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모습 그대로
2017. 12. 06 by 류승연

2001년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나왔을 때 많은 여성들은 마크 다시 역을 맡은 콜린 퍼스의 대사에 스르르 녹아버렸다.

“I like you. just as you are”. 살을 빼지 않아도 되고, 더 예쁘지 않아도 되고, 더 전문적이지 않아도 된단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좋아해요”라니. 보고 있나? 남편님아?

어쨌든 그 대사가 모두의 가슴을 울린 건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무엇 대신 현재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은 욕구.

나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렇다면 이제 난 이 관점을 내 자식에게 적용시켜 본다. 장애가 있어 속도가 느릴 뿐 나와 똑같은 욕구를 가지고 꾸준히 발달하고 있는 내 자식에게 말이다.

열 살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아들은 말을 하지 못한다. “티어~(싫어)”라는 말을 하긴 하는데 그마저도 아주 급할 때나 나온다. 주사 맞아야 할 때,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가자고 할 때, 갑자기 수다쟁이라도 된 듯 “티어! 티어! 티어!”

낮 동안에는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지만 밤에는 기저귀를 차고 잔다. 드러눕기 대장이라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일단 그곳이 어디든 제자리에 누워서 땡깡을 부린다. 기분이 좋으면 외계어를 방불케 하는 옹알이도 대량 발사한다. 또 자기 손을 들어 눈앞에서 연속으로 흔들어 댄다.

남들 눈에는 이상해 보이는 것 투성이.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예쁜 내 새끼. 자식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기능 정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식이 어느 곳에서든 가장 꼴찌에 서 있는 아이였기 때문에 누군가를 차별할 군번이 아니어서 몰랐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 아들은 그 안에서도 차별받는 존재일 수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날, 나는 많이 슬펐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우리가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한 번씩 들어본 말. 내 친구들을 낱낱이 스캔한 부모님이 슬쩍 지나듯 던지는 한 마디. “누구는 좀 그렇더라. 그애 말고 공부 잘하고 야무진 반장이랑 친하게 지내봐”.

이때 말하는 ‘그애’가 우리 아들이 되는 것이다. 흔히 일반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순으로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매겨지곤 한다면, 발달장애 아이들은 기능의 높고 낮음에 따라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물론 부모의 잘못된 양육으로 장애의 정도가 심해진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리라. 잘못된 교육태도가 문제였을 수도 있고 부모가 우울감에 빠져 아이를 방치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법이다. 태생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느리게 자라는 아이들이지만 그중에서도 더 느린 속도가 자신에게 알맞은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평생 이어질 발달의 단계에서 이제 막 초반부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발달장애인을 기능으로 평가하는 것에 반기를 든다. 내 새끼가 기능이 낮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네 자식이나 잘 키워”라고 말하면 더더욱 할 말이 없다. 저기 가서 찌그러져 흑흑하고 울고만 있어야지.

그러나 용기를 내서 한마디를 던져보자면, 발달장애인을 기능으로 평가하는 건 일반인을 스펙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과 같은 행위다. 그렇게 되면 한도 끝도 없어진다.

한번 시작해 볼까. 지방대를 졸업한 이는 서울대 졸업자 앞에서 “음메 기죽어~”를 외쳐야 한다. 서울 변두리의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대치동의 40평대 아파트 사는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삼성전자에 다니는 동창 앞에서 말도 못 붙여야 한다. 왜냐고? 스펙에 의해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평가돼 점수가 매겨졌으니까. 사람들 사이에 등급이 매겨졌으니까.

이런 식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스펙 순으로 매겨지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꼭대기다 싶으면 더 높은 곳이 보이고, 바닥까지 내려갔다 싶으면 지하가 있다. 끝이란 게 없다.

발달장애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에서 대하게 되면 승자가 없어진다. 모두 패자가 된다. 내 아이의 기능이 높다고 콧대를 세워봤자 일반인 눈으로 보면 똑같은 장애인이다. 중증이나 경증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먼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리부터 시각을 조금만 바꿔보는 건 어떻겠냐고. 우리 아이들을 기능에 따라 평가하고 편 가르기 하는 것부터 없애 보는 건 어떻겠냐고. 기능이 낮으면 낮은 대로 높으면 높은 대로 제각각의 가치를 인정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에서 쓸모 있는 장애인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능이 높아야 하지 않느냐고? 그렇기 때문에 기능 좋은 발달장애인이 되는 걸 목표로 삼고 부모가 인생을 걸어야 하지 않느냐고?

아니.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아이의 기능을 높이기 위해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최대한 지원하되 우리가 바꾸면 된다. 구조를. 시스템을.

기능이 높아 제빵제과 일을 멋지게 잘 해내는 발달장애인만 필요로 하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발달장애인이라도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로 작업을 세분화시키면 된다. 기능이 낮은 발달장애인도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달걀만 깨고, 누군가는 반죽만 하고, 누군가는 크림을 바르고, 누군가는 굽기만 하면 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일하는 시간도 적고, 벌이도 적을 것이다. 대신 그렇게 해서 남는 시간에 취미생활을 즐기며 살면 된다. 성인 발달장애인이 지역 안에서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취미생활을 하며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면 되는 것이다. 복지를 확장하면 되는 것이다. 그 일을 부모들이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한테 남는 에너지가 있다면 그런 사회가 구축되도록 힘을 보태는 게 나은 것이다. 내 사후에 홀로 남겨질 장애인 자식을 위해서도 말이다.

우리부터 우리 아이들을 기능으로 평가하지 않게 되면, 그런 시각을 거두기 시작하면, 그에 따라온 변화는 발달장애 업계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우리는 발달장애 업계만이 아닌 일반 세상 속에서도 살고 있는 만큼 ‘값어치’에 의해 평가되는 세상의 흐름도 조금씩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마크 다시의 “Just as you are”라는 대사에 마음이 꽂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렇게 대접받고 싶으면 타인도 그렇게 대접하면 된다. 스펙이 좋든 나쁘든 ‘있는 그대로’. 장애의 정도가 중하든 경하든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타인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이상향일 뿐이라고 일축하기엔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누구에게나 내재돼 있다.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나 아쉽다. 그러니 한번 해 볼 만한 게임이다. 나부터 먼저. 내 주변부터 먼저 시각을 바꿔보기.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작은 실천들이다.

필자소개
류승연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