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마니아 ‘양둥이’ 자매
좋아한다면 이들처럼
독립영화 마니아 ‘양둥이’ 자매
2018.03.06 09:41 by 송희원

 

칸국제영화제 초청, 대형배급사 제작, 스타 배우 출연 등 모든 흥행 요소를 갖춘 작품이 있었다. 시사회에서도 호평 일색. 그런데 감독의 SNS 글이 문제가 됐다. 특정 지역 여성을 비하했다는 논란에 불매운동까지 퍼져나갔다. 거센 비난 여론으로 상영관은 급격히 줄었고 영화는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친 채 내려갔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야기다.

이 영화는 최근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공식 상영은 이미 종료됐지만 ‘불한당원’이라 불리는 마니아 관객들이 주축이 돼 대관 상영을 이어나갔다. 지난달 19일엔 ‘대작영화 다시보기’이벤트로 대형 극장 체인에 재개봉되기도 했다. 모두 ‘불한당원’ 영화팬들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다.

영화 불한당 포스터와 스틸(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불한당> 포스터와 스틸(사진: 네이버 영화)

양현아(30·미디어 종사)·양정아(30·유치원교사) 자매를 만났을 때 뜬금없이 ‘불한당원’이 떠올랐다. 똑 단발에 여행광인 언니, 긴 머리에 식물 기르기가 취미인 동생은 쌍둥이 자매. 서로 성격도 취향도 다르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독립영화 마니아라는 것. 작년에 둘이 함께 본 독립영화만 해도 150편이 넘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자발적으로 홍보한 ‘불한당원’처럼 양 자매도 주변 사람들과 SNS 친구들에게 자신들이 봤던 독립영화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다른 점은 ‘불한당원’이 특정 영화 한 편을 대상으로 한 마니아층인 반면 양 자매는 독립영화 전반의 마니아라는 것.

 

| 좋은 영화라면 ‘N차 관람’도 OK

독립영화판이 좁다 보니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양둥이 자매(‘양둥이’라는 명칭은 양 자매가 운영하는 블로그 이름)를 만나게 된 것도 그런 경우. 한 번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후원의 밤’ 행사에서, 또 한 번은 ‘무중력 상영장’이라는 독립영화 소규모 상영회에서 마주쳤다. 상영회 뒤풀이 자리에서 자매는 대뜸 내게 <피의 연대기> 영화를 보라고 권했다. 서로 통성명을 하기도 전이었다.

보통 재밌게 본 영화라면 주변에 추천하기 마련. 하지만 이들에겐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좋은’ 독립영화는 적극적으로 널리 전파하려는 독립영화 선교사 같았다. 최근 개봉한 독립영화 작품과 배우들에 대해 줄줄 꿰고 있을 정도다.

인상적이었던 또 한 가지. 양둥이 자매가 메고 있던 가방이다. ‘핀배지’가 촘촘하게 붙어있던 가방. 사연이 있어 보였다. 핀배지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궁금했기에 따로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지난 설 연휴, 서울의 한 카페에서 자매를 다시 만났다.

“광주가 고향인데, 둘 다 20대 초반에 서울에서 직장을 얻었어요. 제가 동생보다 먼저 올라왔는데 그때 처음 독립영화의 존재를 알게 됐죠. 광주는 거의 독립영화 불모지나 다름없었거든요. 지금은 지방에도 조금씩 독립영화 극장이 생기고 있지만 제가 살던 당시에는 독립영화 자체를 접하기 쉽지 않았어요.”(양현아씨)

“언니가 방송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일해서인지 독립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저도 언니 따라다니다가 흥미가 생겼죠.”(양정아씨)

양둥이 자매, 언니 양현아씨(좌) 동생 양정아씨
양둥이 자매, 언니 양현아씨(좌) 동생 양정아씨

왜 둘 다 독립영화를 좋아하게 됐을까? 자매는 “독립영화에는 상업영화와는 다른 ‘담백한 맛’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투(Me too)’ 운동 같은 사회적인 이슈도 독립영화 진영에서 더 신속하게 다룬다고. 여성 생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도 201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영화를 보고 생리컵(대안 생리대)을 쓰게 됐어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됐죠. ‘전에는 이게 있는지 왜 몰랐지?’, ‘다른 사람도 몰라서 못 쓰는 거겠지?’ 싶어서 적극적으로 사람들한테 영화를 추천했어요. 생리컵도 선물해주고요.”(양현아씨)

