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의 기분
난초의 기분
2016.10.10 22:16 by 오휘명
(사진:nadinart-Nadezda Kokorina/shutterstock.com)

“미친 소리지.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에 물을 두세 번 준다니. 자고로 난초라는 것은…….”

아버지가 내 팔과 다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어 닦으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자고로 난초라는 것은-으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은 시간과 계절, 그리고 사무실을 방문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최소 삼십 분이 넘도록 이어지곤 했다. 늦둥이로 얻은 딸아이를 자랑하는 모습이 그것과 닮았을까. 나는 그의 딸도 아들도 아니었기에 아버지의 저러한 모습이 조금은 창피했지만, 몸을 떨거나 발치의 흙을 흔들어 소리를 낸다고 한들 아버지는 듣지 못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리고 나의 주관으로 보기에도 썩 좋은 인상을 지닌 남자는 아니었다. 나이는 오십 줄을 넘겨 날이 갈수록 이마의 면적이 넓어지는 것이 명확히 보였고, 팔다리며 어깨가 빠짝 말라 지극히 연약한 풍채를 보고 있자면, 아. 이 사람은 정말로 나의 아버지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나에게만큼은-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몹시 다정했기 때문에, 나는 때때로 그가 이 사무실을 나갈 때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다.

연설을 듣던 손님이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는 대답을 했다. 코 주변의 주름으로 봐선 아버지와 비슷한 나잇대로 보였다. 필시 아버지 공장에 원료를 댄다거나, 그것과 관련한 부탁을 하러 이 사무실로 찾아왔으리라.

“해박하기도 하셔라. 사장님께서 언젠가 사모님을 들이신다면 그분은 분명 교양이 넘치고 아름다운 분이실 겁니다, 그래야 사장님과도 어울릴 테니까요.”

불쌍한 아버지, 그의 어깨가 바람에 맞서는 식물의 이파리처럼 잠시간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실제로 외로운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저렇게, 오, 그런 것 같습니까, 하하, 하며 호탕하게 웃지만, 손님이 방을 나서고 나면 그는 늘 울상을 짓곤 했으니까. 어쩌면 저 사람은 나를 아내 또는 딸자식처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뭐, 그가 나를 그토록 소중히 여긴대도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물을 빨아 먹거나, 죽지 않으려 온도 변화에 적응하는 정도뿐이었으니. 별 수 없었다.

*

찰칵.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향해, 나의 꽃으로 활짝 웃어 보이는 것으로 이곳은 밤을 맞는다. 아버지는 매일매일 나의 사진을 몇 장 찍고 난 뒤에야 사무실의 전등을 끄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새벽 사무실의 주인은 늘 나였다. 가벼우면서도 쇳소리가 조금 섞인 목소리를 짐짓 흉내 내본다.

“예로부터 난초는 매화,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 여겨질 만큼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식물이었죠. 그리고 난초는 그중에서도 으뜸이에요. 대나무는 꽃이 없고 매화는 꽃이 필 때쯤이면 이파리를 볼 수가 없는 반면, 난초는 꽃과 잎과 향기를 모두 지니니까요. 보세요. 이 길고 시원하게 뻗은 잎들을요.”

나의 아름다움에 관한 말을 정작 내가 따라 하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무실에 서늘한 공기가 흐른다. 나는 이런 서늘함을 좋아한다. 팔다리를 흔든다. 욕조에 팔과 다리를 걸친 채로 까딱거리며 거품목욕을 즐기는 기분이 이것과 비슷한 기분일까. 기분 좋은 느낌들 속에서 나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말을 따라 한다. 일종의 나르시스트가 된 것만 같다.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식물이었죠…선비정신…….”

그렇지만 ‘선비정신’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버지가 손님들을 향해 했던 말로 추측해보자면, ‘선비’라는 존재들은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쳤을 정도로 고집이 셌으며, 사사로운 것들에 마음을 두거나 고민하지 않는 존재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들과 다르게 나는 아주 약한 존재였다. 규칙적으로 물을 먹어야만 살 수 있었고, 곰팡이라든가 뜨거운 공기라도 살갗에 닿으면 죽을 만큼 아파하곤 했었다. 이런 나의 연약한 몸뚱이 탓에 아버지는 여름이면 온종일 에어컨을 틀어두곤 하셨다. 내게 물을 먹이고 나선 꼭 창문을 열어 통풍이 잘되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그런 따뜻한 배려들 덕분에 나는 이 기분 좋은 서늘함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살짝 열린 창으로부터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바람이 지속해서 불어와 나의 팔다리를 간질인다. 선비라는 인간들은 사치스럽지도 않았다는데, 이런 사치스러운 시간이라니. 역시 나는 선비정신이라는 것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먼 것이겠지.

돌연 바람의 일정했던 결이 조금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경계한다.

“야옹-.”

창가에 고양이가 가까이 다가온 탓이었나 보다. 저 고양이는 이 공장의 주변을 영역으로 두고 있는 듯했고, 가끔 창틀 주변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몹시 굶주린 모습이었다. 나는 조금이나마 이파리를 더 흔들어 반가움을 표한다. 안녕, 나도 이곳에 살아. 너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고양이가 빤히 나를 응시한다. 마치 내 인사를 듣기라고 한 것처럼. 덕분에 나도 그의 바짝 마른 몸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분명 아주 오랜 시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기껏해야 사람의 주먹 하나 들어올 정도로 빠끔히 열린 창문으로 그가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앞발과 마른 가슴과 몸통, 뒷발까지, 물처럼 미끄러지듯.

고양이는 사무실로 들어와, 찬찬히 주변의 물건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코를 갖다 대 킁킁거리고, 혀도 날름거리면서. 아마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먹을 것을 찾으러 들어온 것이겠지.

“저쪽 구석에 작은 냉장고가 있어. 열 수 있으면 뭐라도 꺼내먹지그래.”

그가 관찰을 멈추고 다시금 나를 쳐다봤다. 그래, 저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듣는 게 맞아. 나는 반가운 기분이 들었지만, 그가 방향을 틀어 내가 있는 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맛있는 게 있다니까, 그걸 먹어, 그는 멈추지 않는다. 고양이가 다가온다.

나는 조금 더 벌어진 창문으로부터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에 몸을 떤다. 고양이가 나의 팔과 다리를 핥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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