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이 세상을 지배하는 순간
버섯이 세상을 지배하는 순간
2018.05.10 15:05 by 이지섭

 

“좀비 말고 버섯이 세상을 지배했으면 좋겠어…”

좀비영화 마니아 C. 3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릴없이 좀비영화만을 탐닉하던 그가 혼잣말을 툭 내뱉는다. 마치 모든 의지를 상실한 사람처럼.

 

머시룸에 사는 버섯이라고 합니다.(사진: Viktor Vasicsek on Unsplash)

 

| Chapter 1_ 하지만 버섯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버. 섯.

C는 비좁은 벽에 핀 곰팡이를 가리키면서 “버섯도 균의 일종이라고 들어서, 벽에 핀 저 곰팡이에게 잘 자라나 버섯이 되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어줬다”며 넋두리를 잇는다.

그는 얼마 전 영양실조에 걸렸다. 평소와 같은 날 밤, C는 작은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부어 후루룩 말아먹다시피 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꿈을 꿨다. 꿈속의 풍경은 흡사 거대한 쓰레기장을 연상시켰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 부스러지고 지저분하게 때가 낀 스티로폼 더미들. 그 위로 어떤 음식을 담았는지 모를 반찬용기가 쏟아져 있고, 오물도 흘러넘쳤다. 먼지 쌓인 벽돌의 흙먼지 냄새와 오물의 악취도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는 바로 그 순간! 지면이 울리더니 거대한 버섯이 나타나 쓰레기들을 집어삼킨다.

그래, 어쩌면 인간이라는 생물은 지구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일회용품, 플라스틱 제품을 포함한 각종 화학물질들은 쉽게 쓰여 빠르게 버려지지만, 수백 년 간 썩지 않고 오염물질을 내뿜으며 지구를 떠돈다. 이러한 독성 오염물질들은 자연에 스며들지 못하고 잔류한다. 인류의 역사는 자연을 개척하고 자연을 수단으로 생각했던, 지구와의 ‘불통의 역사’다. 지금도 인류는 자연과 전혀 소통하지 못한다.

여기서 버섯이 등장한다. C가 바랐던 대로, 버섯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버섯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알기 위해선 우선 버섯에 대한 간단한 이해가 필요하다.

 

| Chapter 2_ 버섯이여, 인간 세계를 집어삼켜다오

버섯은 ‘자실체’와 ‘균사체’라는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버섯이라고 알고 있는 ‘갓과 자루’는 자실체라는 부분에 해당하고 이 갓과 자루를 키워내기 위해 일종의 뿌리이자 줄기, 잎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균사체에 해당된다. 버섯은 이 얇고 가는 실, 균사체로부터 시작된다. 균사체에서 성장하며 땅 위로 솟아오른 버섯의 갓 아래에는 수천만 개의 포자가 달려있다. 민들레가 민들레 씨를 퍼뜨리듯, 포자는 하나 둘 떨어져 나와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어딘가에 자리 잡고 발아하게 되면 다시 얇은 실, 균사가 된다.

 

땅 위로 솟은 갓과 자루를 ‘자실체(Fruit body, 子實體)’, 땅 아래 뿌리처럼 퍼져있는 얇은 실 모양의 부분을 버섯의 ‘균사체(Mycelium, 菌絲體)’라 부른다.(사진: ko.nutri.wikia.com/wiki/균사_생산균)

세계적인 진균학자 폴 스테이멋츠에 따르면 우리가 밟고 있는 1㎥의 토양에 존재하는 균사체의 총 길이는 약 13km에 달한다. 인간들은 알지 못했지만, 버섯이 온 세상 곳곳에 퍼져있단 얘기다. 버섯 균사체는 자기 질량의 3만 배 정도의 토양을 응집시킬 수 있는 강한 힘을 갖고 있는데, 버섯은 이 견고한 능력을 활용해 땅 속에서 인간세계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버섯은 단열재로 변신하면서 인간세계에 첫발을 들이게 된다. 2007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창업수업을 듣던 2명의 대학생은 ‘스스로 자라는 풀’이자 접착제와 같은 능력을 갖고 있는 버섯균사체의 매력에 빠져 버섯을 활용한 단열재를 만들었다. 균사체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그들은 단열재를 만들던 수준에서 기술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후 균사체를 활용해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것과 같이 상품을 원하는 틀에 성형해내는 수준에 이르렀고, 버섯은 ‘버섯 스티로폼’과 ‘버섯 플라스틱’으로 재탄생했다.

