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에, LP카페 ‘소리’
시간이 머무는 곳에, LP카페 ‘소리’
2019.02.17 15:17 by 전호현

거의 3년 만인가. 이따금씩 통화로 언제 한 번 뵈어야죠라는 습관적 멘트만 주고받은 지 한참이 지났다. 그렇게 별다른 만남을 가질 일이 없었던, 아는 형님과의 인터뷰를 핑계로 전주를 내려가게 됐다. 술을 하지 못하는 형님 때문에 커피 마실 곳을 알아보던 중 LP 카페 한 곳을 찾아냈다. 오호라. 곧바로 전화를 걸어 방문을 타진한 후 전주행 KTX에 몸을 실었다. 지방 방문의 4번째 주인공 ‘CAFE 소리.

 

가지런히 정돈된 LP들.
가지런히 정돈된 LP들.

전주에 내려온 기념으로 형님과 한정식을 가볍게 먹은 뒤 ‘CAFE 소리로 향했다. 전주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형님의 차로 이동한 것이 못내 다행이었다. 대낮에 인터뷰를 하는 것도 낯설고 밝은 곳을 찍는 것도 오랜만이라 처음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의외로 구석구석에 찍을 만한 것들이 많아 금세 적응했다.

 

CD와 TAPE도 상당하다.
CD와 TAPE도 상당하다.

사장님이 커피를 처음 접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고 했다. 학창시절 커피방이라는 생소한 곳의 단골이 되면서 커피를 좋아하게 됐다고. 전주 시내에서 13년 정도 카페를 운영하다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은 지난해. 가게 앞으로 조그만 천이 흐르는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CAFE 소리는 밖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의 내부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사장님이 학생 때부터 모아온 LP2500장 가량 켜켜이 쌓여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CDTAPE가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사장님은 LP가 내는 소리에 푹 빠져 가게 이름을 ‘CAFE 소리로 지었단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쏠쏠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쏠쏠하다.

평일에는 지역 손님들이 많고 주말에는 관광 온 젊은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확실히 외진 곳의 가게들에게 도움이 된다. 스피커는 언제나 인기 좋은 JBL L113, 그리고 한때 금성모델이었던 판타지아 fe-330까지 총 4개로 구성돼 있었다. 2개의 턴테이블과 앰프가 카페와 어울리는 잔잔한 소리를 매끄럽게 재생해 주고 있었고, 창가에서도 음악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스피커도 적절히 배치돼 있었다. 대부분의 곡은 보유한 LP로 틀어주지만 가끔 없는 곡은 스트리밍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이전 카페에서는 LP가 걸려 있어도 신청곡이 별로 없었는데 이쪽으로 온 다음부터는 신청곡이 크게 늘어 바빠졌다고 한다.

 

JBL L113과 판타지아 FE-330.
JBL L113과 판타지아 FE-330.

가게의 마스코트는 돌로 만든 찻잔에 담겨 나오는 대추차와 쌍화차. 직접 달여서 만든다는데 그 진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맥주 대신 차를 마시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따스하게 드는 햇볕과 잔잔한 음악에서 어느새 한겨울을 지나 봄이 스며들고 있었다. 커피와 차의 가격도 상당히 저렴한 편. 가격이 비쌀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장님의 철학이다.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다양한 맛의 커피와 차를 대접하고 싶다고. 외곽에 위치한 이유도 이런저런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무척이나 진한 대추차와 쌍화차.
무척이나 진한 대추차와 쌍화차.

오늘 만난 형님은 첫 회사 입사부터 퇴직, 그리고 사업까지 오랜 시간 나를 신경 써준 고마운 분이다. 인자한 성격 탓에 항상 손해 보는 듯 살지만 본인의 일은 꼼꼼하게 해내는 사람.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형님 나이보다 지금의 내 나이가 훨씬 많아져 버렸다. 못 보던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이제는 서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와중에 나눈 대화는 커다란 안도감을 선사해 주었다. 그렇게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위로하고 안심을 가져다준다.

오늘 방문한 ‘CAFE 소리사장님도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시는 분이었다. 손님에게 차 한 잔 한 잔을 차분히 설명하고, 드립커피도 직접 내려 마실 수 있도록 가르쳐 주기도 한다. 이제 이곳을 1호점으로 삼고, 전주 시내에 2호점을 낼 계획. 2호점은 술에 중점을 두고 야간에 영업하는 곳이 될 거라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두 사람은 많이 닮아 있었다. 도전 자체를 넘어 그 과정에서 꾸준하게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분들, 두 사람의 인생 2막에 커다란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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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수동 빙수기로 뽑은 빙수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먹지 못했다.

여름에 가보실 분들은 도전하시길.

 

FOR 은은한 음악속의 한적한 휴식을 즐기실 분들.

BAD 한손에는 술, 다른 손에는 락!

다양한 커피, 전통차, 약간의 맥주 (여름한정 빙수)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소양로 264-17

 

/사진: 전호현

 

필자소개
전호현

건설쟁이. 앨범 공연 사진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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