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속 동물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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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속 동물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영정 속 동물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2016.11.15 19:01 by 최현빈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모습을 영정 속에 담는 이가 있다. 바로 성실그래픽스 김남성(37) 대표다.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를 28종 동물들의 초상화를 내걸며, 2012년 '성실화랑'을 론칭했다. 어느덧 4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때 액자 속에 있던 동물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까.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성실화랑 작업실을 찾았다. 작업실 겸 쇼룸인 이 공간에서 무표정한 얼굴의 동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대표와 마주 앉아 액자 속 동물들의 안부, 그리고 화랑의 안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성실화랑 김남성 대표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려낸 4년의 시간

4년, 디자인 브랜드로선 꽤 긴 시간이다.
김남성(이하 김): 처음엔 성실그래픽스라는 회사의 고유한 콘텐츠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디자인 에이전시들은 주로 다른 회사의 일은 대행하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크게 키워볼 생각은 없이 시작했는데 어느덧 우리끼리 3주년, 4주년을 축하하고 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김: 그렇다. 초기 아이디어는 멸종위기 동물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은 도감이나 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는 우리의 작업이 과연 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

그러한 의문은 해결되었나
김: 아주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확신한다. 2012년 성실화랑을 만든 이후 강아지, 유기견, 동물 인권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많이 늘어나지 않았나? 우리가 선도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다만 조금 더 오래됐으니 다른 사람이나 브랜드에 좋지 못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김 대표의 성실그래픽스는 지난 8월, 그동안 그려왔던 50종의 멸종위기 동물들의 초상화를 담은 책 <멸종위기동물 그래픽 아카이브>를 출간했다. 지난 6월부터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와디즈(Wadiz)에서 진행된 모금은 212명의 후원을 받아 약 6백만 원, 목표 금액의 119%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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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그래픽스가 8월 출간한 아트북 <멸종위기동물 그래픽 아카이브>

현재까지 초상화로 담은 동물은 총 몇 종인가
김: 현재까지 작업한 동물이 총 53종, 가장 최근엔 해달을 그렸다.

4년이란 시간 동안 동물들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나
김: 그림의 스타일은 계속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래야 처음에 생각했던 의도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대신 세심한 부분에는 더 신경을 쓰려고 한다. 초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동물의 모습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느낌이 강하다. 지금은 단순화시키는 부분은 단순화시키되, 각 동물의 특징을 드러내는 부분들은 더욱 세밀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사막여우의 모습. 단순해 보이지만 털과 귀 부분의 디테일이 돋보인다.

그림 속 동물들은 하나의 캐릭터인가
김: 우리는 동물들을 ‘이미지화’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캐릭터라고 하면 보통 더 과장되고, 희화화되는 부분이 있다. 눈이 더 커지거나, 몸통이 작아지는 등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왜곡이 일어난다. 성실화랑 속 동물들은 초상화라는 개념 그대로다. 얼굴은 정면으로, 하반신은 보이지 않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이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간직한다는 개념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동물은 웃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영정이란 느낌의 초상화지만, 자세히 보면 웃는 것 같다.
김: 사실 ‘웃는다’라는 개념은 사람들의 생각이 아닐까. 동물들은 대부분 무표정하다. 생긴 그대로 표현됐을 뿐인데 사람의 눈에 웃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혹시 초상화 속 동물 중 실제로 사라진 동물이 있나
김: 다행히 아직은 없다. 각 동물의 얼굴 옆에는 작은 등급이 표시되어 있는데,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에서 지정한 멸종위기등급이다. 4년 동안 작업을 해오면서 위기 등급이 올라가거나, 반대로 내려간 동물은 있다.

국제자연보호연맹이 2~5년마다 발표하는 생물 다양성에 관한 보고서, 정식 명칭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고서’이다. 표지에 위험 신호를 뜻하는 빨간색을 사용하기 때문에 Red list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래는 아홉 종류로 분류된 동식물의 멸종위기 등급

ㆍ멸종(EX : extinct) : 마지막 개체가 죽음. IUCN에서는 1500년을 기준으로 근대 멸종과 그 이전 멸종을 구분한다.
ㆍ야생멸종(EW : extinct in the wild) : 분류군이 야생에서는 사라져 인간에 의해 보호된 상태에서 관리되고 있는 상태.
ㆍ위급(CE : critically endangered) : 분류군이 야생에서 빠른 시간 내에 극심한 멸종위기에 처한 상태.
ㆍ위기(EN : endangered) : 야생에서 가까운 미래에 매우 높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될 동물들.
ㆍ취약(VU : vulnerable) : 분류군이 야생에서 몇 달이나 몇 년 안에 높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됨
ㆍ취약근접(NT : near threatened) : 취약 등급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그 조건에 충분히 맞지 않음
ㆍ관심 필요(LC : least concern) : 위 등급에 포함되지는 않으나 주시할 필요가 있는 낮은 강도의 위험에 처해 있음
ㆍ자료부족(DD : data deficient) : 분류군의 직ㆍ간접적인 멸종위기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정보가 부족함
ㆍ평가불가(NE : not evaluated) : 평가가 이루어진 바 없음

