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본격 탐구 다큐, '피의 연대기'
남자들도 한 번쯤 볼만한 독립영화
생리 본격 탐구 다큐, '피의 연대기'
2018.02.12 17:03 by 송희원
남자들도 한 번쯤 볼만한 독립영화

“요즘 개봉하는 독립영화 중에 재밌는 영화 추천해주세요.”

_김씨(성동구)

 

독립영화는 정치·문화·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을 발 빠르게 다룬다. 이번에 추천하고자 하는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내 한 일회용 생리대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돼 논란이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청)는 국내 유통 중인 생리대 전수조사를 했다. 식약청은 생리대에 존재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10종을 조사한 결과 검출량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았다. SNS를 통해서 생리대 부작용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대안 생리대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지난달 18일 개봉한 <피의 연대기>는 생리를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 다큐멘터리다.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12번. 보통 여성은 평생 최소 약 400번의 생리를 한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오랜 시간 겪는 현상이지만 여성들끼리도 ‘그 날’, ‘마법’이라 에둘러 표현하는 등 터부시해 왔다.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 2018) 스틸 (사진: 네이버 영화)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 2018) 스틸 (사진: 네이버 영화)

김보람 감독은 다양한 연령층, 직업군, 인종의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생리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공유한다. 또한, 방대한 자료를 통해서 여성들이 생리를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왜 여성들이 생리를 부끄럽게 여기고 함구해왔는지 그 역사적인 기원을 밝힌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여성의 생리는 불경스럽고 ‘더럽다’고 묘사됐다. 감독은 이러한 '생리'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지적하고 세계에서 다양하게 벌어지는 여성운동과 대안 생리용품을 소개하며 사회적 관심을 촉구한다.

 

| 생리 팬티, 울·해면 탐폰, 생리컵?

지난 11일 <피의 연대기>를 상영하는 복합문화공간 에무를 찾았다.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뒤 경희궁 언덕에 자리 잡은 에무는 다양한 예술이 공존하는 곳이다. 지하 2층 갤러리와 지하 1층 공연장, 1층 북카페, 2층 예술전용 영화관, 3층 예술교육관이 한 건물 안에 있다. 관객들은 6개의 예술 공간을 돌아다니며 복합적인 예술체험을 할 수 있다.

2층에 있는 에무 시네마는 50석 남짓의 소규모 극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한 예술영화전용상영관으로 70% 비중으로 예술영화를, 나머지는 한국 독립영화를 엄선해 상영한다.

‘독립영화DAY’를 마련해 하루 종일 독립영화 한 편을 상영하기도 한다. 영화를 혼자 보는 체험을 넘어 서로 나누는 자리가 되도록 다양한 오프라인 모임도 진행한다. 영화를 본 뒤 소통의 갈증을 해소하는 ‘취중진담 GV(Guest Visit‧감독, 배우, 관객과의 대화)’와 ‘살롱데뷰(살롱dé뷰)’가 대표적이다. 독립영화 <델타보이즈> 상영회 때는 영화에 등장하는 팩 소주와 컵라면을 주연 배우들과 함께 먹으며 GV를 해 많은 관객의 호응을 받았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 ‘에무’라는 이름은 르네상스 사상가 에라스무스의 줄임말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 ‘에무’라는 이름은 르네상스 사상가 에라스무스의 줄임말이다.

에무를 찾은 이날도 <피의 연대기> 상영 후 관객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살롱데뷰(살롱dé뷰)’ 자리가 마련되었다. 손지현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살롱데뷰’는 관객들이 영화를 화두로 문화,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에무 시네마가 독립·예술영화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에무 시네마 상영관(좌), 상영 전 대기하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
에무 시네마 상영관(좌), 상영 전 대기하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

영화가 끝난 뒤 6명의 관객이 1층 북카페에 모였다. 이번이 두 번째 관람이라는 한 관객은

“생리라는 주제를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내서 좋았다”며 “많은 사람들이 꼭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평을 남겼다. 모임에 참석한 한 유일한 남자 관객은 “여성들의 생리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무겁지 않고 재기발랄하게 다뤄 재밌게 봤다”며 “남자와 여자가 신체적으로 다르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관객들은 생리로 인해 겪은 경험을 나누며 생리컵을 비롯한 여러 대안 생리용품 정보를 나눴다. 남자든 여자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여성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이 이슈를 공론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하며 모임을 갈무리했다.

피의 연대기 상영 후 ‘살롱데뷰(살롱dé뷰)’ 모임.
<피의 연대기> 상영 후 ‘살롱데뷰(살롱dé뷰)’ 모임.

 

Editor's Choice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 2018)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 2018)

<피의 연대기>는 ‘여성의 몸’과 ‘생리’에 관해 세대별, 나라별, 각계각층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외할머니와 이모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를 듣는 한편 대안 생리용품을 써본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또한, 생리에 대한 풍부한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생리가 어떻게 왜곡됐는가를 탐구한다.

영화는 애니메이션, 모션그래픽, 밝고 경쾌한 음악을 사용해 ‘생리’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남성들도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피의 연대기>는 서울 에무 시네마(~2/14), KT&G 상상마당 시네마(~2/18), 인디스페이스(~2/21) 등을 비롯해 대구 오오극장(~2/18), 부산 영화의 전당(~2/19),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2/21) 등 전국 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다.

 

※<TF_독립영화>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로 꾸려나가는 콘텐츠입니다. 평소 독립영화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 있거나 제보할 것이 있는 분들은 댓글을 달아 주시거나, 메일(ssong@thefirstmedia.net)로 보내주세요:)   

필자소개
송희원

목표 없는 길을, 길 없는 목표에 대한 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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