개 지역별로 꾸려진 지역기획팀과 정세청세 행사를 관리하는 총괄기획팀이 나눠 일을 맡는다. 총괄기획팀은 행사를 홍보하고 참가신청을 받는 홍보팀, 행사 장소와 시간을 조율하는 행사기획팀, 당일 토론할 주제에 대해 미리 알아오는 공부팀으로 짜여 있고, 지역마다 팀장과 부팀장도 있다. 부산지역 팀장인 구승회 군은 “인문학적 토론을 통해 생각하는 방식이 성장하는 걸 느낀다”며 “팀장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말했다.

“저는 아이들 도우러 왔어요” 조해진(21, 총괄팀) 양이 입구에서 신청자들의 출석현황을 파악하고 불참자들을 전화로 일일이 확인했다. 2년 전 창원팀에 있던 친구의 권유로 정세청세에 참여하게 된 조 양은 정세청세 과정을 '교육혁명'이라고 말했다.

“저는 1대 다(多)가 아닌 다(多)대 다(多)의 토론 방식이 ‘교육 혁명’이라고 봐요. 우리 주변에 얘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학교도 마찬가지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아닐까요.”

정세청세의 토론 규칙은 딱 세 가지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의 눈을 보고 대화하며, 상대방에게 미소를 지어주세요’ 위 규칙만 지킨다면 누구든 마음껏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다.

변화는 아이들 스스로가 느낀다. 이번이 25번째 참석인 구승회 군은 “무엇보다 제 스스로 성장한 게 눈에 보여요. 학교에선 교과목 공부만 해서 주체적으로 생각하기 힘들었는데, 정세청세에서는 토론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자기 생각을 말하고 표현하는 방법까지 배웠어요. 자신감이 생겼죠”라고 말했다.

토론은 닫혀있던 아이들 마음을 열어주기도 한다. “작년부터 참가한 친구 중에 학교폭력을 당해서 힘들어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체격이 왜소하던 그 친구는 바닥만 보면서 ‘네?’라는 말 밖에 안했는데, 토론을 통해서 친구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더니 몇 달 뒤에 저한테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뿌듯했죠.” 구 군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학부모 사이에서 반응도 뜨겁다. 이번 행사에 처음 참석한 김서영(16)양과 한바다(16)양은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정세청세에 관한 입소문을 들은 어머니가 추천해 오게 됐다”며 쑥스럽게 웃어 보였다. 김 양은 “토요 방과후 수업 빠진다고 선생님에게 한소리 들었긴 하지만 토론이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돼요.”라고 말했다.

‘정세청세’에 처음 참석한 김서영(16·왼쪽) 양과 한바다(16) 양이 행사가 시작하자 박수를 치고 있다.

정세청세는 인디고서원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2013년 인디고서원은 ‘정세청세’라는 공익법인을 세우면서 모든 무료 행사를 이 법인 이름으로 개최했다. 책 사업과 공익 행사의 수익성에 한계를 느낀 운영진이 고민 끝에 비영리 법인을 세운 것이다. <인디고잉>과 <인디고> 같은 출판 사업 사업부터, 저자를 초청하고 책 읽기를 통해 토론하는 ‘주제와 변주’, 인문학 연구소 ‘인크(Ink)’ 등 토론·연구 사업까지 모두 인디고서원 공익법인인 ‘정세청세’가 주관한다. 같은 이름의 청소년 인문 토론 행사 ‘정세청세’도 법인에서 연다.

토론 행사 ‘정세청세’는 책 한권에서 시작됐다. <희망의 인문학>이란 책을 읽고 감명 받은 청소년들이 2007년 5월부터 자발적으로 토론 행사를 기획한 게 처음이다. <희망의 인문학>은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의 ‘클레멘트 코스’가 무력하고 수동적인 사람들을 당당한 민주시민으로 변화시킨다는 내용. 부산에서 시작한 토론이 지금은 전국 21개 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행사로 커졌다. 일이 커지게 된 데는 인디고서원 ‘행동파’ 허아람(44) 대표가 있었다. 26년째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는 허 대표의 전폭적인 지지 덕에 정세청세가 열리는 지역이 2009년 6개, 2012년 17개 지역에서 현재 21개로 확대됐다.

이윤영(27, 인디고서원) 실장이 인디고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계간지 을 들고 있다.

“보통 생각, 말, 행동 순서인데, 허 대표님은 행동이 먼저 나간다고나 할까요.”

이윤영(27·인디고서원 실장)씨가 허 대표를 묘사하며 웃었다. 허 대표를 11년째 지켜본 인디고서원의 이윤영 씨는 그의 실행력을 “인디고서원이 가진 힘”이라고 말한다.

“보통 책을 읽는다고 했을 때 거기서 끝나는데, 인디고 서원이 가진 힘은 책에서 배운 걸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어요. 책 한권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달라야 하잖아요. 인디고 서원의 시작도 이런 힘에서 왔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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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읽고는 못 배길 걸! ‘인디고서원’ 추천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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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라디오> ‘사자(死者)의 목소리와 산 자의 목소리’

“원래 일본의 방송인이던 이토 세이코 라는 분이 쓴 소설이에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만 오천 명 넘는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때 죽음을 잊고,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을 공간이 없어지자 소설을 통해서라도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싣고자 했던 겁니다. 죽은 자와 산 자 간의 이야기를 담은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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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없는 질서> ‘북유럽식 교육, 우리는 왜 안 되나’

“얼마 전 수능이었잖아요. “수능 대박나라”고 하는데, 수능이 다 대박나면 이건 ‘쪽박’이거든요. 우리 교육 시스템은 최초 설정부터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시스템이죠. 모두가 행복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모두에게 행복을 강요하는 구조예요. 반면 북유럽에는 굉장한 시민의식이 있어요. 서로를 배려하고 타인과 공감을 통해 사회를 좋게 만들고자 하는 의식이죠. 1등 보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긴 책입니다.“

다음 이야기 인터넷 서점 시대에 태어난 인문학 책방, 문제집 안 파는 청소년 서점. 모두의 만류 뿌리치고 설립한 인디고가 십년 만에 분점 제안 줄잇는 이유는? 인디고서원, 후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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