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을 쓰(지 않)는 이유
카톡을 쓰(지 않)는 이유
2018.03.28 13:55 by 김사원

 

2014년 12월의 어느 날, 황 이사가 김 사원에게 말한다.

“우리가 카톡을 쓰는 건 첫째는 임직원 간의 소통을 위해서, 둘째는 신속한 아이디어 공유를 위해서야. 그리고 카톡은 이제 IT, 마케팅의 트렌드야. 검찰이 수사를 할 만큼 보편적인 메신저라는 거지.”

대한민국 검찰의 수사까지 받는 대단한 카톡 때문에 이사와 사원이 이렇게 마주 앉아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도 어서 대한민국 검찰 수사를 받아야 국민 웹사이트가 될 텐데.)

2014년 검찰이 피의자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 정보 등을 ㈜카카오로부터 압수수색 해온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기사 캡쳐 : 검찰과 경찰이 카톡 봤숑, 시사IN, 2014.10.10)

사장은 20여 명 되는 임직원 거의 모두를 단톡방에 모아 두고 카톡을 보내곤 했다. 사장의 카톡은 대부분 업무지시거나 업무지시에 준하는 것이었다. 특정 직원에게 하는 업무지시도 단톡방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직원들은 퇴근 후나 휴일에도 보게 되는 회사 단톡방이 반가울 리 없었고, 업무시간 중에도 카톡으로 업무지시를 받는 것은 그들에게 무척 답답한 일이었다.

김 사원은 지난 10월, '사이버 망명'의 끝물을 타고 카톡을 탈퇴했다. 확고한 사회적, 정치적 소견을 가진 행동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회사 단톡방을 피하기 위한 행동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사장의 카톡질이 잠잠하던 시기였고, 사장이 회사의 막내 사원까지 간섭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른 상사들도 굳이 김 사원을 문제 삼지 않았다.

2014년 카톡을 탈퇴했다. ‘카톡 사찰’ 논란이 계기였지만, 카톡 없는 일상과 텔레그램에 대한 단순한 기대감도 한몫했다.

그렇게 한두 달이 흘러 사장의 폭풍 카톡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장이 김 사원 자리로 갔다.

"김 사원은 왜 카톡방에서 대답이 없나?"

김 사원이 대답했다.

"저 카톡 안 쓰는데요? 요즘 누가 카톡 써요?"

지금도 김 사원은 이 상황을 돌이켜보며 적절한(비굴하지 않으면서 날이 서지 않은) 대답을 고민하고 있다.

사장이 사장실로 돌아가고, 조용히 이사 두 명이 사장실로 들어갔다. 이어서 팀장 하나가 쫓아 들어갔다. 김 사원은 문득 회사를 그만둔다면 어떨까 상상했다.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지겨운 업무, 비상식적인 일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다녀올까 영어공부를 할까 생각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 사장실에 모였던 이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김 사원의 자리 전화가 울렸다. 김 사원을 부르는 황 이사의 전화였다.

황 이사는 김 사원을 회유하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준비했던 모양이었다. 일단 이 회사에서 단체로 카톡을 쓰는 이유부터 얘기했다. 소통을 위해 단톡을 한다고 했다. 물론 퇴근 후나 주말에는 답장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황 이사는 김 사원이 단톡방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업무 효율성도 떨어지고, 퇴근 후나 주말에 업무지시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불평을 늘어놓을 거라고 예상한 것 같았다. 그리고는 카톡이라는 매체가 갖는 의의에 대해서 설명했다. 현재 IT, 마케팅의 트렌드이며, 검찰이 수사할 만큼 보편적인 매체라는 것. 김 사원은 황 이사의 마지막 말은 말이 헛나온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황 이사의 얘기가 끝나고, 김 사원이 입을 열었다.

"저... 뭔가 오해하신 거 같은데... 제 폰은 업무용 폰이 아니라 사적으로 쓰는 개인폰인데요. 제 폰에 제가 무슨 어플을 쓰든 회사에서 강요하는 건 좀..."

이후에 오간 대화에는 황 이사의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황 이사는 "그럼 나는 미쳤다고 카톡을 쓰냐"는 말도 했고, "개인폰이니까 회사에서 전화나 문자도 하면 안 되겠네"라는 말도 했다. 김 사원은 김 사원대로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며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사장님이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하긴 한데..."라고 겨우 말머리를 붙였을 뿐이었다.

퇴사한 직원과 김 사원의 메신저 막간 수다

일단 회사에 두 대 있는 업무용 휴대폰 중 하나를 김 사원이 업무 시간에 쓰는 것으로 둘의 이야기는 일단락되었다. 그 이후 팀장이 김 사원에게 '그래도 사장님인데 말을 그렇게 했냐'고 한마디 한 것 말고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 단톡방에서 사장님의 카톡도 잠잠해졌다.

김 사원에게 이 얘기를 들은 누군가는 '다른 직원들이 김 사원 덕분에 후련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내 사원 때문에 이사와 팀장이 불려간 상황이니, 사무실 공기가 김 사원에게 따뜻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이 이야기를 농담처럼 꺼낼("제가 미쳤었나 봐요") 어느 봄날을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김 사원은 오늘도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보다 중얼거린다.

"이건 제 폰인데요?"

 

필자소개
김사원

10년 차쯤 되면 출근이 조금 담담하게 느껴진다던데요. 저에게도 10년 차가 되는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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