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아, 우리 네 밤 자고 만나자
초록아, 우리 네 밤 자고 만나자
초록아, 우리 네 밤 자고 만나자
2016.06.20 16:21 by 지혜

아이와 잠시 헤어져야 하는 엄마에게  <일요일 아침 일곱시에>, <아모스 할아버지가 아픈 날>

오늘은 초록이 대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얘기로 시작하지만 이 글을 읽을 엄마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임신과 출산은 그 자체로 커다란 세계이다. 그 세계에서 온전한 ‘나의 것’은 없다. 특히 몸이 그렇다. 내 몸 안에 생긴 아이는 서서히 자라면서 자신의 자리를 늘리기 시작하고 우리는 한 몸을 나눠서 써야 한다. 공평하게 두 몫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몫은 늘 아이의 몫을 위해 쓰인다. 그렇게 그 세계를 지나오는 동안 내 몸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발목이 시큰하고 무릎은 쑤신다. 소화도 잘 안되고 항상 피곤해서 자리만 생기면 눕고 싶다. 임신과 출산이 끝났어도 나를 지킬 면역력은 이미 바닥이 나서 자꾸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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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또 상처가 생겼다.

오래된 상처는 초록이가 나오던 날 생겼다. 아기가 태변을 잔뜩 먹어 위험한 상태라는 말을 들었다. 자연분만을 기다리지 못하고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갔다. 몇 시간 뒤, 나와 몸을 나누던 초록이는 내 아랫배에 기다란 상처를 남기고 바깥으로 나왔다.

이번에 생긴 상처는 난소에 생긴 혹을 떼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의사는 수술 과정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마지막 사진은 커다란 혹이 사라지고 훤히 들여다보이는 뱃속이었다. 내 몸이지만 생경했다. 이곳에서 열 달 동안 초록이는 온몸을 잔뜩 구겨 넣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나보다 먼저 내 몸을 보았고 그곳에 익숙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늘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몸이 나와 붙어 있을 때에만 불안을 내려두고, 먹고 놀고 잠들었다. 초록이가 유난히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기도 했고 나도 당분간은 초록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이때껏 서로의 부재를 느낄 순간은 없었다.

그런데 난소에 혹을 제거하는 수술부터 회복까지 5일 동안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아주 긴 시간이었다. 온통 초록이 걱정이었다. 엄마 없이 밤을 받아들이고 잠들 수 있을지, 엄마 없이 밥은 골고루 잘 먹을 수 있을지, 엄마가 없다고 괜히 풀이 죽어서 울지는 않을지, 엄마가 없는데 어디 아프지는 않을지, 엄마 없이 어떤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잠깐의 부재가 아이 삶 전체를 흔들어 놓을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1-2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있어야 된대. 네 밤만 자고 올게 엄마 없다고 울지 말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밥 잘 먹고 있어. 씩씩하게 할 수 있지?”

손가락 네 개를 꼽으며 울먹거리다가 잘 해내면 엄마가 선물 가지고 돌아온다는 말을 듣더니 금세 웃는다. 초록이는 가방에 곰돌이 인형 두 개를 챙겼다. 보통 하나만 안고 자는데 마음이 떨려서 양팔에 하나씩 안고 있어야 된다고 했다.

“곰돌이 둘 다 안고 자다가 안 무서워지면 하나만 안고 잘거야. 그러다가 나 혼자도 잘 수 있을걸? 그런데 엄마 정말 네 밤만 자면 오는 거지?”

초록이는 얼마나 마음을 굳게 먹었던 걸까.

병원에 있는 내내 초록이 생각을 했다. 곁에 있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었다. 초록이에게 울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으면서 나는 울었다.

“엄마, 내가 사실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막 나려고 그러는 거야, 그런데 눈물 안 흘렸어. 참았어. 조금 나오긴 나왔는데 이렇게 닦았지. 그런데 엄마 배 많이 아파? 그러면 기다릴 테니까 안 아플 때 나 안아줘야 돼”

네 밤을 자고 드디어 만난 아이가 그랬다. 언제나 그렇듯이 초록이는 내 예상을 벗어났다. 난 모르고 있었다. 초록이가 이토록 단단하게 야물고 있다는 것을.

