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한 통을 다 쓰려면
양배추 한 통을 다 쓰려면
2015.12.31 11:09 by 이민희

음식 좀 하는 외국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 외국인들과 각국의 거창한 음식 얘기는 좀처럼 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칼을 손에 쥐는 방법, 몽골 사람들이 양배추를 다듬어 쓰는 요령에 더 눈길이 갑니다. 그런 차이를 발견할 때면 늘 이유를 묻고 답을 얻어내려 하는데요, 음식에 대한 가벼운 질문이 때때로 문화와 역사 이야기로 확장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별별음식'은 그렇게 사소하지만 달라서 재미있는 세계의 음식 문화를 다루고자 합니다. 

참치 샐러드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며칠 전 양배추 한 통을 샀다. 어떻게 잘라 포장되는지 알 길이 없으니 반 통을 사는 게 영영 찝찝하단 생각에 한 통을 집어 들었는데, 당분간 샐러드를 먹을 일이 없을 것 같다. 양배추가 너무 많이 남아 참치를 더 샀고 양파를 더 샀으며 심지어 마요네즈까지 더 샀다. 그러고도 양배추가 남아 결국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는 동안 함께 일하는 외국인들은 야무지게 양배추를 다지고 있었다.

일본, 양배추를 다루는 섬세한 방법

“겨울이 되면 ‘롤캬베츠(양배추롤)’를 주문하는 손님이 많아져서 미리 준비해 둔다. 꽤 손이 많이 가거든.” 일본만화 <심야식당>의 한 대목인데, 식당의 마스터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일본인 호스트 야마구찌 히데꼬 씨에게도 롤캬베츠는 만들기 몹시 번거롭다. 며칠 전 그녀가 직접 만드는 걸 보게 됐는데, 일단 다이아몬드 형식으로 칼집을 내 중앙의 심지를 뽑아낸 다음 차가운 물을 흘려보내면서 양배추 잎을 찢어지지 않도록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이어서 사려깊게 뜯어낸 양배추잎을 끓는 물에 살짝 익힌 뒤 평평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잎사귀 중앙의 억센 심지를 칼로 저민다. 그래야 잘 말린다. 그런 뒤에 잘 익은 데다 반듯해진 양배추 잎으로 하나하나 고기완자를 싼다. 모양이 잘 잡히도록 이쑤시개로 고정하고, 콘소메 수프나 토마토 소스를 넣고 30분 가량 끓이면 된다. 그렇게 완성된 양배추롤은 한 입에 안 들어간다. 게다가 양배추잎이 고기의 육즙을 잘 지켜준 덕분에 엄청 흥건하고 뜨겁다. 만두 같은 느낌이라 식고 나서 먹으면 맛이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겨울이면 그렇게 크고 뜨거운 양배추롤을 호호 불어 베어 먹던 기억이 다들 있는 것 같다. 야마구찌 씨에게 롤캬베츠는 가족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먹어왔던 음식이고, <심야식당>의 등장인물 마릴린에게는 남자가 생겨 집을 나가버리기 전까지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이다. 그리고 그런 엄마와 오랫동안 소원했지만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자 다시 먹고 싶어진 추억의 음식이다.

몽골, 양배추를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

함께 일하는 몽골 호스트 뱜바체렝 씨는 한 끼 정식을 차릴 때마다 양배추 한 통을 다 쓴다. 일단 두께가 얇은 겉잎만 잘라서 채썬 뒤 당근, 식초와 설탕 그리고 후추를 넣어 버무린다. 그렇게 해서 ‘빠자니 샐러드’가 완성된다. 코울슬로와 비슷한 맛이 나는 몽골식 샐러드다. 샐러드가 끝나면 일본인들이 롤캬베츠를 만들 때마다 도려냈던 억센 심지를 따로 분류한다. 몽골식 소고기 만둣국 ‘바은시타 너거터 시얼’에 넣는데, 육수와 함께 오래 끓이기 때문에 부드러워 먹기 좋다. 이어서 남은 양배추 속은 몽골식 볶음국수 ‘초이왕’에 다 들어간다.

몽골 사람들의 주식은 고기다. 주로 양고기와 소고기를 먹는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고기를 많이 먹는 것으로 먼 옛날부터 에너지를 얻어왔다는 것이다. 기후 때문에 농경지가 많지 않아 야채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러니 야채는 귀했고 손님이 오는 날에 준비하는 특별한 식재료였다 한다. 이제는 비닐하우스 덕분에 감자나 양배추 정도는 직접 재배할 수 있을 만큼 환경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변화된 식문화 또한 그녀 음식에 다 깃들어 있다. 그녀의 음식에 쓰이는 야채는 종류는 많지 않다. 대신 아끼지 않고 통 크게 넣는다. 양배추 한 통을 다 쓰는 일에 망설임이 없는 것이다.

한국, 양배추를 다루는 애매한 방법

일본인이 양배추로 소울푸드를 만들고 몽골인이 순식간에 양배추 한 통을 다 쓰는 걸 보고 양배추가 들어간 한국 음식을 떠올려봤다. 근데 진짜 없다. 떡볶이, 샐러드, 각종 볶음 요리에 종종 쓰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부재료일 뿐 쌈이나 즙 말고 양배추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 배추가 아니라 ‘양’배추라 그런가, 늦게 들어온 데다 무와 배추 등 이미 대체할 만한 다른 야채가 많았기 때문에 조리법이 발달하지 못한 모양이다.

익숙한 양배추 요리가 몇 없다 해도 동료들의 요리를 볼 기회가 많으니 언제든 양배추 한 통을 손에 쥘 수 있을 텐데, 사실 엄두가 잘 안 난다. 그녀들이 양배추를 그렇게 과감하게 다룰 수 있는 건 몸에 익은 요령과 기술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쓰고 남은 양배추를 냉장고에 묵히거나 버릴 필요가 없어서다. 그녀들의 음식을 환영하는 가족과 동료가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재산이 없는 내게 양배추는 조리법이 아니라 여전히 양이 문제라는 것이다.

남기지 않고 다 해치우려면 소분해서 파는 양배추를 사면 된다. 그게 이치에 맞다고 해도 매력적인 방법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한 턱 쏘는 기분으로 양배추 한 통을 가슴에 품고 집에 들어와 잎 한 장의 낭비도 없이 풍요롭게 한 상을 차리고 싶어진다. 그리고 남김없이 다 먹는 걸 보고 싶어진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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