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그곳, 네팔 카트만두에 가다
대지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그곳, 네팔 카트만두에 가다
대지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그곳, 네팔 카트만두에 가다
2016.05.18 17:01 by 홍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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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천공항에 왔어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지난 2월 15일, 카톡방에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인사를 남겼습니다.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이들은 올해 초부터 26일간의 합숙 교육을 함께 했던 KOICA-UNV 대학생 봉사단 1기생들. 그새 정든 언니, 오빠, 친구들과의 헤어짐에 아쉬움도 컸는데요. 저는 그렇게 첫 맞춤 정장을 입고, 고추장과 김자반을 바리바리 챙긴 짐가방을 들고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KOICA-UNV 대학생 봉사단

제1기 KOICA-UNV 발단식에서 (사진: KOICA)

KOICA-UNV 대학생 봉사단은 대학생(학부) 수준의 경험으로 국제기구에 도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직 국제기구를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은 한국 청년들에게 국제무대 경험 기회 제공을 목적으로 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UN 산하기구와 협력해 제1기 KOICA-UNV 대학생 봉사단을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국제기구로 나아가는 출발점에 선 봉사단은 가나, 네팔, 라오스, 몽골, 방글라데시, 벨라루스, 스리랑카, 우주베키스탄, 케냐, 피지 등 10개국의 UN 현지기구에 파견돼 6개월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저는 15명의 단원들 중 가장 처음으로 현지에 도착했는데요. 그만큼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떨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7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곳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저는 바로 다음 날부터 UNFPA(유엔인구기금)라는 곳에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반겨준 카트만두의 맑은 하늘, 열정적인 사람들

흔한 네팔의 먼지 가득한 날씨

네팔을 떠올리면 보통 ‘청정지역’, ‘히말라야’, ‘대자연’, ‘맑은 공기’ 등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수도인 카트만두는 정반대입니다. 카트만두는 세계에서 4번째로 공기 오염이 심한 도시로 숨쉬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밖에선 공사용 마스크를 쓰고, 눈이 너무 따가워서 선글라스도 끼고 다녀야 할 만큼요. 출국 전에도 ‘카트만두 공기는 최악’이라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잔뜩 겁먹고 왔는데, 막상 도착했을 땐 의외의 맑은 하늘이 저를 반겼습니다.

UNFPA 사무소의 옥상 전망은 정말 좋습니다.

사무실 옥상에서 동료들이 “히말라야 보기 정말 힘든데, 너 참 운 좋다”며 저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를 콕 집어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운 따위 없는 제가 운 좋다는 소리부터 들으니 앞으로의 6개월에 대한 왠지 모를 좋은 예감이 들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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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네팔에서 일하고 있는 UNFPA(유엔인구기금)는 세계 인구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며 언론 및 교육사업, 인구밀도 조사와 같은 기본 자료 수집 등의 일을 전개합니다. 이 외에도 개발도상국의 인구정책과 관련한 특별사업을 펼치는데요. 개발도상국의 인구정책과 가족계획을 위해 각 대상 국가에 적합한 방법으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원조를 제공하며, 가족 계획의 인권적 측면에 관한 인식, 세계의 인구 문제가 갖는 사회적‧환경적 의미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합니다.

쉽게 풀면, 평등성을 추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모든 여성들과 청소년들 그리고 아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 꿀 수 있도록 돕는 열정 넘치는 곳입니다. 동료들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열정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오죠.

“이런 일들은 다 UNFPA 네팔 사무소를 위한 것이고, 네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에요”라는 말로 대화를 자주 마무리 하는 슈퍼바이저 산토시(Santosh), 자기소개를 하며 “난 지금 내가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라는 말을 해준 성평등 팀 다니엘(Danielle) 덕분에 좋은 예감은 더더욱 커졌습니다.

