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지 마세요. 애쓰고 있는 거예요.
놀라지 마세요. 애쓰고 있는 거예요.
놀라지 마세요. 애쓰고 있는 거예요.
2017.06.06 19:12 by 류승연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등굣길을 책임지던 남편의 스케줄이 변하면서 아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특수학교는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스쿨버스에 타면 50분 동안 버스 여행을 해야 한다. 버스 출발지와 우리 집이 가깝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스쿨버스를 타는 날. 저 멀리 노란색의 대형버스가 보인다. 아들은 엄마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마냥 좋다. 헤헤헤 웃으며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는 운전기사 외에 등교 지도를 하는 선생님이 한 명 타고 있다.

버스가 약속된 장소에 서면 부모들은(주로 엄마)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장애 아이를 올려 보낸다. 선생님은 아이를 데리고 각각의 자리에 앉힌 뒤 안전벨트를 채운다. 그렇게 총 22명의 장애 아이들이 노란색 스쿨버스 2호차에 탑승을 한다.

처음 타는 스쿨버스. 아들은 신났다. 어디 좋은 데 놀러가는 줄 아는 모양이다. “아갸갸갸~”라는 옹알이도 평소보다 힘차게 내뱉고 계속해서 엄마 얼굴을 보며 싱긋싱긋 웃는다.

“동환아~ 놀러가는 거 아냐. 학교 가는 거야. 학교. 학교”라고 말해도 못 알아듣는 건지 그런 척 하는 건지 마냥 들떠서는 “아갸갸갸~”.

마냥 신난 아들과는 달리 내 마음은 갈수록 무거워진다. 아니, 침전된다는 느낌이 맞겠다. 이동시간이 길어질수록… 버스에 오르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내가 알던 세계와 점점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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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낯선 공간이다. 이 버스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전까지 내가 알던 세계의 소리가 아니다. 이곳은 발달장애인들의 세계다. 나와 내 아들이 속해 있기도 한. 그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문득 지난해 아들이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던 때가 생각난다. 일반 학교에 입학을 해서 아들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에 당황하는 내게 한 친구는 그런 말을 했다. “동환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동환이에게 적응할 시간을 좀 주도록 해 봐”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불쌍한 내 아들이 주류이자 갑인 그들의 세계 안에 적응할 생각만 했지 그들에게도 내 아들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의 그 말이 1년 넘는 세월을 돌고 돌아 이제야 확실히 전달이 된다.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조차도 발달장애인들이 한 무리로 있는 버스 안에서 당황을 해버렸다. 귀에 들려오는 ‘소리’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 장애인을 볼 기회조차 없었던 일반인이라면 어떨까? 이해가 된다.

많은 경우 ‘오해’는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곤 한다. 이건 장애 비장애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서로를 오해한다. 하물며 자주 접하지도 못하고, 상호소통도 잘 되지 않는 발달장애인은 어떠랴.

스쿨버스 안에서 내가 가장 먼저 느낀 낯설음은 바로 ‘소리’였다. 청각적인 자극이 컸다. 스쿨버스에 타기 전까지 들었던 소리와 버스 안에서의 소리는 서로 다른 차원에 있었다. 아마 보통의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분명 외모는 나와 똑같은 종으로 분류돼 있는 사람인데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소리를 내고 있으니 일단 경계심이 들만도 하다.

우리 아들이 내는 “아갸갸갸~”는 명함도 못 내밀 판이었다. 무수한 외계어와 반향어를 쏟아내는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반향어란 타인의 말을 의미도 모르면서 그대로 메아리처럼 따라 하는 말을 뜻한다. 자폐증의 한 증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폐증의 특성이라고 규정짓기 보단 발달장애인의 전반적인 특성이기도 하다고 말하는 게 더 나을 듯하다.