 

버섯을 활용한 대체물질을 만드는 Ecovative Design의 버섯 스티로폼. 정해진 틀 안에 각종 농임업 폐기물과 물을 넣고 균사체를 접착제처럼 활용하면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것과 같이 상품을 성형해낼 수 있다.(사진:ecowatch)

자,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며칠 전 받아 본 대형택배엔 완충재 역할을 하는 큰 스티로폼이 딸려 왔다. 그런데 그런 게 온 집안에 그득하다. 이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썩지도, 자연적으로 분해되지도 않고 생태계에 오염물질로 잔류한다. ‘Science Advances’지(誌)에 따르면 지금까지 생산된 플라스틱의 무게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무게의 2만5000배에 달한다고 한다. 사실 가늠도 안 되는 무게다. 그중 약 80%가 쓰레기 처리장이나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 플라스틱 오염물질이 우리가 마시는 식음료에도 나타나게 된다”는 경고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미약하게나마 지구와 소통하는 방식을 깨닫게 됐다. 버섯이 스티로폼과 플라스틱으로 모습을 바꿔 지구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현재 세계적인 가구회사 ‘이케아’와 초국적 기업인 ‘델’ 등 다양한 기업들이 이미 제품을 포장하는 완충재를 버섯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톱밥 같은 농임업 부산물과 버섯 포자를 물과 함께 부어 번식하도록 한 뒤 건조시키는 방식이다. 이렇게 재탄생한 버섯은 그야말로 친환경 물질이다. 독성이 없고 자연분해도 가능하다. 버섯은 겸손하게도, 스스로 할 일을 마치면 조용히 자연으로 스며든다.

환경에 틈입하기 시작한 버섯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부지런히 건축분야에까지 진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짧아지는 건축물의 수명과 이에 따라 발생하는 심각한 양의 건축 폐기물로 최근엔 ‘폐기물 처리에 건축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버섯이 활약할 적기가 됐단 뜻이다. 버섯은 이번엔 ‘벽돌’이 되었다. 기존의 버섯 플라스틱과 같은 대체물질을 만드는 방식과 동일하게 ‘버섯벽돌’이 만들어졌고, 이 버섯벽돌은 차곡차곡 쌓여 집을 이루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건축팀 ‘더리빙’은 지난 2014년 3가지 종류의 버섯 균사체로 만든 벽돌 1만 개를 쌓아 약 13m 높이의 건축물을 세웠다.

 

3가지 종류의 버섯 균사체로 만든 벽돌 1만개를 쌓아 올린 ‘하이-파이(Hy-Fi)’라 명명된 이 건물은 3개월간 전시된 뒤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됐다. (사진: Amy Barkow, Barkow Photo)

버섯의 말랑말랑한 이미지를 생각하고, 내구도가 약해서 불안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버섯의 균사체는 가늘지만 길이가 긴 사슬형태를 띤다. 재생지와 쌀겨 등을 활용해서 수천 가닥의 싹을 틔우는 균사끼리 서로 융합하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시키면, 셀 수 없이 많은 균사가 촘촘하게 3차원으로 결합하고 엉켜 복잡한 구조물을 형성한다. 압축강도 자체는 콘크리트에 비해 떨어지지만, 가볍고 내구성이 강한 장점이 있다. 이로써 버섯은 스티로폼과 플라스틱을 거쳐 벽돌로 모습을 바꾸며 인간의 주거지를 점령했다.

