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여서 소홀해지는 것들을 위해, 피터 폴 앤 메리
가까이여서 소홀해지는 것들을 위해, 피터 폴 앤 메리
2018.04.13 16:32 by 전호현

 

최강의 한파였다. 연례행사 정도로 만나는, 보기 힘든 친구와 오랜만에 종각에서 보던 날. 한때는 종각이 만남의 장소였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쩌다 한번 들리는 장소가 되어버려 딱히 기억나는 곳도 없고, 아는 곳도 없어서 살갗을 찢는 추위에 친구와 눈에 보이는 곳만 전전하던 밤이었다.

늦은 저녁 배도 부르고 여유를 찾은 나는 어느 덧 또 다시 발동한 본능에 주변의 LP BAR를 뒤지기 시작했다.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 친구는 대충 아무 곳이나 들어 갈 기세였지만, 한파 속에서도 그 기세를 뚫고 종로 골목을 몇 번이고 돌아다녀 결국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보석 같은 이 LP BAR를 발견하고 말았다!

 

벽면을 채운 LP들

앞선 글에서 이야기를 했던가? 사실 난 좀 아담한 술집을 좋아하는 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술집들은 왠지 모르게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그래서 회식도 안 좋아한다.) 물론 혼술을 좋아하는 성향이 사람이 없는 좁은 곳으로 향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면에서 이곳은 나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블로그에는 올라왔는데 지도에는 없고, 몇 장의 사진만으로 장소를 유추해야 찾을 수 있는 곳. 아담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어서 저절로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만들어 지는 곳. 좁은 공간의 이점을 활용해 양쪽에 자리한 스피커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곳. 거기에 사장님의 친절은 덤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잔만 먹고 사라질 예정이었지만 비밀 아지트 같은 분위기가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고, 한 병 두병 쌓이던 맥주는 어느새 산을 이루고 있었다.

 

다른 벽을 채운 소품과 오래된 LP케이스

가게명 ‘피터 폴 앤 메리’는 1970년에 해체한 그룹의 이름이다.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보컬 그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60년대 활동그룹이며, 가장 대중적인 그룹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제목을 몰라도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을 ‘puff the magic dragon’부터 당시 인기를 끌었던 ‘Blowing in the wind’까지. 최근 나이 든 모습으로 다시 공연을 하는 모습은 가슴 한편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피터 폴 앤 메리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는 1961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결성된 포크 음악 그룹이다. 밥 딜런과 더 클랜시 브라더스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1970년 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 수많은 포크 음악의 명곡을 양산해냈다. 9년 동안 각자 활동하다가 1979년에 다시 모인 이들은 이후로 2009년 9월 17일, 메리 트래버스가 72세에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함께 공연했다.

 

웃고 있는 광석이 형님 앞에 놓인 턴테이블과 믹서기

지난번에 LP 얘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LP를 회전 시키는 턴테이블에 대해 얘기해 봐야겠다. 축음기 이후 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턴테이블. 테이프, CD, MP3를 겪으면서 추억에나 남을법한 물건이었던 LP는 복고풍의 회귀와 함께 오히려 예전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부활하게 된다.

노래 한곡에 수백 MB가 넘는 고음질의 소스들과 파일들을 재생할 기계가 넘쳐나는 시대에 음질만으로는 기기 자체가 가진 한계로 잡음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희한하게 그 단점들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이상한 현상. 이런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반응 덕분에 국내의 신보들도 LP를 발매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덕분에 턴테이블을 생산하던 회사들도 CD, MP3 플레이어 생산을 중단할지언정 턴테이블은 계속 생산하고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말이 정말 와 닿는 순간이다.

 

턴테이블

레코드플레이어에서 음반을 올려놓는 회전반을 말한다. 일정한 속도로 턴테이블이 회전할 때 픽업(pickup)이 음반에 닿으면서 기록된 음악을 재생한다. 대부분의 레코드플레이어에 장치된 고정 회전수는 33.3회전·45회전·78회전(분당) 등이다. 초기에는 모터에 벨트를 연결시켜 회전하게 하거나 모터가 턴테이블과 같은 속도로 회전하게 하는 등 회전 속도가 불안정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동기전동기(同期電銅機) 등을 이용하여 일정한 속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출처: 턴테이블 [turntable] 오디오 용어사전, 새녘출판사, 2013.3.4. )

 

내 국딩?때 쓰던 다이얼 전화기. 돌리는 촉감이 좋다.

스피커는 언제나 인기 좋은 JBL 4312. 지난화에 설명했으니 이번엔 생략. 좁은 공간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스피커이기도 해서 가게의 콘셉트과도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과하지 않은 볼륨으로 틀어주는 까닭에 어느 음악이든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사실 여기저기 LP BAR를 전전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곤 한다. 새로운 것에 과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익숙함만 찾게 되는, 그래서 그저 으레 들리는, 술 마시는 코스의 한 곳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내가 처음 LP BAR에 들어섰을 때의 두근거림과 호기심을 기억나게 하는 장소였다.

 

정겨운 손글씨로 쓴 가게 이름

문득, 안상학의 ‘저온화상’이라는 시가 생각이 났다. 평범한 일상 속 너무 가까이 해서 상처가 되기도 하고, 더 빛나는 무엇이 되기도 하는 일들. 늘 내 생활 같은 LP가 타성에 젖어 과거에 묻히지 않고, 내 속에서 잘 여물어 빛이 되어 자라길 바란다.

혹한의 겨울 추위 떠는 집에 들어 전기난로를 켜고
아주 가까이는 마주 하지 않으면서
뜨뜻미지근하게 쳐다보기만은 하면서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하면서 너를 쬔다.

마침 그런 혹한이었다.

 

피터 폴 앤 메리

FOR 아담하고 따뜻한 곳을 찾는 분들에게
BAD 내 고막을 울리는 데스메탈!

 

/사진: 전호현

 

필자소개
전호현

건설쟁이. 앨범 공연 사진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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