왜냐면 지적장애인인 우리 아들은 자폐증의 일부 증상을 갖고 있기도 하고, 자폐증 장애인의 많은 수는 우리 아들과 같은 지적장애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공유할 게 없어서 장애의 특성을 공유하다니…. 인생 참 거시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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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많은 발달 장애인들이 남다른 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신이 난 우리 아들이 평소보다 힘차게 “아갸갸갸~”라고 외치자 맞은편에 앉은 두 세 살 많아 보이는 누나가 “조용히 해!”라고 야단친다. 이윽고 그 누나는 손에 든 핸드폰을 보며 소리를 치기 시작한다.

“다 비켜! 거기서 나오란 말이야! 딸기가 더 좋아! 이얏! 이얏! 그래! 바로 너 말이야! 이얏! 이얏! 너! 너! 너!”

나는 옆을 쳐다 볼 틈도 없다. 바로 뒤에서 누군가가 자꾸 숨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르렁~ 그르렁~ 흐억 흐억”. 고개를 돌려 돌아보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숨 끊어지는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급박한 소리와 달리 아이는 창밖을 쳐다보며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다. 단지 그런 호흡을 하는 게 편했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냈던 것이다.

나보다도 덩치가 큰 한 여고생은 맨 앞자리에 앉아 허공에 대고 계속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들의 “아갸갸갸~”에 응답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차에 오르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뜻 모르는 외계어도 난무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다다다다”란 소리를 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끼야~끼야~”그러며 돌고래 소리를 낸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 버스에 탔다면 “아이들이 흥분해서 그러는 건가? 지금 옆에 다가가면 위험한 거 아니야?”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이 아이들은 제각각의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아이는 학교에 가는 즐거움을 인사로 표현하고 있는 것뿐이고, 우리 아들에게 소리를 지르던 여자 아이도 아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민감해진 기분을 핸드폰 속의 누군가에게 말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뿐이다.

아직 말을 잘 못하는 아이들은 “아갸갸갸~” “다다다다~” “끼야~”등의 의성어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는 중이다. 모두 타인과 소통을 하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애를 쓰고 있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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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라는 부분이 첫 번째 낯설음으로 다가왔다면 두 번째 느낀 생소함은 ‘행동’이었다.

많은 발달 장애인들이 상동행동을 가지고 있다. 상동행동이란 같은 동작을 일정 기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아들 같은 경우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제자리 뛰기를 하거나 오른손을 눈 옆에 바짝 붙인 뒤 살짝살짝 흔드는 상동행동을 갖고 있다.

버스 안에도 수많은 상동행동이 난무했다. 누군가는 왼손으로 정수리 위 5cm의 허공을 둥글게 쓰다듬었고, 누군가는 몸을 앞뒤로 흔들었으며, 누군가는 손을 연속으로 까딱거렸다.

며칠 전 지하철을 탔을 때 일이다. 한 청소년이 홀로 자리에 앉아 몸을 앞뒤로 계속해서 흔들어댔다. 척 봐도 발달장애인. 혼자서 지하철 타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 인지가 좋은 것 같아 부럽기도 했지만 상동행동이 나오는 걸 보니 안쓰럽기도 하다. 그 청소년 옆에 자리가 비었음에도 사람들은 그 옆에 앉을 생각을 안 하고 서서 간다. 아마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위험한 거 아니냐고 느낀 것 같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 반대다. 상동행동은 정신이 이상하거나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불안한 외부상황에 맞서 스스로의 감각과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오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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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주변에 상동행동을 하는 발달장애인이 있으면 “지금 저 사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중이구나”하고 봐주면 된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발달 장애인들이. 각자의 소리와 나름의 상동행동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또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50분의 여행을 마치고 스쿨버스에서 내리자 다시 세상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나처럼 말을 하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그리고 아이들은 각 담임선생님의 손을 잡고 교실로 향한다.

이제 저들은 저들의 삶을 살려 교실로 향하고, 나는 나의 삶을 살려 세상으로 향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저들과 내가 사는 세상이 같은 세상이라는 점이다. 저들은 내 세상의 일부이기도 하고 나는 저들 세상의 일부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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