이렇게 ‘열일’하던 버섯이, 이젠 인간의 몸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고 몸 가까이 지니고 다니는, 가죽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름다운 만큼,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 천연가죽. 가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끊이지 않는 치열한 갈등의 순간을 파고들어 버섯은 스스로 가죽이 됐다.

 

Bolt Thread의 버섯 균사체를 활용한 100% 식물성 가죽 ‘마일로’는 천연가죽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사진: Bolt thread)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섬유제조 스타트업인 ‘볼트 쓰레드(Bolt Thread)’는 버섯의 균사체를 이용해 ‘100% 식물성 가죽’인 ‘마일로(MYLO)’를 개발했다. 이 회사는 균사체가 성장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구축해서 균사체들이 서로 연결되게끔 한 뒤, 압축공정을 거쳐 최종소재를 원하는 두께와 질감으로 만들어 낸다. 이제는 어떠한 동물들의 희생 없이도, 천연가죽과 같은 수준의 섬유제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일로는 현재 영국 유명 디자이너와 손 잡고 새로운 가방 생산에 나선 상태다.

 

| Chapter 3_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런 죽음에 대해

그저 하나의 요리재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인류의 의식주에 깊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그 최후까지 함께 하려 한다. 이쯤 되면 ‘아낌없이 주는 버섯’이라 할 만하다.

미국 질병관리센터는 인간의 몸엔 방부제, 살충제, 수은이나 납 같은 중금속을 포함하는 219종류의 독성오염물질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죽게 될 때, 이러한 독성물질들은 환경으로 돌아간다. 미국에서는 매년 260만 명이 매장되거나 화장된다. 매장의 경우 독성물질은 토지로 스며들고, 화장할 경우에는 대기로 흘러들어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존 장례시스템은 장례과정에서 환경문제를 유발하고, 발생하는 문제들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친환경적인 매장방식이 필요한 순간. 이 시점에서 수의로 변신한 버섯, 버섯수의가 등장한다.

 

균사체의 성장을 본 떠 만든 나뭇가지 패턴의 버섯수의를 입고 있는 이재림 디자이너. 수의는 크로셰 니트로 덮여있고 버섯 포자들이 심어져 있다.(사진: TED)

‘죽음의 버섯 수트’를 만든 이재림 디자이너는 인간이 환경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매장 시스템의 대안으로 ‘버섯수의’를 제안한다. 버섯수의에는 죽은 몸을 인식할 수 있도록 사육된 버섯 포자가 들어있다. 이는 시신을 부패시키는 동시에 시신에서 배출되는 독성을 정화시킨다. 또한 식물의 뿌리에 영양소를 제공하며 깨끗한 비료를 남겨 풍성한 버섯을 자라게 한다. 버섯은 인간의 죽음이 친환경적으로 흙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돕는다. 최종적으로는 언젠간 내가 죽고 썩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버섯에 몸을 맡기는 것. 버섯과 함께 묻힘으로써, 죽음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 버섯은 불통의 인류가 지구와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될 것이다.

단언컨대 인간은 지구에 적합하지 않은 생물이다. 인류는 높은 지적 수준과 구체적인 언어체계를 무기로 자연을 개척했다. 그러나 자연의 입장에서는 인류가 자신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질적 존재로 느껴질 뿐이다. 작금의 인류는 지구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인류의 생존이 행성의 생존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여전히 인간과 자연의 소통은 부족하다. 우리는 이제, 인류의 존재가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환경에 대한 책임의식을 토대로 지구와 소통해야만 한다.

인류와 지구를 연결시켜주는 사랑의 메신저가 바로 버섯이다. 우리는 이제, 버섯의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시각을 길러야만 한다. 버섯이 지배하는 세상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려야 한다. 버섯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필자소개
이지섭

미스터빈 닮은 꼴. 멍청한 글을 멀쩡하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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