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반장 없는 마파두부
두반장 없는 마파두부
2016.05.24 10:46 by 이민희

몇 해 전 두반장 소스를 샀다. 마파두부 덮밥 만들어보겠다고 집어 들었는데, 두 번 가량 해먹고 그런 게 있다는 걸 잊었을 만큼 아주 오래 냉장고에 머물다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미련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 장기간 활용할 요령이 없는 재료들을 이제는 좀처럼 사지 않지만, 집밥 백선생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그리고 일을 통해 대련 출신의 중국 호스트 장연씨를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백종원 선생도 장연씨도 마파두부밥을 잘 만든다. 그리고 둘은 두반장 소스를 쓰지 않는다.

대련 출신의 중국 호스트 장연씨가 만드는 마파두부. 두반장이 없어도 충분하다. (사진: 원파인디너)

두반장은 필요 없다

장연씨가 마파두부 만드는 걸 지켜봤다. 일단 야채를 잘게 다져 고기와 함께 기름에 볶는다. 그리고 된장, 고춧가루, 약간의 다시다를 넣는다. 이어서 두부를 넣고 살살 볶다가 물과 전분으로 농도를 맞추면 끝이다. 재료도 친숙하고 조리 자체도 굉장히 간단한데 중국집에서 먹는 마파두부와 비교해 모자란 구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맛은 훨씬 좋았다. 백선생의 레시피도 비슷하다. 된장과 고춧가루가 기본이고, 약간의 고추장과 간장 그리고 설탕이 추가된다.

장연씨에게 어떻게 이런 방법을 터득했는지를 물었다. 예전에는 그냥 중국 식료품점에서 두반장 소스 비슷한 재료를 사다가 만들었는데 (한국인) 남편이 별 반응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인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가 서로서로 남편의 편식을 험담하던 중에, 장연씨의 남편보다 더 입맛 까다로운 한국 남자와 결혼해 끊임없이 레시피를 실험하고 있는 친구가 똑같은 경험을 했다며 방법을 일러줬다 한다. 친구의 조언을 따라 된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약간의 다시다를 섞어 다시 만든 끝에 장연씨도 마침내 남편은 물론 동료로부터 극찬을 얻었다.

사실 두반장이 무엇인지를 알면 대체제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반장은 매운 요리로 유명한 사천지방의 대표적인 식재료로, 콩과 함께 매운 고추를 오랜 기간 발효해 만든 페이스트, 즉 장이다. 매운 맛(사실 맛이라기보다는 입 주변이 얼얼해지는, 통증에 가까운 느낌)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산초를 더하기도 한다. 지역마다 혹은 만드는 사람의 재료 결정에 따라 풍미가 달라지긴 하지만 어쨌든 근본은 콩과 고추다. 그러니 완전 똑같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된장과 고추장의 결합 정도가 되는 소스라고 할 수 있다.

장연씨 마파두부의 재료들. (사진: 원파인디너)
위의 재료들을 넣고 전분물을 만들어 농도를 맞춘다. (사진: 원파인디너)

다양한 마파두부

각종 책과 자료들이 말해주는 마파두부의 기원은 19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파두부의 마(麻)는 곰보, 파(婆)는 할머니를 뜻하는데, 사천의 청도 지방에서 얼굴에 흉터가 있는 할머니가 점포에서 선보여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는 요리다. 고기와 두부를 사다가 갖다주면 즉석에서 조리했다는 얘기도 있다. 밥값을 조금이라도 아끼는 방법이었는데, 장연씨에 따르면 이는 중국에서 여전히 흔한 방식이다. 재료를 주면 훨씬 싼 값에 결과를 만들어주는 음식점 찾기가 어렵지 않다고 한다. 특히나 그녀가 성장한 대련은 중국 동북 해안가로,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생선과 조개를 잡아 음식점으로 간다.

마파두부는 사천 지방의 대표 요리지만, 사천 출신이 아닌 장연씨도 마파두부에 관해 보탤 말이 많다. 그녀는 오징어나 새우, 조개가 들어간 마파두부를 자주 즐겨왔다. 해안가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고기 없는 마파두부도 자주 먹었다. 두부는 예나 지금이나 싸다. 한국 사람들이 두부를 한 모씩 살 때, 중국 사람들은 두부를 kg 단위로 사서 즉석에서 먹고 남으면 잘라서 냉동실에 뒀다가 나중에 쓴다. 건두부부터 쌈두부까지, 심지어 삭힌 두부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형편이 어렵던 시절에는 두부만 있는 마파두부를 자주 먹어왔지만, 경제수준이 달라진 오늘의 중국에서 젊은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 고기가 가장 중요한 식재료가 되었다는 것도 그녀의 설명이다.

마파두부가 다양한 것처럼 중국 사람들은 두반장도 다양한 용도로 쓴다. 우리가 쌈장을 먹는 것처럼 야채에 찍어 먹기도 하고, 야채 볶음 및 계란찜의 간을 맞출 때 간장처럼 쓰기도 한다. 냉장고는 텅텅 비었고 쌀만 있을 때면 그냥 밥에 비벼 먹는다. 한편 장연씨는 중국의 두반장을 한국의 김치와 비교한다. 김치가 그런 것처럼 시골의 어르신 여럿이서 만들고, 부모님이 만들어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것이고, 우리가 시장과 마트에서 쉽게 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두반장 또한 중국산부터 대만산까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공산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단조로운, 아니 미지의 마파두부

어느 중국집은 짬뽕이 맛있고 어느 중국집은 짜장면을 잘한다. 그런데 마파두부로 유명한 중국집은 찾기 어려운 것 같다. 들어가는 재료가 다 비슷하니 맛도 비슷하고, 그래서 짬뽕과 짜장면만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 없이 고르게 되는 메뉴다. 장연씨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기본 소스는 물론 부가 재료까지 바꾸고 대체할 여지가 많은데, 우리가 접하는 마파두부는 여전히 단조롭다.

문득 짜장면이 생각난다. 짜장면은 무려 2006년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한국 100대 민족문화상징’ 가운데 하나로 꼽힌 음식이다. 한편 2011년 국립국어원은 짜장면을 어쩐지 발음하기 참 민망한 ‘자장면’과 함께 복수 표준어로 인정했다. 그런 짜장면의 재료와 맛이 얼마나 다양한지는, 거기에 더해 짜장면에 얼마나 많은 개인의 추억과 사연이 깃들어 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기원이 중국일지언정 한국의 상징적인 음식으로 이미 오래 전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다.

그에 반해 마파두부는 짜장면처럼 살가운 음식이 아니라서 발전이 더뎠을까. 사천식 오리지널과는 그래도 거리가 있겠지만 아직까진 순수한 중국음식에 속한다는 인식 때문일까. 마파두부는 과연 감히 손을 대기 어려울 만큼 존중받는 외국 음식인지 중국집 변방에 위치하는 매력 없는 메뉴라 요식업계가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감히 단정하긴 어렵지만, 중국인 동료의 설명을 종합하니 개척의 여지가 풍성한 미래지향적인 음식으로 느껴진다. 시판용 두반장이라는 권위와 살짝 거리를 두는 것이 시작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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