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끝자락에서 가져온 마지막 이야기, “안녕 피지”
기억의 끝자락에서 가져온 마지막 이야기, “안녕 피지”
기억의 끝자락에서 가져온 마지막 이야기, “안녕 피지”
2016.11.30 17:38 by 이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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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시간에 다같이 텔레비전 보는 날?!

동료 여러분,

피지 럭비팀이 내일 금메달을 위한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멋진 이벤트를 다 함께 즐기기 위해 수바 본부, 그리고 타 지부의 유니세프 사무소는 오전 10시부터 10시 반까지 업무를 잠시 중단할(suspend) 예정입니다. 피지블루 색깔의 옷을 입고 다같이 (TV를 보며) 응원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피지가 이기리라 100% 확신하고 있으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습니다!)

Go Fiji! Toso Viti Toso! ('Go Fiji'를 피지어로 옮긴 말)

어느 날, 회사 메일 계정으로 전체 메일이 날아왔습니다. 메일에는 위와 같이 적혀있었습니다. 2016년 올해 열렸던 리우 올림픽에 '럭비' 종목이 추가되었고, 피지팀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우승을 하게 되면 피지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고, 피지 국민들이 사랑하는 럭비 종목 인만큼 그 '첫'의 의미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피지 사람들이 애정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럭비경기를 함께 관람할 생각에 무척 들떴습니다. 하던 업무에 대한 생각도 잠시 내려놓고 사람들이 어떤 에너지를 발산할지 기대도 되었습니다.

럭비의 '럭'자도 모르는 저이지만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를 때는 같이 소리지르고, 아쉬워할 때는 같이 아쉬워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피지는 결승전에서 우승,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사무실 사람들은 쉬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노래 부르고, 북을 치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면서 엄청난 기쁨과 흥분을 표했습니다. 피지 국기로 몸을 둘러싸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 피지 국기를 달고 빵빵거리며 달리는 택시들까지. 그 분위기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춤을 추며 저 또한 피지의 승리를 기뻐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기를 하는 30여분 간은 거리에서뿐 아니라, 상점∙은행∙병원에서조차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제가 지낸 6개월의 시간 중 가장 정적이었고, 또 동시에 가장 역동적이었던 피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우승 당일, 피지 정부는 럭비 국가팀이 입국하는 8월 21일 다음날, 즉 22일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럭비를 사랑하는 마음이 개개인의 수준을 넘어서 국가적인 그 무엇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저는 피지 사람들의 행복에 또 다른 행복의 이유를 더해준 그 날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피지 럭비팀이 입국한 당일 공항의 모습(사진: ABC(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뉴스)

하나의 옷가게에 두 가지 컨셉?

피지 여기저기에 있는 Jack's라는 프렌차이즈 옷가게 유리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두 스타일의 옷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과 오른쪽에 걸려 있는 셔츠를 보면 패턴이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왼쪽은 인도식 의복이고, 오른쪽은 피지스타일의 '불라'라는 셔츠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스타일의 옷을 들여놓는 이유는 피지의 인구 구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토에서 살았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iTaukei(이타우케)가 총 인구의 56%,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당시 넘어와 정착한 인도계(Indo-Fijian, 인도피지언)가 37.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數)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서로 다른 두 인종이 각자 고유의 문화를 일정 부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피지'입니다. 그래서 인종에 따라 서로 옷 입는 스타일이 다르고, 한 가게에서 두 가지 스타일을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옷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을 경우, 직접 천을 사서 재단사에게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이 곳에서도 서로 다른 스타일의 천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천을 고르며 직원이 필요한 만큼 잘라줍니다. 저도 원피스를 한 벌 만들기 위해 2m 정도 되는 천을 구매했답니다.
가운데 친구가 인도계, 양 옆이 피지인입니다. 생김새나 머리 스타일만 보아도 그 둘은 확연히 구분이 갑니다. 물론 다름에서 오는 충돌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서로의 것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피지의 문화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평상복은 입는 스타일은 비슷비슷하답니다~)

피지에서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피지에 가기 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먹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신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우동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라면 종류는 큰 마트에서 팝니다. 그러나 한 번 수량이 빠져나가면 다음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제 동료들은 특히 신라면을 좋아했고, 유니세프 사무소 앞에 있는 주유소 마트에서도 신라면 컵라면을 팔아 종종 함께 먹고는 했습니다.

수바 시내엔 의외로 한국 식당도 여럿 있습니다. 제가 가본 곳만 해도 Martha's Fine Food(푸드코트), 서울식당 그리고 다경까지 3곳이나 됩니다. 강남스타일과 코리안 하우스라는 곳도 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특히 비빔밤과 한국식 바비큐를 좋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떡볶이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기계로 떡을 뽑는 분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 분이 이사를 가시면서 떡 자체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처음으로 먹은 것이 바로 떡볶이였답니다!

역시나 대형복합몰에 푸드코트 형식으로 입점해있던 '강남스타일'입니다. 음식을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곳을 발견한 것이 피지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무척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강남스타일이 피지로까지 퍼지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먹는 것이 곧 남는 것, 그렇다면 피지에서는?

만약 "피지 음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왠지 맥주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피지골드, 피지비터, 보누 그리고 피지 프리미엄입니다. 이름이 말해주듯 피지 비터가 피지 골드보다 좀 더 맛이 강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맥주는 보누였습니다. 퇴근 후 맥주와 함께 했던 '하루의 마무리' 맛을 한국에서 다시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네요.

