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슈르에서 겪은 행운과 기적
다슈르에서 겪은 행운과 기적
2016.03.09 11:07 by 곽민수

파피루스 기록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그렸던 ‘고대 이집트 엿보기’. 이제 그 현장으로 직접 가본다.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의 두 번째 연재물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 이집트 여행의 하이라이트, 고대를 오롯이 간직한 ‘다슈르’로의 여정  

다슈르 유적지에 들어서면 곧 저만치에서 붉은 피라미드와 굴절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고개를 돌려 북쪽을 바라보면 사카라에서 우리들이 만났던 피라미드들이 아른거리는데, 그 경관이 한 없이 멋스러우면서도 심지어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이 인상적인 장면을 바라보다 보면, 어쩌면 이집트에 세워진 모든 피라미드들은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수백 년 동안 연인원 수십 만 명이 동원된 이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하는 현대의 건설 프로젝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고 성스러운 작업이었을 겁니다. 저 멀리서 다수의 피라미드가 한 눈에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장면은 사진으로는 도저히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 짜릿한 기분은 실제 눈으로 경험하실 때에만 제대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다슈르 가는 길1_ 다슈르에 가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을 지나야 합니다.
다슈르 가는 길2_ 듬성듬성 심어 놓은 가로수가 그나마 사막의 뜨거운 기운을 막아줍니다.
다슈르 가는 길3_ 드디어 야자수 사이로 저 멀리서 붉은 피라미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슈르 가는 길4_ 한걸음 한걸음 붉은 피라미드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저 멀리 굴절 피라미드와 검은 피라미드도 드디어 시야에 들어옵니다.
다슈르 지도

 

| 다슈르에 도착하다

붉은 피라미드는 스네페루의 피라미드들 가운데 가장 나중에 지어진 것이지만, 다슈르에선 가장 먼저 만나게 됩니다. 피라미드의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외장석이 벗겨져 내리면서 안쪽 석재가 외부로 노출되어 전체가 붉게 보이기 때문에 붉은 피라미드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아무리 피라미드를 살펴보아도 붉은 색으로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석양이 질 무렵에는 저녁 노을을 받아 붉은 색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이 시간까지 다슈르에 머무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도저히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붉은 피라미드는 밑변의 길이가 220미터에 이르지만, 높이는 102미터로 비교적 낮은데, 그것은 완만한 경사도 때문입니다. 붉은 피라미드가 완만한 경사각을 지니게 된 이유는 앞서서 말씀 드린 것처럼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공학적 선택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102미터짜리 피라미드를 바로 앞에서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사카라에서 만났었던 60미터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어쩐지 왜소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곧 이 100미터가 넘는 높이의 피라미드조차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위대한 피라미드를 만나게 됩니다. 다음 목적지인 ‘기자’에서 쿠프의 대피라미드를 만나는 순간 분명 우리는 그렇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붉은 피라미드
붉은 피라미드
붉은 피라미드 입구

운이 좋게도 붉은 피라미드의 내부는 일반 여행자들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붉은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모험입니다. 그것은 피라미드 내부에 조명시설이 썩 훌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건설자들이 느꼈을 불편함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현대인들에게 어둠은 불편하고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집트 여행 시에 손전등을 반드시 휴대하셔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피라미드 내부로의 여행을 다녀오게 되면 온몸은 땅으로 흥건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피라미드 내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실망 그리고 허무뿐입니다. 그 허무함은 앞으로도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가 볼 때마다 계속 될 것입니다. 피라미드 내부 여행의 허무함에 대해서는 이후 기자에 도착하게 되면 그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피라미드의 내부 통로
현실로 향하는 통로
붉은 피라미드의 현실
붉은 피라미드의 내부 구조 (도면 출처: Wikimedia)

굴절 피라미드는 붉은 피라미드에서 남쪽으로 약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습니다.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지만, 이 특별한 피라미드 앞에 서고 싶다면 포장되어 있지 않은 사막을 1시간 가량 걷는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 육체적으로는 꽤나 힘든 걸음이 되겠지만 다슈르에 도착한 이상 이곳의 주인공인 굴절 피라미드를 직접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굳은 의지와 높은 기대를 가지고 굴절 피라미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사막을 걷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발이 모래 속에 빠져서 중심잡기도 어려운 해변의 모래사장을 1시간 이상 계속 걷는 것과 거의 같을 정도로 고된 일이지만 굴절 피라미드는 정말로 특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과한 노력을 지불하고서라도 우리는 그 앞에 서야 합니다.

