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속옷, 아니 자존감을 지켜주세요
소녀의 속옷, 아니 자존감을 지켜주세요
2017.11.03 11:51 by 이창희

 

얼마 전 신발 깔창을 생리대로 사용하는 여학생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사회와 가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소녀들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고 각계각층의 지원도 잇따랐죠. 하지만 물질적 도움만큼이나 정서적 배려도 중요합니다.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훨씬 크고 오래가는 민감한 시기니까요.

“월경 때 사용하는 생리대부터 자신에게 맞는 속옷까지, 무엇을 어떻게 골라 사용해야 할지 난감해요. 이런 고민을 하다보면 괜스레 기분이 가라앉고 짜증이 나기도 하죠. 다 내 잘못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대구에 사는 김보라(가명‧15)양의 토로다. 신체 변화와 관련해 궁금한 것투성이지만, 딱히 물어볼 곳이 없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기 때문. 김 양은 “(내가 궁금해 하는 걸) 아빠가 알 것 같지도 않고, 늘 녹초가 돼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망설여진다”고 했다.

사진1

개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을 터뜨리는 사춘기 소녀들. 인생을 통틀어 가장 풍부해지는 감수성은 자칫 고민과 상처를 낳기도 한다. 갑작스런 신체·정서적 변화는 밤샘 고민으로 이어지고, 친구의 사소한 말 한 마디는 날카로운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의 따뜻함이 필요한 시기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댈 곳 없이 사는 소녀들은 고민과 상처에 더욱 취약해 진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해가는 몸과 마음이 당황스럽지만 이를 맘 편히 털어놓을 곳도, 조언을 구할만한 곳도 마땅치 않은 소녀들이다.

여성 청소년들에게 자존감은 밥보다 중요하다

“가난할수록 정서적으로 고립되기도 쉽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정서적인 고립이나 빈곤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청소년기 같이 민감한 때에는 특히 더하고요.”

이혜경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 팀장(사업운영팀)의 말이다. 저소득층 소녀들의 상당수는 편부 가정이거나 어머니가 생계활동으로 장시간 부재한 경우가 많다. 자연히 소녀들은 신체 발달에 대한 이해와 위생관리에 대한 정보에 취약하다. 같은 여성이자 선배인 어머니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가 저소득층 소녀들을 위해 ‘반짝반짝 선물상자’를 만든 이유다. 지난해 10월부터 제작‧전달하고 있는 이 상자에는 생리대를 비롯해 핸드크림과 바디워시 등이 넉넉히 담겼다. 소녀들의 위생을 위해 선별된 필수품이다. 상자 속 물건 중 가장 주목할 것은 줄자와 속옷 착용 안내서, 속옷 구매권이다.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정확히 잴 수 있는 도구와 방법 등이 친절하게 설명돼 있다. 속옷은 물론, 마음에 드는 속옷을 직접 고를 수 있는 ‘권리’까지 제공한 셈이다.

‘반짝반짝 선물상자’

“외부 시선에 민감한 청소년기에는 외모가 곧 자존감으로 연결되죠. 속옷이 너무 크거나 작아서 맞지 않으면 몸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놀림이나 따돌림에 노출될 수 있어요.”

이혜경 팀장은 소녀들의 정서적 빈곤을 가장 우려한다. 부모가 부재한 시간이 많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누리고 싶었던 정서적 교감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싶은 이유다. 이런 활동이 소녀들의 자존감을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실질적인 정보도 중요하다. 생리통을 겪으면서 어떤 약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생리대는 어떤 제품을 어떻게 골라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과거와 달리 인터넷을 손쉽게 사용하는 요즘 아이들이지만 오히려 정확하고 세부적인 정보에는 둔감하다.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는 일도 많다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 이혜경 사업운영팀장

최근 이슈로 떠오른 ‘생리컵’(의료용 실리콘 등으로 제작되는 종 모양의 생리용품. 사용 편의 등 입소문이 나며 ‘해외직구’ 등을 통한 사용자들이 늘고 있다)도 같은 관점에서 의견을 펼쳤다. 이 팀장은 “충분한 정보를 획득한 개인이 선택할 수는 있지만, 청소년들에겐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며 “청소년들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은 뒤에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아이들로 하여금 가장 보편적인 것을 가장 안전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인 셈이다.

이 팀장은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꼽는다. 갑작스런 변화가 ‘나만의 일’ 혹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데서 청소년기의 정서적 성장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청소년기에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점을 늘 강조합니다. 같은 여성으로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을 찾는 일이죠.”

통계청의 201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저소득층 가정 아이는 38만명, 그 중 여성 청소년은 13만명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저소득층 여성 아이들에게 3개월치 생리대를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도 예산안에도 소득 수준에 따라 여성 청소년 위생용품 지원에 32억원이 편성됐다. 8만5000여명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슈가 된 덕분에 정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인 계획 하에 체계적으로 갈 필요가 있어요. 저희가 열심히 뛰고 있지만 결국은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줘야 합니다.”

생리대 지원 등의 예산 편성이 이뤄진 것은 사실상 ‘깔창 생리대’ 논란이 공론화되면서 정부가 여론의 눈치를 본 결과다. 실제로 이 같은 정부 차원의 지원은 이번처럼 휘발성 강한 이슈가 불거져야만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굿네이버스 등 최전선에서 일하는 구호단체들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 굿네이버스 제공

* 이 콘텐츠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합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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