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동권, 왜 지켜줘야 할까?
장애인 노동권, 왜 지켜줘야 할까?
2018.05.24 18:10 by 류승연

 

그냥 벌금을 내고 말지 굳이 발달장애인을 우리 회사에 뽑아야 할까?

다른 직원보다 속도가 느려 보이는 발달장애인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할까?

이 같은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작년까지의 나조차도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네”라고 쉽게 대답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노동권. 가장 많은 논란이 예상되고, 가장 풀어나가기 어렵지만, 가장 해결이 시급한 일 순위 과제. 오늘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마지막 편으로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이번 편을 풀어나가기 위해선 그동안 내가 ‘장판’이라 불리는 장애인판에 들어와 보고, 듣고, 겪고, 느낀 바를 먼저 얘기해야 한다. 정책과제를 먼저 소개하고 그에 따른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당위성’을 먼저 설명하고 그다음에 정책과제를 설명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 동환이는 올해 열 살이 되었다. 태어나는 순간 숨을 쉬지 못했고, 의료진의 처치 덕에 살아나 “에~”라는 첫 호흡을 터트린 이 아이는 평생을 지적장애인으로 살게 되었다.

세상일이 참 아이러니한 게 뭐냐면, 성격 급하고 효율성 중시하는 엄마에게 세상에서 제일 느린 아이가 선물로 왔다는 것이다. 엄마이긴 하지만 ‘류승연’이라는 개인의 시각에서 보면 느리고 느리기만 한 아들은 인간으로서의 효율성이 낮아도 한참 낮았다.

그러다 보니 엄마인 ‘류승연’은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살았다. 고개 숙인 엄마의 모습에는 “내 아이가 ‘정상’인 당신들에게 피해를 끼쳐서 미안해요”라는 마음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내 자식조차도 효율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재단했던 것이다.

그러다 더는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살기로 한 어떤 계기가 생겼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장판’의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요즘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장애 문제는 장애인을 위한 문제라 생각하고 있었다. 출산을 하기 전 TV에서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이 시위를 하는 뉴스를 볼 때면 1초도 안 돼 시선을 떼버리곤 했다.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 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건 바로 장애 문제를 해결하는 건 장애인만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알고 보니 장애인 문제는 모든 소수권자에 대한 문제였다. 다수와 다른 소수를 대하는 우리의 문제. 거기서부터 모든 게 출발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수와 소수의 문제를 갑과 을의 문제로 이분화시켜본다.

예외인 상황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다수는 갑의 권리를 누린다. 이때의 을은 소수 그룹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갑과 을의 경계를 드나들며 산다. 대통령도 잘못을 하면 감옥에 가는 세상이다. 평생 갑의 위치를 보장받은 인간이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 갑, 그러니까 다수의 무리 안에 속해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부당함을 그리 자주 느끼진 못하고 지낸다. 그러다 인생의 어느 순간 어떤 상황과 사건들에 의해 소수, 그러니까 을의 입장에 서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러고 나면 그때서야 핏대를 올리며 ‘정당성’이니 ‘권리’니 ‘평등’을 부르짖곤 한다.

인생에서 그런 일은 벼락같이 찾아온다. 예고도 없고 미리 사인을 보내지도 않는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대표적 을이자 소수권자인 장애인 문제에 대해 고찰하고 고민하는 건 단지 장애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고찰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모든 소수권자를 대하고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면서 그들의 인권을 지키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수권자인 우리 자신의 인권까지도 지키게 된다. 우리 역시 어느 순간에 지금 누리고 있는 다수권자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소수권자의 입장에 서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 필요한 게 바로 ‘복지’다. ‘복지’. 백과사전에 따르면 ‘복지’란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을 높이고 국민 전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 노력하는 정책. 또는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다.

내가 잘 먹고 잘살고 있을 땐 복지의 혜택이 크게 아쉽지 않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에선 반드시 복지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복지를 구축해 놓는다. 장애인 정책도 마찬가지다. 복지의 개념에서 다가가야 했던 것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제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장애인만을 위한 복지가 아니었다. 장애가 없는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보험을 들어두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노화의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수많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세계에 입문하는 걸 보게 된다. 내 자신이 언제 장애인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발 더 나아가면 내 가족이, 내 친척이, 내 친구가, 내 동료가 언제 장애인이 되거나 장애인의 가족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 보험을 들어두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그 누가 장애인이 되거나 장애인 자식을 낳더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와 시스템으로 ‘복지’를 구축해 놓는 것이다.