굴절 피라미드로 가는 길
굴절 피라미드로 가는 길에 우리는 중왕국 시대 아메넴헤트 3세의 ‘검은 피라미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굴절 피라미드로 향하는 길에 뒤를 돌아보면 저 만치에 붉은 피라미드가 서 있습니다.

굴절 피라미드는 붉은 피라미드보다 더 좁고 더 높아서 밑변의 길이가 184 m, 높이는 105 m가 되는 당당한 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굴절 피라미드만큼은 규모보다 그 특이한 모양새가 더 인상적입니다. 피라미드의 경사각이 꺾여있는 피라미드를 이 피라미드를 만나기 전에 상상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젠가 이 굴절 피라미드의 사진을 본 누군가는 혹시 사진이 찌그러진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이 특별한 피라미드를 오늘 여러분들은 직접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 굴절 피라미드의 내부는 들어가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특이한 모습의 피라미드를 두 눈에 담는 것만으로 충분히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굴절 피라미드
굴절 피라미드
굴절 피라미드의 외장석과 내부 석재
굴절 피라미드의 북쪽 입구
굴절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붉은 피라미드

 

| 행운과 기적

굴절피라미드를 다시 보니, 이곳을 처음 만난 날 겪었던 특별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2010년 초의 일이었죠. 그 날 저는 행복한 기분을 느끼며 한나절을 꼬박 다슈르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카이로로 돌아가는 차편이 끊기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사막 위를 걸어 다녔기 때문인지 제 발걸음은 무척이나 지쳐있었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굴절 피라미드 앞. 다시금 1시간 동안 사막의 모랫길을 걸어 붉은 피라미드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 코스를 남겨줬죠. 투어에 참가하여 다슈르를 찾은 관광객들이 냉방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고급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돌아가는 모습이 내심 부럽기도 했습니다만, 아마도 ‘오늘 다슈르를 대중교통으로 찾아온 유일한 여행자가 나일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힘을 냈습니다. 하지만 다시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육체가 정신을 초월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막을 걷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즐거운 만큼 근육의 고통을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그 근육통을 묵묵히 견디며 서둘러 길을 재촉하고 있을 때에, 저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구원의 손길이 다가 왔습니다. 어쩌면 다슈르를 홀로 찾아온 것을 기특하게 여긴 이시스(Isis) 여신의 축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시스 여신. 람세스 3세의 석관 부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터벅터벅 사막을 걸어가고 있는 제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한 투어 그룹이 버스를 세워 제게 손짓 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그 친절한 손짓을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마드리드에서 휴가를 왔다는 이 스페인 여행자들은 사막을 홀로 걷고 있는 제 모습이 신기하고, 동시에 안쓰러웠다고 합니다. 거의 탈진 상태였던 저는 냉방이 되는 이 최신식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카이로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홀로 도보로 다슈르를 둘러보고 있는 동양인 여행자를 무척 신기하게 여기며, 제가 저널리스트나 작가가 아니냐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집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고 대답하였고, 그랬더니 그들은 멋진 것을 공부한다고 남유럽 특유의 과장된 어투로 호들갑을 떨며 꽤나 진지하게 훌륭한 학자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저를 격려하였습니다. 차편 제공에 격려까지, 그들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저는 은혜를 갚고 싶었습니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사막을 힘겹게 걷던 저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그들에게 말입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인연은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것,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로부터 이곳 이집트는 기적의 땅이었습니다. 제게도 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슈르를 다녀온 지 며칠 후, 같은 숙소에서 묵던 몇몇 한국 분들과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그날 카이로시내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는데, 기억하기로는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로 가는 국경을 개방할 것을 이집트 정부 측에 요구하는 여러 NGO들의 시위였습니다.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들은 미국인과 유럽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박물관에서는 서양인들의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시위대가 주요 관광지로 들어가 그곳에서 시위를 시작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시위대 대부분이 서양인이라는 판단 때문인지 동양인 관광객들은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경찰의 안내에 따라 길게 늘어선 서양인들의 줄을 지나 막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려는 찰나, 낯익은 남 유럽계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바로 다슈르에서 저에게 차편을 제공했었던 그 스페인 사람들 입니다. 저는 반갑게 인사하였고, 저희를 안내하던 이집트 경찰에게 이들은 시위대가 아니라 제 친구들이니 함께 입장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줄을 서지 않고 함께 입장할 수 있었고, 저는 그들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이집트는 기적의 땅입니다.

타흐히르 광장의 시위. 저만치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이 보입니다.
가자(Gaza)지구로 가는 국경을 개방할 것을 이집트 정부에 요구하는 시위대
다슈르에서…

 

/사진: 곽민수

필자소개
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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