전기와 뜨거운 물은 사치

카트만두에선 길거리에서 소를 만나는 게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퇴근만 하면 걱정이 시작됐습니다. 때로는 매연과 먼지뿐만 아니라, 소와 개들까지 반겨 줄 때도 있었죠. 먹이를 찾는 눈빛으로 쳐다보다 ‘왈왈’ 짖으면서 달려드는 일이 다반사였지만요.

여기선 뜨거운 물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온수를 사용하려면 전기가 들어오길 기다려야 하거든요. 에너지 부족 국가인 네팔은 하루에 평균 11시간씩 정전이 됩니다. 구역별로 정전 스케줄이 정해져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네팔에선 도착하자마자 받아야하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습니다. 바로 정전 시간을 알려주는 어플 ‘Loadshedding’입니다.

네팔에선 정전 스케줄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 ‘Loadshedding’이 필수입니다.

보통 정전 중일 때는 최소한의 불과 와이파이 공유기와 노트북,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전기가 들어옵니다. 콘센트 하나 정도 사용 할 수 있지요. 그러니 전기보일러를 사용하는 건물에선 샤워도 시간에 맞춰서 할 수 밖에요. 운 좋으면 가스나 태양열을 사용하는 집들을 만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3개의 임시숙소를 거쳤던 처음 한 달 동안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던 게 총 7번이었습니다. 샴푸하다 물이 끊기는 일에도 익숙해지기까지 했죠.

네 번의 이사, 

카트만두에서 집 구하기

가장 큰 난관은 6개월 동안 지낼 집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카트만두에서 한 달 반 동안 숙소를 네 번 옮긴 끝에 지금의 집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호텔,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집, 홈스테이, 아파트 순으로 묵었었는데, 여기서 집을 구하는 덴 ‘지인찬스’ 만한 게 없더라고요.

도착 후 부동산을 통해 알아보는 방법도 있지만, 작년 대지진 이후로는 건물에 금이 없는지, 온수‧전기 수급 루트가 안정적인지 필수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카트만두에선 아는 사람을 통해 추천을 받는 것이 가장 믿음직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출국 전 동료가 추천해준 호텔에서 5일, 또 다른 동료가 추천해준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7일, 또 다른 동료가 소개해준 곳에서 14일간의 홈스테이, 그리고 다른 UN 봉사단에게 추천 받은 (마지막 숙소가 될 뻔한) 아파트에서 14일 동안…. 한 달 넘게 유목민처럼 집을 옮겨가며 생활했습니다.

카트만두 파탄 지역에 위치했던 첫 숙소 ‘The Yellow House’ 에서 마신 찌야. 카트만두에서 정말 찾기 힘든 24시간 온수 및 전기 사용이 가능한 곳! 비교적 비싼 호텔이었지만 쾌적한 시설에 친절한 서비스까지, 강력 추천하고 싶은 호텔입니다.
니나 아줌마와 함께한 홈스테이

그래도 첫 숙소는 조식이 참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엄마처럼 챙겨줬던 홈스테이 집 아주머니 니나(Neena) 덕분에 첫 한 달을 무사히 보냈습니다. 혼자 살면서 밥 먹을 때가 제일 외로웠는데 니나 아줌마는 식사 때마다 앞에 앉아서 기다려 주었죠. 하루는 폭우가 내렸는데, 집에 들어가니 연락이 없어 걱정했다며 따뜻한 차를 내주시는 등 항상 반겨주셨습니다. 낯선 곳이었지만 엄마가 챙겨주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나만을 위한 집을 어서 구하고 싶었고, 작년에 파견 된 유엔 봉사자의 추천을 통해 겨우 아파트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천장의 금이 나날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네팔 대지진 이후 모든 UN 직원들은 UNDSS(유엔보안국) 엔지니어에게 집이 안전한지, 그리고 지진을 버틸 수 있는지 검사를 받게 되어있는데, 이 집에 머무르는 것을 추천하지 않았던 엔지니어의 말에 또 다시 집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물이 자주 끊겼던 두 번째 숙소

