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위한 기술, 구호식량의 모든 것
‘먹고 살기’ 위한 기술, 구호식량의 모든 것
2019.03.04 14:28 by 이창희

재난·재해 상황에 놓인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조건은 역시 먹을 것입니다. 흔히 물 없이는 3, 음식 없이는 3주를 넘기기 어렵다고 하죠. 그렇기 때문에 재난·재해 현장에 식수와 음식이 가장 먼저 보급되고, 각 나라 군대들도 비상상황에 대비해 전투식량을 충분히 비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평소처럼 밥을 지어 먹기는 어려운 법. 따라서 구호식량은 보관이 용이하고 유통기한이 넉넉하며 휴대 및 취식이 간편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는 구호식량의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과학적 원리도 숨어있습니다.

 

위대한 발명품 ‘통조림’은 사실 가장 대표적인 구호식량이다.
위대한 발명품 ‘통조림’은 사실 가장 대표적인 구호식량이다.

 

┃오래 보관하고 쉽게 조리한다, 구호식량의 조건

구호식량은 비상시를 대비해 비축해 놓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종류에는 크게 제한이 없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구호식량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먹는 것들이 재해·재난 현장에선 여의치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비상시의 현장 상황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이죠. 냉난방이 불가능하거나, 물이나 불을 사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덥고 추운 날씨에 쉽게 변질되는 음식은 구호용으로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게가 많이 나가거나 부피가 커도 문제가 됩니다. 이동 및 보관이 쉽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진공 포장 혹은 건조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어야 하고,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기본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열량이 높아야 하죠.

또한 약간의 물과 열만으로 조리가 가능해야 합니다. 조리 과정은 짧고 쉬울수록 좋죠. 여기에 조리 혹은 개봉 후에도 오래 보존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한 번에 모두 먹지 않고, 아껴 먹어야 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홍수나 태풍, 산불과 같은 재난·재해가 자주 발생하는데, 사실상 완전히 고립될 위기에 처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구호식량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죠.

반면 구호식량이 필수품에 가까운 나라들도 있습니다. 해마다 토네이도와 허리케인에 시달리는 미국에서는 주로 지하실을 대피소로 활용하는데, 여기에는 통조림을 비롯한 각종 구호식량이 비축돼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교육도 활성화돼 있죠.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일본 역시 관공서와 기업에서 재난에 대비해 구호식량을 넉넉하게 구비하고 있습니다. 유통기간이 임박하여 폐기처분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구호식량은 항상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강합니다.

 

미국의 지하실에 구비해놓는 품목들.
미국의 지하실에 구비해놓는 품목들.

 

┃전투식량의 역사가 곧 구호식량의 역사다

재난·재해에 대비한 구호식량의 개념은 현대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과거에는 굶주림이 익숙한 시대이기도 했고, 재난이 발생하면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죠.

사실 역사 속에서 구호식량의 조상격을 찾아본다면 전투식량이 가장 가깝습니다. 휴대성과 보존성 등 조건 면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죠. 예로부터 해외에서는 전쟁이 잦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군인들을 위한 전투식량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당시 보존 기술이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염장과 건조의 방법이 각광받았죠. 주로 소금에 절인 고기나 생선, 말린 견과류와 비스킷 등이 사용됐습니다.

일례로 중세 십자군 전쟁에선 현재의 건빵과 유사한 비스킷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아시아를 제패하고 유럽까지 침공했던 몽고군은 말 안장 밑에 말린 고기 가루를 보관하고, 이를 뜨거운 물에 타서 먹었습니다. 이처럼 비상식량으로 전쟁에 필요한 에너지를 비축하여 짧은 기간에 먼 곳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죠.

 

중세시대 몽고군은 말 안장에 식량을 보관하고 유럽까지 내달렸습니다.(사진: Equitrekking)
중세시대 몽고군은 말 안장에 식량을 보관하고 유럽까지 내달렸습니다.(사진: Equitrekking)

바이킹의 경우, 항해 중 잡은 생선을 포로 떠서 가지고 다니며 이를 비상식량으로 활용했죠. 오늘날과 가장 근접한 형태를 만든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육포·견과류·과일을 말린 뒤 빻아 기름과 꿀 등으로 뭉쳐 굳힌 종합 영양식을 주로 먹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흔적은 남아있습니다. 외침이 잦았던 조선시대에는 군량미를 인절미나 가래떡으로 만들어 휴대했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 매 끼니 밥을 지어 먹는 것이 쉽지 않으니 휴대와 보존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떡을 이용한 것이죠.

근대에 접어들어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전투식량은 비약적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보존성이 우수한 통조림이 개발돼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 도입됐고, 여기에는 갖가지 음식이 담겨져 군인들에게 지급되었죠.

보관기술의 발달로 전투식량은 보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합니다. 예컨대 레토르트 식품 형태로 비닐에 밀봉시키거나,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취식할 수 있는 것이 있죠. 그리고 물이나 불 없이 자체적으로 가열이 가능한 제품도 등장했습니다.

 

장기간 보존을 위해 레토르트 포장을 한 미군의 C-Ration(왼쪽)과 뜨거운 물을 부어 취식하는 대한민국 국군의 전투식량(사진:imagenesmi.com / Amazon,com)
장기간 보존을 위해 레토르트 포장을 한 미군의 C-Ration(왼쪽)과 뜨거운 물을 부어 취식하는 대한민국 국군의 전투식량(사진:imagenesmi.com / Amazon,com)

 

┃구호식량은 무조건 맛이 없다?

위급하고 열악한 상황을 대비해 만든 구호식량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공통적인 특징은 대체로 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맛까지 욕심내는 건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의외로 과학적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재난·재해 현장에 내몰린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과다한 취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발현되기 때문이죠. 고열량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입맛이 너무 돌아 한정된 식량이 조속히 바닥나는 것도 큰 낭패죠. 구호식량이 맛을 양보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물론 기술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구호식량은 식수가 부족한 상황을 고려해 만들기 때문에 소화 과정에서 물이 꼭 필요한 단백질은 최대한 배제합니다. 따라서 탄수화물과 당분을 중심으로 염분이 상당량 포함돼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죠. 적은 양으로 높은 열량을 내기 위한 방편이지만, 이렇게 만들어선 좀처럼 입맛을 돋우기가 어렵죠.

 

구호식량, 맛을 내주고 생존을 취하다
구호식량, 맛을 내주고 생존을 취하다.

과거 재난·재해를 대비하고자 사재기하던 라면이 구호식량으로 적합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라면 1개를 끓여 국물까지 모두 마시면 나트륨 1일 권장 섭취량의 90%를 넘게 됩니다. 만약 식수가 부족한 재난 현장이라면 갈증을 유발하는 라면은 최악의 메뉴가 되겠죠. 또한 구호식량으로 삼기엔 라면의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일상에서 마련할 수 있는 구호식량으로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부피도 작은 초콜릿이나 사탕, 시리얼 바(bar), 육포, 양갱 같은 것들이 좋습니다. 설탕 등의 단당류는 지방 다음으로 열량이 높고, 다른 영양소에 비해 소화와 흡수가 빠릅니다. 또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효과도 있어 고통을 경감시키고 생존 의지를 키워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곤란하겠죠.

 

*본 콘텐츠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공식블로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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