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와 공유문화에서 싹튼 혁신(下)
움트는 ‘Maker in Korea’, 가능성과 문제점은
DIY와 공유문화에서 싹튼 혁신(下)
2018.07.30 11:17 by 이창희

 

수만 년 전 초기 인류는 무엇이든 만들어야 했습니다. 약한 피지컬을 지닌 탓에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도구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에겐 오래전부터 ‘만드는 DNA’가 축적돼 왔습니다. 비록 하루가 멀게 신기술이 발달하고 온라인 시대가 열렸지만, 손으로 물건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최근 이 같은 기술 발달 속에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만드는 이들을 칭하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메이커(maker)’가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만들기’ 재능과 욕구, 신기술이 결합돼 생겨난 개념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메이커란 개념이 뚜렷하게 와 닿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A부터 Z까지 꼼꼼하게 취재해보기로 했습니다. 더퍼스트미디어는 독자들을 위한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독일의 C-base와 팹 랩 베를린, 미국의 테크숍과 NYC Resistor, 중국의 솽촹(雙創) 시범기지, 일본의 DMM 메이크아키바. 선진국들의 대표적인 메이커 스페이스다. 메이커 열풍이 한창인 국가들의 전초기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사정은 어떠할까. 세계 1, 2위를 다투는 IT강국이자 제조업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메이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경제적 가치와 가능성에 주목한 정부가 발 벗고 나서면서부터다.

최수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 ‘디지털 대장간’에서 메이커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 중소벤처기업부)

| 2018년은 ‘메이커의 해’…엑셀 밟는 정부

정부가 메이커 육성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한국형 메이커 스페이스 확산 방안’을 통해 인프라 구축과 문화적 저변 확산, 제조 창업 기반 마련 등 3가지 추진 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일반랩 350개와 전문랩 17개 구축, 적극적인 재정지원 및 지자체 참여 유도, 맞춤형 교육·체험콘텐츠 확충, 시제품 제작·양산 자금 지원, 멘토링·입주공간 등 인프라 제공 등을 약속했다.

이에 대한 후속 조치는 최근에 이르러 이뤄졌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1일 전국 공모를 통해 메이커 스페이스 65곳을 선정했다. 5곳이 선정된 전문형 공간은 서울산업진흥원(sba)·고려대·전남대·경북대·N15(디지털대장간) 등으로, 시제품 제작 등 전문 창작활동과 기존 창업 인프라를 연계한 사업화 지원 명목으로 30억원 가량의 예산이 배정됐다. 이들은 지역 메이커운동 확산을 위한 거점 기능도 맡게 됐다.

나머지 60곳은 일반형 공간으로, 공간 및 장비 구축과 프로그램 운영 비용으로 2억5000만원 가량이 지원된다. 이곳에서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메이커 입문 교육과 창작활동 체험 행사 등을 제공하게 된다.

중기부는 이들 65곳의 메이커 스페이스를 대상으로 최근 통합 워크숍을 갖고 활동 계획을 공유하는 동시에 유관기관과의 협업 방안을 논의했다. 이 결과 전국의 메이커 스페이스 65곳은 올해 9월까지 공간과 장비 구축 등을 마무리한 뒤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한국형 메이커스 전문랩으로 선정된 N15의 ‘디지털 대장간’.(사진:더퍼스트미디어)

공간과 주관 기관만 덜렁 선정해놓은 건 아니다. 공간을 채울 이들과 그들이 가진 아이디어를 위한 지원도 함께 진행 중이다. ‘2018 메이커 문화 확산 사업’이 대표적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지난달 해당 사업 지원단체를 대상으로 심사를 마친 뒤, 과제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메이커 프로젝트 동아리(114개)와 메이커 창작 활동(54개), 메이커 행사(19개)에 대한 지원이 결정됐다. 아울러 복합 프로젝트(3), 메이커 교육(6),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1), 사업화 지원사업(1) 등 운영 주체도 선정됐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이용한 창작 과제에는 최대 1500만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청소년·청년 동아리들은 각 350만원의 활동비를 받게 된다. 이번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36억원 가량이다.

 

| 공유에 인색한 한국, 이유를 모르고 만드는 사람들

이처럼 정부 주도로 관계부처들이 메이커 스페이스 구축과 메이커 문화 확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풀어야 할 숙제 역시 만만치 않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지선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 4월 민주연구원이 주최한 ‘한국형 메이커스페이스 구축 현황과 확산 방안’ 간담회에 참석해 “현재 한국의 메이커는 ‘메이커’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의 메이커는 단순히 ‘잘 만드는 사람’이라는 축소된 의미로 정착됐다. 본래 메이커는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작업 과정을 스스로 표준화·체계화해 공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누구나 배우고 응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국내 메이커들 중 자신의 결과물을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이들은 거의 없으며, 활발한 공유가 이뤄지는 커뮤니티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 결과를 토대로 한 평가 위주의 문화 때문에 공유 개념이 형성돼 있지 않다”며 “공개하면 할수록,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더 강해지는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내 대표적 메이커 스페이스 중 하나인 팹 랩 서울. (사진: Fab Lab Seoul)

종로 세운상가에 위치한 팹 랩 서울(Fab Lab Seoul)의 김동현 이사는 “정부 주도의 ‘톱다운(top-down)’ 방식을 통해 메이커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지속성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메이커 문화 확산 과정에서 보완돼야 할 문제로 교육을 꼽았다. 하드웨어 중심이라고 해도 장비 사용 위주의 교육보단 문제 해결을 먼저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만드는가’에 앞서 ‘왜 만드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김 이사는 “여전히 숙련된 운영자의 수가 부족하다”며 “전문강사 양성을 위한 종합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다음 화 예고] 메이커 월드, 비즈니스 월드①1인기업에서 유니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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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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