“자취는 어려워”
식수, 먹을 것 구하기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집을 구하게 되었으나, 집을 구하니 또 다른 문제가 닥쳤습니다. 바로 식재료 구하기였죠. 동네에 대형마트도 있고, 일반 슈퍼마켓도 꽤 많은 카트만두에선 생필품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수입품도 많고, 가장 중요한(!) 한국 과자와 라면도 많아 크게 문제는 없었으나, 채소와 과일을 살 땐 꼭 조심해야합니다. 농약을 많이 쓰기로 유명하거든요. 일반 마트가 아닌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취급하는 마트에서 사거나, 외국인들에게 추천 받은 가게에서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리고 먹기 전에 식수로 세척하는 것은 필수지요.

동네 마트에 진열된 한국과자

수도 시설이 미흡한 네팔에선 배탈 방지를 위해 온갖 수단을 활용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날씨가 더워지는 때에는 주의해야 하는데요. 설거지를 하고 물기를 완전히 닦아 없애는가 하면, 대부분의 가정에선 식수를 배달 받습니다. 요리할 때는 꼭 식수를 사용하고, 그냥 마실 때는 정수기로 한 번 더 정수해서 마십니다.

요리할 때 조심해야하는 점들이 하도 많다 보니, 사실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팔에 카페가 있다는 걸 듣고 놀라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와이파이도 잘 터지고 메뉴도 다양합니다. 공정 무역 커피를 파는 곳들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네팔에서도 자연스레 카페순이가 되어버렸네요.

공정 무역 커피점 'Top of the World'
브런치 먹기 좋은 'Café Soma'
한국 NGO가 운영하는 '아름다운커피'
화덕피자가 유명한 'Roadhouse'

네팔은 아직 회복 중

지난해 4월 25일, 네팔은 크게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카트만두에서 100km도 채 안되는 곳에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80년만의 큰 지진이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네팔 사람들은 그때 느꼈던 공포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홈스테이를 하던 집에서도 식사시간에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지진 이야기가 자주 나오곤 했습니다.

“온 집이 양 옆으로, 위아래로 흔들리는 바람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일어나면 넘어지고, 기어가도 넘어지고…. 지진 후엔 거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모여서 지냈는데, 이따금씩 엄청 큰 트럭이 지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어요. 그럴 때면 또 집이 심하게 흔들렸어요.”

이 집의 막내 딸 마히마가 설명해줬습니다. 웃음기를 섞어가며 이야기하다가도 지진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고개를 떨곤 했는데요. 그 당시의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졌었죠.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에서도 지진의 후유증을 자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지난해 지진을 겪은 사람들인데요.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던 중 큰 차가 지나가는 소리나 공사 소리에 멈칫하다가 “지진인 줄 알았다”며 사과하는 동료들의 모습에서 작년 대지진이 남긴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지지대로 겨우 버티고 있는 건축물들

사실 네팔은 건축 양식이 참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나무 장식을 좋아하는 저에게 네팔의 건축물들은 그야말로 ‘취향 저격’이었지만, 작년 대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 되었던 62미터 높이의 다라하라 탑, 19세기까지 네팔 왕가가 살았던 곳인 바산타푸르 두르바르 광장, 가장 오래된 불교 유적 중 하나인 보다나트 스투파까지 모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 불국사, 석굴암이 모두 무너진 건데요. 지금도 당시의 일을 입에 올리기 힘들어하고, 갑자기 밖에서 큰 소리가 나기라도 하면 지진으로 착각하고 놀라는 네팔의 사람들…. 무너진 유산들을 눈으로 볼 때마다 마음의 상처가 덧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사진: 홍승영

UN 희망원정대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나, 피지, 스리랑카. 이 여섯 나라에서 활동하는 UN 봉사단 청년들이 현지에서의 활동과 생활을 고스란히 글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각자가 속한 UN 기구에서의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사회와 문화, 여행정보 등 6개월 동안 보고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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