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이 위기청소년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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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청소년이 위기청소년을 품다
2014.10.14 13:57 by 더퍼스트미디어
 

MG 밴드는 판사들도 춤추게 한다  

“목소리 섹시해요!” “멋있어요!” “오빠 사랑해요!”

지난 7월 24일 오후 6시, 인천지방법원 대회의실이 록 콘서트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법원이 가진 무겁고 엄숙한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300석이나 되는 자리가 모자라, 복도까지 100여 명의 관객들로 가득 찼다. “꺄아~” 음악 소리보다 더 큰 환호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인천지법 판사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들썩이며 콘서트를 즐겼다. 이번 공연은 인천지방법원이 주최하고 가수 김장훈 씨가 함께한 ‘MG(Miracle Generation) 밴드’의 세 번째 콘서트. MG밴드는 한 때 본드 중독으로 삶이 위태로웠지만, 음악을 통해 삶을 치유하고 희망을 되찾은 아이들로 구성된 밴드다. MG 밴드는 김장훈 씨와 함께 노래 ‘소나기’, ‘난 남자다’를 열창했고, 특유의 발차기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세월호 참사 100일을 기리며, ‘다시 희망을 노래하다’는 주제로 1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공연이 끝난 후, 부천의 위기 청소년 공동체인 ‘세상을 품은 아이들(이하 세품아)’에게 전달될 총 420만 원의 장학금이 모금됐다.

 

mgband2


 

인천지법은 MG 밴드에게 아주 특별한 장소다. 보컬을 맡은 전한빈(20) 씨는 3년 전, 인천지법 311호 법정에서 약물 남용 혐의(본드 흡입)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일렉기타를 맡은 오진석(20) 씨와 드럼을 맡은 장영배(20) 씨 역시 한때 심한 본드 중독에 빠져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렸다. 그러나 세품아를 운영하는 명성진(46) 목사를 만나면서 아이들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MG 밴드를 만든 명성진 목사는 ‘중독은 중독으로 치료해야 한다’며 아이들을 음악에 몰입시켰다. 시간은 더뎌도, 효과는 확실했다. 아이들은 본드보다 밴드에 더욱 빠져들기 시작했다.

인천 지역 아이들의 본드 흡입 사건을 크게 줄이는 데에는 인천지법의 역할도 컸다. 이번 콘서트를 인천지법이 주최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011년, 인천 지역의 본드 흡입 사건은 전국 최다인 383건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 인천 지역 본드 흡입 사건은 현재까지 겨우 3건. 3년 전과 비교하면 약 1%로 급감한 셈이다. 법원이 범죄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2012년 여름, 세품아의 명성진 목사와 인천지법은 당시 소년단독판사로 재직 중이던 심재완(40) 판사를 주축으로 ‘본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인천 지역 철물점 360곳에 ‘청소년들에게 본드를 팔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고, 이어 심 판사는 직접 충북에 있는 본드 공장을 찾아가 ‘톨루엔 성분이 들어간 본드를 인천 지역에 납품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톨루엔은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물질로, 본드 중독에 빠지게 되는 핵심 요소다. 이듬해 10월, 인천지법은 명성진 목사와 함께 기술표준원을 압박해 드디어 본드에 포함된 톨루엔 성분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사실 기존에도 ‘일반 소비자용’ 접착제의 톨루엔 함량은 0.1% 미만이었지만, 아이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소포장 본드는 ‘공업용(톨루엔 함량 약 37~49%)’으로 분류돼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그 결과 소포장 본드의 톨루엔 함량은 40%에서 0.1%로 줄었다.

 

인천지방법원 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희망 콘서트. 객석에선 MG밴드를 향해 환호를 보냈다


인천지법 판사들과 MG 밴드의 인연 또한 각별하다. 심재완 판사의 후임으로 소년단독판사로 재직 중인 문선주(37) 판사는 지난해 여름 MG 밴드 아이들과 몽골에 다녀왔다. “아이들과 같이 텐트도 치고 음식도 직접 해 먹으면서 정말 친해졌어요. 1000명이 넘는 위기청소년들을 만났지만 재판장에서는 아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가 어렵거든요. 아이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계기였어요.”

가수 김장훈 씨도 MG 밴드에게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장훈 씨는 출연료를 받지 않고 이번 공연에 참여했다. 공연 사이사이 MG 밴드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안 계셨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술을 마시고 도박하다가 퇴학당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어린 시절에 잘못된 길로 빠질 뻔했던 MG 밴드에게 공감을 표했다. “힘든 청소년기를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금방 친해졌어요. 겪었던 아픔들 음악으로 치유하고 꿈을 찾아 나가길 바랍니다.”

이제 MG 밴드는 본드 중독으로부터 치유될 때까지 받은 사랑을 널리 나누려 한다. 보컬 전한빈 씨는 부천 지역 사회적기업 ‘소울코드’에서 홍보, 기획 업무를 맡아 청년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소울코드는 위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음악 교육 및 치료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올해 4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육성사업으로 선정되었으며 5월부터 위기 청소년들에게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법무부, 교육부, 각 학교에서 위기 청소년들을 추천받아 노래, 드럼, 기타, 건반 등을 가르친다. 오진석 씨와 장영배 씨도 전씨와 함께 보조 강사로 활동하며 위기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지난 5월부터 60명의 아이가 교육을 받았고, 현재 33명의 아이가 음악 교육을 받고 있다. 점차 일반인들에게 유료 교육을 확대할 예정이며, 교육 수익과 MG 밴드 공연 수익금을 사회적기업 운영비로 활용할 계획이다. 소울코드는 내년 여름까지 제2의 MG 밴드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 목표다.

MG 밴드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전한빈씨가 답했다.

“사실 본드 이야기를 하는 게 부끄럽기도 해요.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본드 때문에 이 자리에서 재판을 받았던 저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는 걸 보시고 많은 분이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음악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변화라도 줄 수 있다면 저희 밴드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허미영 작가)

 

글/박찬근 

박찬근
소셜에디터스쿨 청년세상을 담다 1기. 누군가 “왜 기자가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맛만 봤을 뿐이지만 그 첫맛이 너무 강렬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몸으로 부딪히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겁고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청세담과 함께 한 6개월이 힘들 때마다 용기를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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