나의 몫을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한, 그래서 나는 주고 아이는 받는 것이 당연했던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변할 것 같다. 우리가 한 몸을 나눠쓰던 시절이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이의 세계를, 나는 나의 세계를 가지고 마주 보고 서야 할 시간이 되었다.

 

너는 나와 같은 시간 다른 곳에 서 있지 <일요일 아침 일곱 시에>

어느 일요일 아침 일곱 시,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혼자 일어난 아이는 조용한 방 안에서 문득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곳에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겠지?

지금 이 순간 어떤 곳은 함박눈이 펑펑 내려 지붕 위에 쌓이고 있을 것이다. 어떤 곳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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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새벽일 수도 있고 한밤중일 수도 있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고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주인공처럼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곳도 조용히 비가 내리는 일요일 아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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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마지막 장면은 나에게 넌지시 일러주는 듯하다. 아이의 세계를 품에 안으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마주 하라고.

<일요일 아침 일곱 시에>를 처음 봤을 때에는 같은 순간이라도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아이에게 알려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을 몇번 읽은 지금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록이가 친구에게 거절을 당하면 마음을 다칠까봐 늘 얘기했다. 너도 마음이 있고 친구도 마음이 있는데, 그저 너와 마음이 다른 것뿐이라고. 자신의 마음은 수많은 마음 중에 하나이고, 그 마음들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좋은 책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게도 위로를 건넨다. 나도 마음이 있는 것처럼 아이도 마음이 있으며 같은 순간 함께 있어도 나와는 다른 경험으로 아이가 직접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또 있다. <일요일 아침 일곱 시에>가 나와 아이가 마주 해야 하는 이유, 그러니까 누구나 자신의 세계가 있으며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면 <아모스 할아버지가 아픈 날>은 그 뒤에 이야기를 전한다.

 

나에게 오고 있을 너를 기다릴게 <아모스 할아버지가 아픈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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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할아버지는 부지런한 동물원 지기이다. 매일 아침 여섯 시에 버스를 타고 동물원을 간다. 동물원에 가면 할 일이 아주 많지만 친구들 방문하는 일은 절대 거르지 않는다. 코끼리 거북이 펭귄 코뿔소 부엉이 곁에서 할아버지는 사랑을 베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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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할아버지가 아프다. 그러나 어떤 걱정이나 불안 없이 그저 침대 안으로 다시 들어갈 뿐이다. 동물들은 할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기로 한다. 할아버지는 친구들의 방문에 어떤 염려의 기색도 없이 활짝 웃는다.

동물 친구들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곁에서 사랑을 베푼다.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잠든 그들의 표정은 안정적인 관계가 주는 편안함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오래오래 보고 싶은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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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할아버지와 동물 친구들의 우정이 주는 따뜻한 감동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오늘은 엄마들을 위로 하고 싶은 날이니까.

이 그림책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제목 그대로 할아버지가 아픈 날이다. 늘 보살핌만 받던 동물 친구들은 할아버지가 동물원에 오지 못한 날 스스로 동물원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 할아버지 집으로 간다. 할아버지가 항상 곁에 있었다면 동물 친구들은 동물원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부재가 성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가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비로소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가 불안과 걱정을 이기지 못하고 늘 아이의 곁을 지킨다면 아이는 성장할 수 없다.

그러니 아이를 두고 잠시 떠나 있어야 한다고 해서 걱정을 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엄마는 ‘잠시’ 떠난 것이고 곧 돌아 올 것이라는 것을 아이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기다림은 결핍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며 자신의 세계를 발견할 기회이다.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면 따뜻하게 웃으며 아모스 할아버지처럼 말해주는 것은 어떨지.

“고마워. 우리 차 한 잔씩 할까”

Information

<일요일 아침 일곱 시에> 저자: 김순이 | 그림: 심미아 |출판사: 보람출판사 |발행연도: 2009. 01. 22|가격: 9800원

<아모스 할아버지가 아픈 날> 저자: 필립 C. 스테드 |역자: 유병수 |출판사: 별천지 |발행연도: 2011. 03. 18 |가격: 9000원

/사진: 지혜

그림 같은 육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신 개념 육아일기. 이를 통해 ‘엄마의 일’과 ‘아이의 하루’가 함께 빛나는 순간을 만든다.

필자소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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