(출처: pmg지식엔진연구소)

어떤 동물이 더 멸종 위험에 빠졌나
김: 우리에게 익숙한 펭귄 같은 경우에는 가장 낮은 LC(관심 필요종) 이었는데, 현재는 NT(취약근접)로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갔다. 랫서 판다의 경우에도 VU(취약종)이었는데, EN(위기종)으로 등급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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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 수가 감소한 황제펭귄과 랫서 판다

반대의 경우도 있나
김: 자이언트판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판다의 학명이다. 원래는 EN(위기종)이었는데 개체수가 늘어나 VU(취약종)으로 등급이 내려갔다.

이들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서식지 파괴가 가장 심하다. 생태 조사를 거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멸종 위기 동물들의 서식지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필리핀 독수리라는 위기종이 있었는데 필리핀의 국조(國鳥)다. 필리핀의 열대림이 개발되면서 이들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지금은 암수 400쌍 정도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이 되었다고 한다. 필리핀에선 뒤늦게 이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하더라.

멸종 위기에 처한 필리핀독수리. 세계에서 가장 큰 독수리이기도 하다.(사진: Stephane Bidouze / shutterstock.com)

멸종위기 동물 보호는 궁극적으로 환경 보호로 직결되는 것인가
김: 그렇다.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귀엽고 예쁘게 생겼기 때문에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위해 보호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환경이 파괴되면 동물이 서식지를 잃어 죽게 되고, 그러면 그 피해는 인간에게 고스란히 오게 된다.

국내에도 많은 멸종 위기종이 있다. 특별히 애착을 갖는 동물은 없는가
김: 동물을 그리기 시작한 뒤로 항상 그 질문을 하더라. 그럴 때마다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어느 특정한 동물에게 애정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성실화랑이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일관성인데, 그러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동물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이 작업의 지속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림과 관련한 제의들이 많이 들어올 것 같다.
김: 각 지역의 자치단체에서 요청이 많다. 마케팅을 위해선 동물만큼 좋은 게 또 없으니까. 나는 국가, 지역의 논리가 동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지역에 걸쳐 산다고 해서 얘는 우리 동물, 쟤는 저 동네 동물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우리 지역의 동물을 캐릭터화하자 이런 요청이 있어도 받지 않고 있다. 대신 동물 보호를 위해 좋은 일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돕고 있다. 예를 들면 관련 행사에 참석해 사람들에게 강연을 하는 식으로.

“하고 싶은 한 가지를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스무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창업 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김: 요즘 취업이 워낙 어려운지 창업에 관해 물어보는 후배들이 늘어났다. 나는 회사 생활을 10년 정도 하다가 창업을 한 경우인데, 예전에는 물어보면 그냥 힘들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먼저 이들에게 왜 창업을 하고 싶은지를 묻는다.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돌아오는데 그럴 땐 겁을 많이 준다. 성실화랑을 시작하고 내가 가장 어려웠던 건 디자인 작업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디자인 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하고 싶은 한 가지를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스무 가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를 만들기 전과 후가 아주 달랐나
김: 처음 성실화랑을 출시할 때는 일 년에 백 종류의 동물도 그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2012년부터 그려온 그림들을 올 8월에 책으로 펴내니 50종의 동물이 들어갔다.

처음 시작할 때가 28종이었다.
김: 모든 것들이 생각대로 되진 않더라.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그림을 그릴 때도 이전보단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하루를 온전하게 그림만을 위해 사용했으니까.

그렇다면 그림은 보통 언제 그리나
김: 일 년 중 바쁜 시기와 비교적 한가한 시기가 있다. 보통은 봄·여름이 가장 바쁘다. 지구의 날, 환경의 날, 식목일과 같은 이슈들이 몰려 있어 전시회도 많이 열린다. 그러면 작업은 보통 가을에 이루어진다. 가을엔 전시도 많이 열지 않는 편이고.

이번 전시는 가을에 열렸다.
김: 10월 한 달 동안 서울숲 앞에 위치한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전시를 열었다. 올해는 책을 출간하느라 봄에 전시하지 못해서 가을에 열게 되었다. 전시는 끝났지만, 앞으로도 언더스탠드에비뉴의 편집샵(소셜스탠드)에서 머그컵, 에코백 등 다양한 디자인 상품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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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린 성실화랑 전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김: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지난 여름에 출간한 <멸종위기동물 그래픽 아카이브>가 2쇄를 찍을 예정이다. 책을 만들어 본 것은 처음이라 막막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좋았다.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다음 스토리펀딩(링크)을 통해 더욱 재미있게 찾아갈 예정이다. 기대해도 좋다.

/사진: 성실화랑 제공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