‘장애인 노동권’을 경제가 아닌 복지의 개념에서 다가가게 되면 그 때는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게 된다. 당위성이 생기는 것이다. 장애인의 노동권을 지켜주는 게 장애인을 위해서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보험과도 같은 일이라는 걸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에서 정책과제로 요구하고 있는 사안들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장애아이 부모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에서 요구하는 노동권 보장이 납득이 가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암울한 취업률에 대해선 다들 알고 있으리라 본다. 취업을 하고 싶은데 안 하는 게 아니라 일할 곳이 없어서 일을 못 한다는 게 더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1만개의 공공일자리를 구축하자는 게 노동권 보장 정책에서 요구하는 사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발달장애인에게 맞는 공공일자리 제공을 위해 새로운 직업을 찾고 일을 세분화시킬 수 있는 사전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탄생하게 될 새 직업. 일단 장애인 민원안내사를 생각해 보자.

나는 아들이 장애 확진을 받은 후 수시로 주민센터를 찾아갔지만 내 아들에게 필요한 정책과 각종 서류 등을 자세히 알고 안내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민센터의 공무원은 1~2년마다 보직변경을 했고, 장애 파트를 담당하게 되면 책을 보며 그 때 그 때 민원을 처리하다 보니 언제나 정보에 미숙했고, 답답했고, 때론 울화통도 터졌다.

그런데 이미 본인의 삶을 통해 장애인 정책을 훤히 꿰뚫고 있는 민원안내사가 주민센터를 찾은 관련 시민들의 민원처리를 도와준다면?

장애인 인권옹호 활동가도 마찬가지다. 내 아들이 활동보조인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 나는 뭐를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 데만 한나절을 보냈다. 이럴 때 장애인 당사자인 인권활동가가 장애인 권리옹호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고 관련 전문기관에 권리구제를 지원, 요청, 연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장애인 동료상담가,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가,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가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 우리가 ‘인식’을 바꾸면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직업들이고 일자리다.

이번엔 공공부문이 아닌 민간부문으로 가보자. 일반 사업체에서 고용을 늘려주지 않으면 장애인 노동권은 사실상 확보되지 못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민간 기업에 발달장애인을 고용해서 일을 시키고 월급을 주라고 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난감하다. 부담이 된다.

발달장애인을 업무에 익숙하게 교육시키는 데는 남다른 접근이 필요할뿐더러 그들의 사회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 모든 걸 민간기업이 알아서 책임지게 하면 지금처럼 된다. “그냥 취업을 안 시키고 벌금 좀 내고 말지”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업무를 현장에서 직접 돕는 직무지도원을 확대 양성, 배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민간기업의 몫이 아닌 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비장애인 취업도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시대다. 뉴스에선 해마다 일자리 창출에 관한 각종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비장애인 일자리의 하나로 발달장애인 직무지도원을 전문직으로 육성하자는 것이다.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하나의 사회 안에서 함께 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보장. 발달장애인은 효율성이 낮으니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라면 이렇게 또 한 번 생각해 보자.

한 달에 10만원 또는 30만원을 받는 성인 발달장애인이 있다. 자립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부모가 살아 있으면 어찌 되든 부모 밑에서 살 수 있겠지만 부모 사후엔? 자립하지 못한 성인 발달장애인을 오롯이 껴안는 것은 나라의 몫이 된다. 그 때 들어가는 사회적 경제비용을 생각해 보자.

그 전에, 그러니까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에 성인 발달장애인이 최저임금이라도 받으며 자립을 위한 경제적 준비를 해 놓을 수 있다면? 그리고 직무지도원의 도움 아래 직장에서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면? 직장 밖에 있는 시간 동안에는 활동보조인이나 주거지원자의 도움을 받아 마을 안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과연 어느 쪽의 사회적 비용이 더 적게 들까? 평생 나라에서 책임지는 것과 지역 안에서 자립해 일하며 살아가는 것 중에?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비장애인의 일자리 창출까지 늘릴 수 있다면 어느 쪽이 경제논리에서 모두에게 득이 될까?

물론 작은 기업의 경우에는 발달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면서 일자리를 주는 게 힘에 부칠 수도 있다. 그럴 땐 적확한 기준을 정해 놓고 나라에서 부족한 임금에 대해 지원하는 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경제라는 개념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복지’에는 돈이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장애인 예산은 전체 예산의 0.2%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는 OECD 가입 국가들의 10분의 1수준이다.

세금을 더 늘리자는 게 아니다. 있는 세금을 엉뚱한 데 안 쓰고 복지 정책에 잘 쓰면 된다. 아까운 곳으로 줄줄 새는 세금을 복지 정책으로 돌리기만 하면 된다. 그럴 수 있는 결단만 하면 된다. 그것은 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보험이 된다.

자. 무려 세 편에 걸쳐 재미없고 심각한 정책이야기를 풀어봤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가 왜 필요한지, 그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모두에게 조금씩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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