“초등학교 병설유치원교사라 졸업한 제자들도 종종 마주쳐요. 얼마 전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제자와 이 영화를 함께 보러 갔어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라 아이에게 조금 어려울 것 같아서 미리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줬죠. 그런데 아이가 먼저 ‘깔창 생리대’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려도 관심이 많더라고요.”(양정아씨)

양정아씨는 초등학교 제자와 함께 피의 연대기를 관람했다.(좌) 양정아씨가 사용하는 생리컵.
양정아씨는 초등학교 제자와 함께 <피의 연대기>를 관람했다.(좌) 양정아씨가 사용하는 생리컵.

 

| 죽어서도 독립영화에 내 이름을 남긴다

“저희는 워킹푸어라 죽을 때 묘비도 못 세울 것 같아요. (웃음) 당장 이대로 죽는다 해도 남는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독립영화관 좌석 후원을 결심하게 되었어요.”(양둥이 자매)

양둥이 자매는 인디스페이스 ‘나눔자리 후원’ 회원이다. 2012년 영화관이 재정적으로 어려웠을 때 후원을 결심하게 됐다. ‘나눔자리 후원’이란 일정 금액 이상을 후원하면 자리에 이름 팻말을 걸어 주는 제도다. 자매의 이름은 D-21열에 새겨져 있다. 가끔 지인들에게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하는 독립영화를 추천하면서 자리 인증사진을 찍어오라고 시킨다고.

이밖에도 자매는 독립영화 제작비 후원에도 참여한다. 독립 감독들이나 첫 단편영화를 만드는 학생들에게 크라우드 펀딩을 한다. 그렇게 제작된 독립영화들은 엔딩 크레딧에 후원자의 이름을 기재한다. 비록 조그맣게 적힌 수많은 이름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영화 완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꼭 영화가 아니어도 장애인 인권, 성소수자, 페미니즘, 미혼모, 다문화 가정 아이, 위기가정아동 등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후원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작년에는 마지막 20대를 의미 있게 보내자 해서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양둥이 자매의 인디스페이스 나눔자리 후원자리(좌) 장기기증서약증
양둥이 자매의 인디스페이스 나눔자리 후원자리(좌) 장기기증서약증
양현아씨의 핀배지 가방(좌), 동생 양정아씨의 핀배지 가방. 후원할 때마다 리워드로 받아 하나씩 달게 된 핀배지들이 가방에 빼곡해졌다.
양현아씨의 핀배지 가방(좌), 동생 양정아씨의 핀배지 가방. 후원할 때마다 리워드로 받아 하나씩 달게 된 핀배지들이 가방에 빼곡해졌다.

“국가폭력 희생자들이나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인 약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이슈화시키는 게 중요하죠. 그럴 땐 관심을 갖고 영화를 한 편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큰 힘이 돼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많은 돈을 후원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영화를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소프트한 방식의 일이라고 생각해요.”(양현아씨)

“저 역시도 다양한 주제와 시선을 가진 독립영화를 보면서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하고 깨닫게 돼요. 저는 유치원교사라 특히 아동 인권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 이슈들을 다룬 독립영화를 접하면서 조금 더 (실천적인) 고민을 하게 되죠.”(양정아씨)

자매는 때론 주변에서 ‘독립영화만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무언가를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삶에 훨씬 더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고 양현아씨는 강조한다.

독립영화를 통해 새로운 경험과 다양한 시선을 갖고자 하는 양둥이 자매. 이들의 독립영화 사랑이 더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달되기를. 핀배지도 가방에 더 빼곡해지기를 응원한다.

 

/사진: 양둥이 자매 제공

 

※<TF_독립영화>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로 꾸려나가는 콘텐츠입니다. 평소 독립영화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 있거나 제보할 것이 있는 분들은 댓글을 달아 주시거나, 메일(ssong@thefirstmedia.net)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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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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