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추억과 함께 사라지다, 천안 벨벳언더그라운드
빛바랜 추억과 함께 사라지다, 천안 벨벳언더그라운드
2019.01.10 16:58 by 전호현

20대 중반의 어느 날, 제주에서 10대를 함께 보냈던 고등학교 친구 두 명과 천안에서 조우한 적이 있었다. 직장에 막 들어가 천안 근처로 발령 받아 투덜거리고 있던 친구. 그리고 기타리스트의 길을 가겠다며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더니 다니던 학교를 돌연 그만두고 천안에 있는 학교에 재입학한 친구. 한창 고시공부에 몰두하는 척 하던 나는 둘이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3시간 가까이 지하철을 타고 천안으로 내려갔더랬다. 그때의 기억을 안고 다시 방문한 천안은 당시 허름했던 모습과 달리 화려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KTX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서울까지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이 된 천안. 오늘은 이 변화한 도시, 지방순회 세 번째 LP BAR 천안 벨벳언더그라운드를 소개한다.

 

전체적으로 우드 인테리어다.
전체적으로 우드 인테리어다.

헛걸음을 막기 위해 미리 예약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저 근데 이제 곧 가게를 정리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정리? 예상하지 못했던 답에 마음이 급해졌다. ‘다른 곳으로 행선지를 바꿔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진행을 해볼까?’ 인터넷에 별다른 정보도 없었고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마음을 빼앗겼던 곳인데. 그렇게 고민하다 유난히 살가운 사장님의 목소리만 믿고 일단 KTX에 몸을 실었다. LP BAR를 운영하는 분들 대부분이 어려운 시절이라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함께.

 

입구에서 반기는 포스터.
입구에서 반기는 포스터.

신도시의 불빛이 반짝 거리는 이른 저녁, 가게에 첫 손님으로 들어섰다. 한창 오픈 준비 중인 사장님. 생각보다 훨씬 젊은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LP를 좋아해 20대에 4년 정도 LP BAR에서 일하다가 직접 운영에 나선 지 2년 정도 지났다고 했다. 전에 일하던 사장님이 인수한 것을 다시 인수했다는 이 가게는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지만 이름은 변하지 않았다.

 

도서관처럼 빼곡하게 정돈된 LP.
도서관처럼 빼곡하게 정돈된 LP.

촘촘히 꽂혀 있는 LP를 마주한 BAR는 꽤 넓었다. 스피커는 그 양옆을 호위하듯 감싸고 있었다. 혼자 오는 40-50대 손님들이 많다고 했다. 방문한 날도 BAR는 금세 자리가 찼다. 스피커는 ALTEC A7. 혼(horn)이 달린 극장용 스피커답게 가게 전체를 따뜻한 음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음역을 강조해 튜닝을 심하게 한 모델들이 많이 있는데, 오래된 가게라 그런지 특별히 손대지 않아 오리지널에 가까운 음을 들려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웨스턴 일렉트릭 진공관 앰프로 고음역을 적당히 부드럽게 해주는 소리에도 만족. 신청곡을 특별히 가리지는 않지만 아이돌 음악과 트로트는 지양하는 분위기라고. 5000여장 되는 LP가 대부분의 곡을 연주해주지만 없는 곡은 바로바로 스트리밍 해준다.

 

다양한 와인 병들, 양 옆에 배치된 스피커.
다양한 와인 병들, 양 옆에 배치된 스피커.

조심스레 가게를 정리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사정이 복잡했다. 가게 운영과 관계된 갈등에 개인적인 일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꼬여버렸다. 다른 곳에라도 가게를 열어볼까 했지만 마음이 떠버린 터라 일단은 잠시 쉴 계획이라고. 그러면서도 이제는 단골이 많아진 가게를 그만 두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했다. 그렇지만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눴던 단골들이 사장님보다 더 아쉬운 것 같았다. 가게 한 구석에서는 파티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곳을 좋아하고 기억하는 모든 손님들과 마무리를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인증점인 만큼 기네스 생맥주가 맛있다.
인증점인 만큼 기네스 생맥주가 맛있다.

10여 년 전 친구들과 이곳에서 만났을 때는 각자 다이나믹한 인생을 경험하는 중이라 지금 이 나이에 어떻게 살게 될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는 모두 결혼을 하고, 한 친구는 아이도 있다. 천안에서 일하던 친구는 다른 곳으로 발령 받은 지 오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복잡하던 순간도 멀리 보면 걸어가는 길 중 한 구간일 뿐이었다. 그 지점이 쉼터로 기억될지 웅덩이로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기억하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니까. 지금 이 가게를 잠시 떠나는 사장님도 이 순간이 삶의 쉼터로 기억되기를 바래본다. 단순히 하나의 가게가 아닌 누군가의 감동이고 위안이 되는 소통의 공간이었기에 더욱.

 

1-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보실 분들은 하루빨리 방문하시길.

2- 와인이 잘 갖춰진 BAR. 가보실 분들은 하루빨리 방문하시길.

 

FOR 추억이 깃든 LP BAR의 마지막을 함께 하실 분들

BAD 다음에 가봐야지...

 

/사진: 전호현

 

필자소개
전호현

건설쟁이. 앨범 공연 사진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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