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병원의 발자취-자생한방병원(上)] 독립군 대진단 이끈 '신홍균', 그는 한의사였다
[민족병원의 발자취-자생한방병원(上)] 독립군 대진단 이끈 '신홍균', 그는 한의사였다
2022.06.24 15:18 by 김주현

<편집자 주>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은 후손들의 책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민족병원으로서 거듭나고 있는 자생한방병원의 독립운동사를 살펴보고 한의사 독립운동가문의 발자취를 上, 中, 下 편으로 따라가 보고자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일을 넘기며 우리는 전쟁의 참상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고 있다. 여기에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외세의 침략으로 어두웠던 한국의 시대 상황을 상기하는 이들도 많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 많은 기업들이 민족영웅들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고 있다. 독립운동가를 예우하는 사회적 분위기 정착을 위해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는 자생한방병원도 그 중 하나다.

지난 2월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 복지증진 공로’ 감사패를 받을 정도로 자생한방병원의 독립운동 정신은 남다르다. 민족병원으로서 자리 잡은 자생한방병원이 이같은 나눔경영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자생한방병원 설립자 신준식 박사의 숙부인 독립운동가 ‘신홍균’ 선생이 있다.

신홍균은 함경남도 북청 출신 한의사로 가업을 잇다가 일제에 대항해 중국 만주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간 인물이다. 1920년 5월 독립운동가 김중건과 함께 조선독립군 대진단을 창설한 신홍균은 한의사이자 군의관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한의사이자 군의관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힘쓴 신홍균 선생
▲한의사이자 군의관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힘쓴 신홍균 선생

 

▲중국 동승촌 열사 기념비에 기록된 ‘조선독립군 대진단 신홍균’
▲중국 동승촌 열사 기념비에 기록된 ‘조선독립군 대진단 신홍균’

 

 

당시 일본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참패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1920년 10월부터 북간도 지역 한인 마을 63곳의 민간인 2200여 명을 살해한 경신참변을 일으켰다. 이때 김중건이 일본군에 체포돼 추방당하면서 그의 빈자리를 신홍균이 채웠다. 그는 대진단 단장으로 활동하며 광복단, 태극단 등 중소규모 독립군을 규합하고 독립운동가 양성에 힘썼다.

그러던 1933년 3월 초, 한국독립군의 지청천 장군으로부터 연합 제의가 들어왔다. 대진단은 이 제의를 받아들여 영안현과 이도하자 지역 등지에서 이뤄지고 있던 전투에 물자를 포함한 제1진 정예병 50여명을 파견했다. 덕분에 한국독립군은 규모와 군사력이 크게 향상됐으며 이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잡지인 ‘광복’에도 자세히 기록됐다.

이후 사도하자 전투, 동경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한국독립군은 중국 연길 왕청현 동북의 산악지대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일본군이 연길현 방면으로 철수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이에 철수 중인 일본군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 뒤 1933년 6월 28~29일경 일본군의 통과 예상지점인 대전자령 서쪽 계곡 양편에 매복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독립군 3대 전투 중 하나인 대전자령 전투의 서막이다.

그런데 일본군의 출발 예정일인 6월 28일 아침부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 때문인지 일본군의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준비한 식량이 이미 다 떨어졌음에도 일본군이 나타나지 않자 독립군 병사들의 사기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때 신홍균은 약재에 대해 지식이 풍부한 한의사의 강점을 활용해 숲속에 자생하는 검은 버섯들을 식량으로 활용했다.

 

 “이것 좀 잡수시오. 가을장마 끝에 숲속에 돋는 검정 버섯인데 중국인들이 요리로 많이 애용하고 요기치풍(療飢治風)도 하지요. 이걸 빗물에 씻어서 소금에 범벅 했으니 잠시 요기는 되실 겁니다.”

 
신홍균의 말을 듣자마자 지청천과 조경한 등 주요 간부들은 각 부대에 명령해 굶주림에 지쳐있는 독립군들에게 버섯을 먹였다. 위기에 빠졌던 병사들은 군의관 신홍균의 기지 덕분에 극적으로 재정비에 나설 수 있었고 그 결과 대전자령 전투는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전투로 역사에 남게 됐다.

한국독립군은 이후에도 여러 번의 고비를 맞이했지만 계속해서 남다른 항일투쟁 의지를 보였다. 이때 신홍균도 병사들을 인솔해 밀산 지역으로 이동하고 후일을 기약했다. 신홍균의 독립을 위한 노력은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 잊혀진 부분이 많지만 중경 신문기자 갈적봉이 1934년 5월 작성한 ‘조선혁명기’라는 책에서 그의 업적을 확인해볼 수 있다.

 

“동북의 한국독립군은 신흘…등이 인솔해 영안, 목릉, 밀산 등의 산림지대로 이동해 항일 운동을 계속했다.”

 

‘신흘’은 일제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신홍균이 사용했던 가명으로 ‘신굴, 신포’ 등 그의 수많은 가명은 아직도 기록에 남아 그의 업적을 증명하고 있다. 2020년 11월에는 국가보훈처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으며 신홍균의 숭고한 희생과 독립운동 유공을 인정받기도 했다.

신홍균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은 비슷한 시기 한의사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조카 신광열(신준식 자생한방병원 설립자 선친)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다음 편에서는 독립투쟁 중 일본경찰의 군도에 맞고 옥고를 치른 신광열 선생을 조명해 보고 장남인 신준식까지 이어지는 ‘긍휼지심(矜恤之心)’의 의미를 되새겨보려고 한다.

필자소개
김주현

안녕하세요. 김주현 기자입니다. 기업과 사람을 잇는 이야기를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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