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 꿈에도 소원, ‘통일소맥’이여 오라
한반도의 봄, 대동강 맥주+한라산 소주 특집
우리의 소원, 꿈에도 소원, ‘통일소맥’이여 오라
2018.05.26 00:46 by 이창희

역사상 3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427. 분단 이래 전쟁 발발 가능성이 가장 낮았던 날 중 하나다. 그렇게 한반도에는 갑작스레 봄이 찾아왔다. 물론 최근 남북관계에서 갑작스레 이상 기류가 흐르나 싶더니 설상가상으로 북미정상회담이 돌연 취소됐다. 하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아니며,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위기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 다투는 상황으로 전환됐다고 보는 쪽이 타당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를 둘러싼 변혁의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게 남북한 통일에 대한 희망과 갈망 사이를 오갔던 그 어느 날 밤, 동참과 편승의 욕구에 성급한 마음이 겹쳐지며 기막힌 아이디어를 낳았다. 그 결과물은 바로 대동강 맥주와 한라산 소주의 만남.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조합이 아닌가. , 비록 전통주는 아니지만 흔치 않은 특집이니 스핀오프 정도로 이해해주길 바라는 바다.

드디어 한 자리에서 서로를 만난 남북의 술. (사진: 여의도 예민보스)
드디어 한 자리에서 서로를 만난 남북의 술. (사진: 여의도 예민보스)

오늘의 주인공 투톱 중 하나는 평양에 흐르는 강의 이름을 딴 대동강 맥주다. 북한의 전임 최고권력자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2002년 처음 생산됐다. 2000년 영국의 어셔즈 맥주 양조장이 문을 닫게 되자 생산 설비를 150만 파운드에 인수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칭다오 맥주가 독일에서 생산설비와 원재료 등을 들여와 만들어진 것과 유사하다. 최근 들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북한과 중국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끈끈한 혈맹 아니던가.

한반도 최북단인 양강도 지방의 유기농 홉, 그리고 봉이 김선달이 수익기반으로 삼았던 대동강물이 주원료다. 대동강 맥주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1번부터 7번까지 총 7가지 버전으로 생산한다. 알콜 도수는 4.5%에서 6%까지 다양하며, 6번과 7번은 흑맥주다. 맥아 함량은 10~15%, 10% 이상을 맥주로 규정하는 한국과 비슷하다. 참고로 맥주에 숫자를 붙이는 건 러시아의 발티카 맥주와 같다. 북한은 러시아와도 가까운 사이니까.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해빙기를 맞으면서 10년 가량 여러 루트로 반입된 바 있다이 시기에는 임진각 통일전망대 인근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가 입수해 들여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완전히 단절됐다. 현재는 북한 접경지역인 중국 단동·연길 등에 있는 북한 식당이나 상점에 가야 구입이 가능하다. 물론 중국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타오바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막대한 배송비를 감안하면 배보다 큰 배꼽이 아닐 수 없겠다.

‘원산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진: 不편집장)
‘원산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진: 不편집장)

대동강 맥주와 합을 맞출 또 다른 주인공은 한라산 소주다. 소주 맛을 조금이라도 안다 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익숙한 술이다. 쌀농사가 여의치 않은 제주도에서 나는 쌀과 천연암반수로 만들어진다. 맛의 깔끔함과 높은 청량감이 장점. 이 때문에 참X슬이나 처X처럼 같은 오버그라운드 소주들에 비해 팬덤이 뚜렷하고 충성도가 두텁다. 더욱이 언제부터인가 원료 절감을 목적으로 소주의 도수가 내려가는 추세 속에 21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물론 한라산 오리지널 외에 18도 버전인 한라산 올래도 있지만, 이를 한라산이라 칭하는 이는 거의 없으니까.

 

WHEN: 북미정상회담 취소 48시간 전

WHERE: 퇴근길 책한잔

DISHES: 기억 없음

MEMBERS: 문래동 문익점(35·단둥 여행자), 여의도 예민보스(30·보험사 리스크관리), 연신내 유광잠바(36·LG트윈스 28년 팬), 단대동 고음불가(26·소프라노) 편집장(35·본 에디터)

중국 단둥에서 황해를 건너 온 대동강 맥주. (사진: 여의도 예민보스)
중국 단둥에서 황해를 건너 온 대동강 맥주. (사진: 여의도 예민보스)

대동강 맥주가 눈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마냥 신기하고 감격스럽다. 떨리는 손길로 개봉한 뒤 조심스레 잔에 채워 본다. 천천히 따른다고 했는데도 순식간에 거품이 솟아오른다.

편집장: 우와, 술이 상당히 혁명적으로 흘러나와. 거품이 아주 그냥.

문래동 문익점: 사회주의 국가에서 만든 술이 가진 자본주의스러움이라니.

