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죽이기 딱 좋은 객관식 문제
창의력 죽이기 딱 좋은 객관식 문제
2017.06.14 18:30 by 시골교사

“엄마, 다음이 무슨 뜻이에요?”

시험문제의 단골 문구인 ‘다음에서 말하는~’의 ‘다음’의 의미를 아이가 묻는다. 문제지의 물음은 고사하고 단어의 의미조차 모르는 아이에게 첫 시험은 무의미했다.

그렇게 시험을 두어 학기 치르고 난 뒤, 아이의 국어시험 문제를 확인해 보았다. 익히 아는 것처럼, 비문학 문제의 답은 지문에서 거의 찾을 수 있다. 특히 초등 국어문제는 이미 배운 국어지문인데다 답이 훤히 보이는데도, 작은 아이는 그 답을 잘 찾지 못했다. 아이에게 내용 파악 능력이 부족한 게 첫째 이유였다. 그러면 답을 찾는 요령이라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아이는 그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선에서 고민이 생겼다. 아이에게 문항의 내용이 지문에 있는지 밑줄 그어가며 확인해 보라고 알려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말이다. 하지만 참았다. 내용 이해와 사고의 틀을 출제자의 의도에 맞춰 생각하도록 일찌감치 훈련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 기술은 중학교 때 가르쳐 주어도 늦지 않을 듯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고민은 더했다. 시험을 앞두고 문제집을 몇 권을 풀게 해야 할지 말이다. 누구는 학원에서 수학문제를 천 문제 이상을 푼다는 둥, 학원에서 몇 년 치 학교 기출문제를 입수해서 풀게 한다는 둥, 참고서 여러 권에서 시험범위 문제만 몽땅 묶어 과목별로 풀게 한다는 둥, 소문이 무성했다.

(사진: shutterstock.com/Constantine Pankin)

독일 학교에서 객관식 문제로 평가받은 적이 없는 아이들은 이런 문제형식을 접하고 사뭇 당황해했다. 독일 초등학교에서는 100% 단답형, 내지는 서술형으로 시험을 치른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여기에 구술시험이 하나 더 추가된다. 그런 문제유형만을 경험한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하는 객관식 문제 유형을 놓고 어려워했다. 국어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문제와 문항 하나하나를 읽어 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당황해 하던 것에는 시험기간과 시험범위도 해당 된다.

독일 초등학교에선 시험이 특별하지 않다. 거의 한 주에 한 과목을 볼 정도로 일상적인 일이다. 딱히 시험범위도 없다. 그동안 배운 내용을 수업시간에 자연스레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시험기간이 언제부터인지, 시험범위가 어디인지 신경쓰지 않고 지낸다. 그만큼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도 덜하다. 또 독일에서는 교과내용이 교사 재량인 과목이 많다. 그러다보니 과목별 참고서와 문제집이란 것이 없다. 그래서 시험 전에 문제집을 풀어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 아이들을, 더구나 문제조차 이해 못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반복형 문제풀이식에 길들여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문제를 풀어대는 다른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이런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고민을 보탠다면 객관식 문제가 갖는 문제점이었다. 익히 두 가지 평가방법을 모두 알고 경험한 내게 객관식 문제풀이는 저항의 대상이 되었다. 죽기 살기로 문제를 풀며 정답을 가려내는 그런 평가가 아이들에게 어떤 사고를 형성할지 알기 때문이다.

객관식 문제에 익숙해지면 자기 생각과 표현력(논리력, 비판력, 종합력을 포함하는)이 사라진다. 주어진 문제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자기 의견을 표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생각의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도록 길들여지게 될 뿐이다. 또 표현력이 길러지지 않는데 창의적 사고 내지는 비판적 사고를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런 기회조차 없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도 점차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과 생각의 틀에 사고가 굳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한번 생각해보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선다형 하나 없이 올곧 단답과 논술, 그리고 구술로 시험을 치는 아이들과 선택형 위주로 시험을 치는 아이들의 사고가 같을까? 생각의 표현이 말과 글에서 대번 차이가 날 게 뻔하다. 사고의 깊이는 또 어떠랴! 자기생각표현의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생각할 힘이 길러질 수 있을까?

물론 우리 나라의 학교시험에도 선다형뿐만 아니라 단답형과 서술형 문제가 출제되기도 한다. 하지만 채점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문제의 폭과 정답 진술에 제한을 두는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고등학교까지의 서술형은 진술형에 가까울 뿐, 논술처럼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그것을 평가받는 수단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한국의 평가방법은 현실을 고려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 교육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채점의 공정성과 객관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가의 개선 없이 더 나은 경쟁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결국 아이들의 창의력을 죽이기 딱 좋은 평가, 그게 바로 객관식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똑같이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속상했다.

‘현실은 현실이야! 받아들여야 해.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더 악착같이 해야지. 내용 이해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문제지 한 권으로는 어림도 없어. 우리 애들은 이해력이 부족하니 더더욱 여러 문제지를 통해 이해력을 길러주고 응용력을 갖춰 주어야 해. 타고난 응용력, 대한민국에는 없어. 응용력은 문제 유형을 통해 익히는 거야. 많이 풀게 해서 응용을 터득하게 하는 거, 그게 바로 대한민국에서 요구하는 창의력의 정석이야.’

이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살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과목별 문제지 한 권!’, ʻ문제지 한 권으로 이해정도만 확인하자. 반짝 좋은 점수 내자고 발버둥 치는 것은 서로에게 무리야.ʼ

딱 거기서 선을 그었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