안주로 먹었던 것 중에서는 카사바칩과 달로집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카사바는 고구마와 비슷한 정도의 굵기이고, 겉 껍질은 갈색 그리고 속은 하얀색입니다. 달로(혹은 타로)는 뿌리 식물로, 먹어보면 마와 고구마 중간의 맛이 나지만 그 종류가 다양하여 단맛이 강한 것부터 거의 없는 것까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공차를 예로 들어보면 토핑으로 추가해서 먹는 타피오카 펄은 카사바를 이용해 만든 것이고, 메뉴에 있는 타로 스무디가 달로를 이용한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밥을 먹듯, 피지 사람들은 카사바와 달로를 주식으로 먹습니다. 그런데 그 둘은 탄수화물 함량이 높고 칼로리가 높아, 많이 먹을 경우 영양 불균형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때문인지 피지인들 중 몸집이 크고, 비만인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카사바와 달로의 묵직한 탄수화물 맛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가끔씩 이 과자를 안주 삼아 먹으면서, 피지의 맛을 음미하고는 했답니다.

일반 요리로 따지면, 코코넛 밀크를 활용한 요리들이 떠오릅니다. 흰 살 생선을 깍둑썰기 해서 라임과 코코넛 밀크에 살이 쫀쫀할 때까지 절여 먹는 코콘다는 꼭 먹어보아야 할 음식 중 하나입니다. 코코넛 잎을 활용하는 음식도 있는데요. 땅을 파서 바닥에 뜨겁게 달군 돌을 채운 후, 그 위에 야자수 잎으로 싼 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습니다. 그리고 돌에서 나오는 열기로 익히면 '로보'가 완성이 됩니다. 코코넛 잎으로 쌀 때에 코코넛 밀크를 넣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코코넛 향이 훨씬 진하게 베어 들겠지요?

로보가 먹어보고 싶다 하니 동료가 전날 집에서 만든 것을 코코넛 잎째로 가져왔더군요. 코코넛 향이 생각만큼 짙지는 않았지만, 맛있고 담백한 닭고기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고마워 조셉!
코코넛 밀크를 이용해 만든 생선요리
아, 그리고 피지에서는 생참치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냥 썰어서 먹어도, 매콤새콤하게 무쳐 먹어도 참 맛있습니다.

아직 못다한 소소한 이야기들

피지에서는 남자들도 치마를 입습니다. '술루'라고 하는 전통 치마가 그것입니다. 여자들 것도 똑같이 술루라고 부릅니다. 피지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을 방문할 경우, 특히 여자들은 술루와 같이 발목까지 오는 치마를 입어야 합니다. 원칙적으로는 바지도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업무 때문에 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호주인, 인도계 피지인, 뉴질랜드인 그리고 한국인인 저까지 모두 긴 천을 둘러 치마처럼 입었습니다. 그것이 마을을 방문할 때 갖춰야 할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피지 화폐는 피지 달러입니다. 그런데 피지 달러에는 5센트짜리 동전만 있고, 1센트짜리 동전은 없습니다. 때문에 1센트 자리에 0 혹은 5 이외의 숫자가 계산이 되면 자동으로 조정이 됩니다. 아주 작은 돈이지만 무언가 손해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답니다.
피지에서도 모바일과 인터넷 사용률이 증가하는 추세지만, 아직까지 가장 큰 매체는 신문입니다. 종이신문에 있는 내용 모두를 해당 신문사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유니세프 사무실에서 미디어 모니터링을 할 때는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기사를 확인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위 사진은 신문에 났던 안내문 중에 흥미로웠던 내용입니다. 맥도날도 공사 소식을 신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니 말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 "Be Happy"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나라에 대해서라도 사람마다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사이클론과 그에서 기인한 어려움 때문에 제게 있어 피지의 첫인상은 '혹독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피지의 더 많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처를 치유해가는 피지의 자연 경관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긍정적인 에너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우중충했던 하늘보다, 눈이 시리게 푸르던 피지의 하늘이 더 먼저 떠오릅니다.

피지 공항 혹은 호텔에 가면 귀에 꽃을 꽂고 있는 피지인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관광객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평소에도 사람들은 귀에 꽃을 꽂고 거리를 걷고, 출근을 하고 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날은 직장 동료에게 오늘 왜 꽃을 꽂았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행복, 행복이란 대체 뭘까요? 저는 지금도 이 물음에 명확하게 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피지에서 6개월간 사람들과 살아가며 느낀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그 행복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배움은 피지에서의 시련과 좌절을 값지게 만들었고, 그 시간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저의 행복을 찾아 가게 될 인생에 여정에서 또 여러분들의 여정에서, 다시 한번 피지를 만나게 되기를 바라며…….

안녕~
안녕~ (사진: UNICEF Pacific 페이스북 페이지)
안녕~(사진: UNICEF Pacific 페이스북 페이지)
그리운 이들아, 안녕~ (사진: UNICEF Pacific 페이스북 페이지)

/사진: 이자영

UN 희망원정대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나, 피지, 스리랑카. 이 여섯 나라에서 활동하는 UN 봉사단 청년들이 현지에서의 활동과 생활을 고스란히 글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각자가 속한 UN 기구에서의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사회와 문화, 여행정보 등 6개월 동안 보고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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