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홈 교사 24시
그룹홈 교사 24시
그룹홈 교사 24시
2014.11.04 10:59 by 더퍼스트미디어
 

“제가 그룹홈의 사회복지사로 들어온 지 3년 가까이 됐는데, 그동안 무려 16명의 사회복지사가 이 일을 그만뒀습니다.”

씁쓸한 표정을 가리지 못한 채, 사회복지사 김민철(25) 씨가 말을 꺼냈다. 그는 거리청소년 및 위기청소년을 위한 그룹홈(공동생활가정), 대안학교, 단기쉼터 등을 운영하는 ‘(사)들꽃청소년세상’에서 일하고 있다. 들꽃청소년세상이 운영하는 그룹홈은 시설장과 사회복지사 2명이 4일마다 교대로 일하는 구조로, 현재 총 20명의 사회복지사가 10개 그룹홈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김 씨의 말처럼 지난 3년간 16명의 사회복지사가 이직했다는 사실은 1년마다 평균 5~6명이 일을 견디지 못하고 그룹홈을 떠났음을 암시한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7월 25일, 김 씨와 함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위치한 그룹홈에서 24시간 동안 생활하며 그룹홈 사회복지사들의 삶을 체험했다.

  | 사회복지사 2인이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는 구조…과중한 업무에 몸도 마음도 무너지다  

25일 오후 12시, 들꽃청소년세상 건물에서 만난 김 씨는 행사 준비팀과 함께 오후 1시부터 열리는 ‘나눔도보여행’ 참가자 모임을 준비하느라 식사도 거른 채 일을 하고 있었다. 매해 8월마다 열리는 도보여행 캠프는 15년째 지속된 프로그램으로, 그룹홈 청소년들이 꼭 참가하는 주요 행사다. “6월부터 8월까지 해당 업무로 일이 계속 많아서 새벽 2~3시까지 일하는게 일상이었죠.” 김 씨는 한마디의 말만 건네고 곧바로 행사 발표 자료와 음향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시청이 보험 규모, 안전교육 등 모든 캠프 프로그램의 진행 승인을 훨씬 까다롭게 심사했기 때문에, 준비 과정이 특히 힘들었다고 한다.

사실 큰 행사가 없어도 그룹홈의 교사들은 평상시 업무로 쉴 틈이 없다. 정부는 지난 2001년 사회복지사 2인이 교대로 24시간 동안 그룹홈 청소년을 돌볼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2명의 인력만으로 시설을 운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2008년 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가 실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그룹홈에서 시설장과 보육사 1인이 일하는 시간은 평균 15시간 이상으로 밝혀졌다. 양육만이 아니라 교육, 행정, 회계까지 둘이서 모두 해결해야 하니 업무 시간이 자연스레 길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눔도보여행 예산안을 최종점검 중인 김민철 사회복지사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 제공)


 

“진우(17•가명)야, 선생님이랑 잠시 얘기 좀 나눌까.”

밤 9시 반, 모임을 마치고 그룹홈으로 돌아온 김 씨는 곧바로 학생 한 명을 부르더니 상담을 시작한다. 김 씨는 얼마 전 진우 군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알고 봤더니 진우 군이 툭하면 수업을 빠져서 수업 일수를 채우기도 빠듯한 지경이라, 학교에서 사회봉사활동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김 씨는 “진우가 학교에 갈 의지를 보이지 않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잘 이해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 뒤 그룹홈 회계정리, 학생 개별 관찰 일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저번 주 목요일부터 이번 주 수요일까지 1주일의 휴가를 냈지만, 실제로 쉰 날은 이틀에 불과했다. 그룹홈을 비롯한 사회복지공무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사회 문제로 주목 받자, 보건복지부에서 작년 3월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 준수를 유도하고 생활시설 3교대 근무를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1년이 지난 현재는 깜깜무소식이다. 자정을 넘긴 새벽 3시가 돼서야 김 씨의 방에서 전등이 꺼졌다.

  | 사회의 무관심과 홀대, 전문성 인정받지 못하는 활동…결국 사랑하는 그룹홈을 떠나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딛고 그룹홈 사회복지사들은 아이들을 위해 꿋꿋이 일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홀대다.

김 씨는 우연히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그룹홈 아이들이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을 욕하는 글을 접했다. 충격이 컸지만, 특별히 혼낼 방법이 없었기에 조용히 “부모님 안부 물어봐 줘서 고맙다.”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씨는 그룹홈 내에서 절도와 갈취가 생기자 상황을 주도한 한 아이를 불러다 혼을 내려 했지만, “한 대 쳐보라”는 식의 당당한 태도를 보고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들을 달갑게 대하지 않는다. 김 씨는 “학생 상담을 하러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님이 그룹홈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라는 이유로 상담 내내 잔소리만 해댄다”며 “다른 부모님께는 담임선생님이 직접 인사도 드리고 정중히 대하는데, 저한테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더라”고 말했다.

결국, 어려움을 견디다 못한 사회복지사들은 이직을 선택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다. 그룹홈 사회복지사가 다른 청소년 사회복지기관으로 이직할 때는 업무 경력의 절반만 인정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룹홈에서 3년간 일해도 1년 6개월만 경력으로 인정되는 셈이다.

“사회복지사분들이 좋은 곳으로 이직하게 되어 그만두는 것보다, 힘들어서 그만두는 분들이 더 많은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새벽 3시쯤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확인하던 김 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던졌다.

 



글/정병욱
정병욱
소셜에디터스쿨 청년세상을 담다 1기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 때의 상황을 기억해 나갈 때, 취재원이 내 취재를 위해 얼마나 애써주었는지가 생각났다. 다음에 어떤 이유로 누군가를 취재할 때, 취재를 허락해준 당사자들에게 정말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취재를 허락해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깔끔하고 왜곡 없이 기사를 작성할 수 있도록 글쓰기 실력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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