연신내 유광잠바:, 향이 시원해.

여의도 예민보스: 나는 조금 비릿한 것 같은데.

문래동 문익점: 조금 거친 느낌이 있어.

여의도 예민보스: 아니, 그 한강 근처 가보면 나는 물 비린내 비슷한?

문래동 문익점: 한국 맥주와 비교하면 어때?

편집장: 이게 훨씬 나은 것 같아. 확연히.

연신내 유광잠바: 나도.

역사적인 그 순간. (사진: 단대동 고음불가)
역사적인 그 순간. (사진: 단대동 고음불가)

더 기다릴 이유도 여유도 없다. 곧바로 역사적인 통일소맥제조에 착수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분계선에서 만나듯 맥주와 소주를 동시에 따른다. 잔잔한 거품을 내며 섞이는 남북의 술.

연신내 유광잠바: 의미로 넘치는 잔이로군. 한반도에서 과연 전례가 있었던가.

편집장:, 역시 기분이 맛을 다르게 만드네.

단대동 고음불가: 뭔가 다르다. 화학물질 맛이 나지 않는 그런.

연신내 유광잠바: 소맥은 원래 짭짤한 게 매력인데 얘는 단맛이 나.

 

사실 이날 사용된 대동강 맥주는 문래동 문익점이 최근 중국 단둥을 다녀오면서 어렵사리 구해왔다는 점을 밝혀둔다. 남북관계 해빙무드 속에 현지 북한 식당들의 모습도 궁금했다. 냉면 맛도 그렇고.

편집장: 직접 가보니 어땠어?

문래동 문익점: 상당히 만족했지. 언제 시간되면 다같이 가자. 비용도 얼마 안 들어.

연신내 유광잠바: 다른 건 관심 없고 음식! 어땠는가.

문래동 문익점: 북한 식당을 여러 곳 가봤는데, 대체로 음식이 담백해.

단대동 고음불가: 입맛엔 맞았고?

문래동 문익점:, 다 맞았어. 소스류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아. 원재료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게 특징인 듯. 심심하니 부담이 없어서 좋더라고.

여의도 예민보스: 오리지널 평양냉면 맛도 궁금하다.

단대동 고음불가: 북한 식당을 실제로 들어가 보면 어떤 느낌일까.

문래동 문익점: 규모가 의외로 커. 메뉴도 생각보다 다양하고.

북한 식당의 냉면. 자세히 보면 양념이 있다. (사진: 문래동 문익점)
북한 식당의 냉면. 자세히 보면 양념이 있다. (사진: 문래동 문익점)

여의도 예민보스: 재미난 일 없었나? 이야기 좀 해줘봐.

문래동 문익점: 충격적인 사건이 한 번 있었어. 하루는 북한 식당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이더라고. 조금 이상했지만 메뉴판에 한글로 냉면이 있길래 무심코 주문했지. 그런데 세상에. 그릇에 국물이 찰랑찰랑한데, 들고 오는 손의 엄지손가락 한 마디를 푹 담근 채로 가져다주는 거라. 심지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단대동 고음불가: 우웩.

편집장: 손맛이네 손맛.

여의도 예민보스:, 위생 관념이 없어도 너무 없긴 하네.

문래동 문익점: 그래서 면만 먹고 나왔어.

연신내 유광잠바: 나도 비슷한 일 있었잖아. 베트남에서.

편집장: 설마 쌀국수?

연신내 유광잠바: 맞아. 근데 손가락이 들어가서 더럽다는 생각보다 아니 대체 뜨겁지도 않나?’하는 의문이 먼저 들더라고. 냉면은 차갑기라도 하지, 얘는 경우가 너무 황당하잖아.

문래동 문익점: 평소에 얼마나 담궜으면... 내성이 생겼나?

 

공수된 대동강 맥주의 양이 많지 않아 금세 동이 난다. 조금씩 아껴 먹었는데도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빈 병만 남았다.

문래동 문익점: 사실 내가 말야, 단둥에서 대동강 맥주만 가져온 게 아니야.

편집장: 뭐가 또 있음?

문래동 문익점: 공항 세관 통과할 때 식은땀이 약간 나더라고.

연신내 유광잠바: 아니 뭔데? 궁금하게.

문래동 문익점:, 여기. (흰 종이꾸러미를 넘긴다)

편집장: 아니 이걸 정말 가져왔어?

연신내 유광잠바:, 종류별로 골고루도 가져왔다.

문래동 문익점: 이게, 그 넓은 압록강변에서 딱 한 곳에서 팔더라고.

편집장:... 이건 차마 지면으로 옮기진 못하겠다. 타임캡슐에 넣었다가 나중에 공개하자. 진짜 통일 되고 나면.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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