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반, 재빨리 컴퓨터를 끄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다. 업무가 많이 쌓여있지 않는 한 ‘칼퇴’를 지향한다. 뭐 화끈한 약속이라도 있냐고? 좋은 데 가냐고? 배부른 소리. 퇴근이 아니다. 새로운 출근이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들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장감, 한 걸음 한 걸음 천지(天地)를 향해가는 듯한 장구한 대장정. ‘육아의 세계’다.
어깨 한 쪽을 짓누르는 가방. 그 속을 가득 채운 건 육아 관련 도서들. 다른 한 쪽 역시 묵직하다.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의 무게다. 한 시간 남짓 집으로 향하는 길. 지하철‧버스를 이리저리 갈아타면서도, 모든 신경은 오로지 그 세계에 꽂혀있다.
보이는가? 저 압도감과 긴장감이. 여기서부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제 이 문을 넘어서면 비로소 육아월드다.
이 문 너머의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일단 육아월드 전설 속에만 등장한다는 육아의 투사. 엄마 ‘맘시무스’다.
원래는 인터넷과 별로 안 친했는데, 출산과 동시에 지역맘 카페를 주축으로 수많은 육아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남들 다 가는 산후조리원도 외면하고, ‘어린이집 보다 우리집이 낫다’는 굳은 신념으로, 웬종일 아이들을 끼고 있겠노라 다짐하는 열혈 육아 투사다. 위대한 투사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남편을 육아 ‘동지’로 굳게 믿고 있다는 점. 집안일의 상당 부분을 남편에게 배분하는 당찬 면모를 보인다는 점.
다음은 본인. 직딩 아빠 되시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야근이 별로 없다. 가끔 야근을 했을 땐 아기가 자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귀가하는 솔직한 아빠다! 아주 가끔씩은 ‘칼퇴해서 아이 저녁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보다는 야근이 편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육아월드의 진정한 주인공. 말 잘하는 ‘총명이’다.
세상에 태어난 지 무려 720일이나 되셨다.
책을 많이 읽어준 덕인지, 부모가 말이 많아서인지 또래보다 말을 좀 잘한다. 말이 많은 만큼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다. 내가 말수를 좀 줄여야 겠다…
예비 주인공 통통이.
아 투사 맘시무스 뱃속에서 8개월째 쑥쑥 자라는 중. “통통아! 말 많은 멋진 형아가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삑삑삑삑.
현관문의 채 열리기도 전에 다다다다닥! 소리가 가열차게 들려온다. 문 앞으로 돌진하는 총명이의 발소리다. 직딩아빠가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안겨든다.
타이밍 싸움이다. 바로 안아주지 못하면, 어떤 나비효과를 낳을지 모른다. 옷과 가방을 후다닥 던져놓고 총명이부터 덥썩 들어 안는다. 여기서 2단 콤보가 들어온다. 블록 조립을 해달라고 조르는 거다. 아니 얘는 하루 종일 이거 안하고 뭐했길래…
아빠는 씻고 싶다. 따뜻한 물로, 아니 찬물도 괜찮다.
MBC <아빠 어디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이 인기를 끌면서 아빠들의 육아가 갑자기 주목 받고 있다. 사실 TV에 나오는 아빠들은 왠지 어설프다. 아이들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자녀에게 헌신하는 모습은 참으로 훈훈해 보인다. 게다가 TV 속 아이들은 어찌나 착하고 귀여운지⋯. 아이들의 얼굴은 빛이 나고, 행동 하나 하나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프로그램에 붙은 다양한 PPL 광고는 좋은 눈요기 대상이다. 연예인 아빠들이 간 곳에 우리 아이와 함께 가볼까 해서 찾아본 적도 있지만, 비싼 입장료에 망설이게 된다.
그렇다고 현실 육아가 지치기만 하는 건 아니다. TV 속 모습처럼 마냥 멋지고, 신나기만 한 건 아니지만, 현실 육아도 그에 못지않은 매력과 기쁨이 있다. 뒤집기, 손뼉치기, 도리도리 등 총명이의 개인기 숫자 늘리는 재미는 지금껏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핵꿀잼’이다.
아빠에게 주는, 이상한 단어들이 조합된 편지(아마도 엄마가 거의 써주었겠지만)를 볼 때면 한 번도 연습해보지 않은 표정이 만들어진다. 그게 흔히 말하는 ‘아빠 미소’인가보다.
육아가 주는 피로가 아이 덕분에 사라지는 마법. 아마도 이 마법 때문에 인류가 보존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직딩아빠의 육아 미립자팁 #1_ '지역맘 카페를 이용하자'>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지역별 엄마들의 모임 카페가 있습니다. 엄마들이 주로 활동하긴 하지만, 아빠들도 가입할 수 있죠. 이런 카페들은 철저히 등급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우리 동네 어떤 소아과가 진료를 잘 하는지, 어떤 식당이 맛있는지 등의 정보를 실제 사례로 접할 수 있어요. 광고성이 아닌 생생한 경험담이죠.
장터 게시판에서는 육아 용품과 장난감, 그림책 등을 저렴하게 득템할 수 있어요. 맘씨 좋은 분들은 무료로 나눠주기도 하십니다. 잘 살펴보면 득템의 연속이 될 수도 있죠.
단, 지역별로 운영되는 카페인 만큼 택배 거래는 거의 없습니다. 물건 받으러 나갈 땐 간단한 먹거리라도 챙겨가는 건 어떨까요? 서로 나누면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다음이야기 아이만 낳는다고 다 아빠가 되진 않아요! 업무 자료를 서치하는 것처럼, 아이를 잘 키우려면 공부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육아서 읽는 아빠’에서 공부하는 아빠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