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불거진 한·중 간의 갈등은 여러 분야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근 한국인의 중국 비자 발급 조건이 크게 강화된 것도 그중 하나죠. 하지만 비자를 발급받는 사람들은 입을 모읍니다. 중국인 특유의 행정처리 관행 때문에 일이 더 어려워졌다고요. 과연 중국인들의 어떤 속성이 중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에게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의 시선
“과거 공산주의 시절에는 길거리에 금덩어리가 놓여 있어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대요. 지금이야 자본주의 탓에 삭막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본래 그렇게 돈을 밝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일부 중국인들이 필자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과거 공산당 집권 시절을 회상하며 당시를 찬양하곤 합죠. 공평함을 최고의 선으로 여겼던 그 시절을 중국의 태평성대쯤으로 믿는 것일까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길에 놓여있는 금덩어리를 보고도 무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대에 중국인들이 그만큼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중국인들은 원래 재물에 관심이 적었거나 말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길거리에 떨어진 금덩어리를 보고도 재빨리 주인을 찾아주지 않는 것은 중국인 특유의 무심함 태도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단 겁니다. 혹은 중국은 유실물을 찾아주는 제도나 담당 기관이 전무한, ‘무법지대’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과연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순수한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였을까요, 아니면 잃어버린 물건조차 제때 찾지 못할 정도로 무법지대였던 것일까요.
그녀의 시선
매년 7~8월, 중국에 입국하거나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중국 정부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 시기에 소속된 기업과 대학 등에서 1년 장기 체류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죠. 중국은 한국과 무비자 입국 및 체류 계약이 합의된 국가가 아닌 탓에, 불편하지만 매년 기간을 연장해야 합니다.
필자 역시 매년 이 시기에 소속된 기업으로부터 비자를 연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고고도 미사일 사드(THAAD) 배치로 증폭된 양국 갈등으로 인해, 중국 정부 측이 올해 한국인 비자 발급에 대한 조건을 크게 한 것입니다. 자국 대사관 및 공증인을 통한 학력 인증, 무범죄 경력 인증 등 부수적인 요구 사항이 비자 발급 조건에 추가되었습니다.
때문에 중국 내의 상당수 한국인들이 한국을 수차례 오가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해오고 있습니다. 한국 왕래가 자유롭지 않은 일부 근로자들은 비자 대행업체를 섭외해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죠. 하지만 “이 역시 녹록한 방법은 아니다”라고 하소연하는 지인들도 상당수입니다.
이처럼 까다로워진 비자 발급 과정은 앞서 설명한 ‘명확한 담당자가 없는 무법지대 중국’이라는 특성과 결부되며 더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례를 통해 살펴보죠. 한국인 A씨는 올 9월부터 중국의 모 대학의 경제학 강의를 맡은 초빙교수입니다. 그는 지난 5월 해당 대학 담당자와 1년 강의 계약을 체결하고, 오는 8월 말 배우자와 함께 중국 입국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A씨의 경우 마지막 관문으로 꼽히는 비자 발급이 지금껏 완료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는 중국 정부의 비자 발급 조건 강화와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A씨의 비자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대학 관계자가 이달 초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일제히 업무를 종료하고 자취를 감췄기 때문입니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담당자들이 자신의 업무 경중과 무관하게 업무를 ‘올스톱’하고 연락을 끊어버린 셈입니다. 국제 교류 센터 내에서 외국인 초빙 교수 비자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부서 직원들 모두 다 말입니다.
이 경우 A씨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A씨가 한국에서 관광 비자를 발급받아 8월 중에 중국에 입국합니다. 그리고 그 1개월 관광비자가 종료되기 이전에 해당 대학 담당자에게 요청해 9월 이후에 외국인 근로자 비자를 발급받는 방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모든 과정이 불쾌하고 번거롭다는 이유를 들어 앞서 대학 측과 체결한 근로 계약 자체를 파기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후자의 경우 대학 측은 A씨에게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인한 위약금을 내놓으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근로 계약서에는 일방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 시 상대방은 계약 파기 책임을 물어 위약금 배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A씨는 계약 파기의 책임이 대학 측 비자 발급 과정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해당 주장이 실질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외국인 근로자 일방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판례가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이유에서 A씨는 한국에서 1개월 혹은 3개월짜리 장기 관광 비자를 발급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비로 관광 비자를 발급받은 뒤, 학교 측에 관광 비자 발급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저 계획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학 관계자 중 누구도 그에게 비자 발급 비용을 내어줄 의무가 없기 때문이죠. 비자 발급 비용은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 이상까지 그 기간과 비례해 천차만별입니다. 개인적으론 향후 A씨가 그 비용을 온전히 떠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 비용보다 A씨를 더 불쾌하게 했던 건, 그 누구도 해당 업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서로 일을 미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A씨의 비자와 체류 아파트 제공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국제교류센터 직원은 총 4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A씨와 처음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던 책임자는 왕 선생인데, 그가 퇴직하면서 다른 3명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된 게 이번 사태의 원흉이었죠.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중국에서는 담당자의 업무 태만으로 벌어지는 후속 처리를 외국인 본인이 떠안게 되는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더 큰 문제는 비자 발급이 지연될 경우 무비자 불법 체류자로 낙인 찍혀, 1일당 최대 5000위안의 벌금을 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해당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경우, 공안국에 의해 신체의 자유를 결박되는 사태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6월 초 한 20대 외국인 근로자가 중국 공안에 의해 붙잡혀 철장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그 역시 A씨와 마찬가지로 비자 발급이 지연되면서 결국, 불법 체류자 신세로 전락했고 이를 안 공안국은 그를 붙잡아 2주 동안 가족들의 면회 일체를 거부한 사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설상가상 그의 가족들이 공안국 소속 직원 8명을 찾아다니며 총 40만 위안(약 6천 8백만 원)의 비공식적인 뇌물을 건넸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사건을 책임지는 직원이 없다는 현실이 만든 비극인 셈이죠.
이 같은 ‘무법지대’ 중국에서의 경험은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와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있어왔던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면, 이렇게 말하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원치 않으면 떠나면 그만이다”라고. 더 나아가 “너희가 우리(중국) 없이 살 수 있겠느냐”라고요.
이것이 스스로를 전 세계의 ‘형님 국가’라 자칭하는 이들이 말하는 ‘대국의 면모’일까요?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