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과 한계가 공존, 스타트업 재팬을 톺아보다
잠재력과 한계가 공존, 스타트업 재팬을 톺아보다
2019.07.12 17:53 by 이창희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단행으로 인해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사실상의 금수조치가 이뤄지며 한국 경제가 휘청일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그만큼 일본의 경제력은 막강하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스타트업 분야에서 만큼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뒤처진 만큼 정부 차원에서의 의지가 대단하지만, 한편으론 후발주자로서의 한계 또한 뚜렷하다.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 스타트업의 현 주소와 앞날을 조망해본다.

 

저력의 일본, 스타트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일본의 저력이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 세계 4위 경제대국, 스타트업은 이제야 ‘기지개’

일본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자타공인 경제 강국이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군림하다 최근 중국·인도의 급격한 성장세에 4위로 밀려나긴 했지만, 여전히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일본이 최근 스타트업에 눈을 떴다. 서구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한국에 비해서도 한 발 늦은 감이 있지만, 스타트업 강국으로 올라서기 위한 움직임을 점차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의 중심에는 팔을 걷고 나선 일본 정부가 있다. 정부 주도의 투자와 육성이 시작된 한국과 유사한 형태다. 일본 정부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현재 5%에 그치고 있는 창업률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산업경쟁력 강화법’을 제정했다. 이어 지역의 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상공회의소와 지역 금융기관 등을 통해 원스톱 상담창구를 47개 지자체에 설치했다.

현재 1만개 가량의 스타트업이 있지만 세계적으로 성장한 기업이 거의 없는 점을 감안,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기업인 ‘유니콘’을 2023년까지 20개 탄생시킨다는 구체적인 플랜도 세웠다. 단순히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스타트업의 배출을 통해 창업하고 도전하는 기업가 마인드를 사회 전체에 이식하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이 2018년 J-Startup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모습.(사진: THE BRIDGE)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이 2018년 J-Startup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모습.(사진: THE BRIDGE)

초기인 만큼 일단 선진국의 로드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스타트업을 선발해 민관 공동 및 관계부처가 연계해 지원하고, 대기업·벤처캐피탈·엑셀러레이터 등이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세부적으로는 세제 혜택을 비롯해 각종 보조금, 사업화 공간, 사업화 절차 간소화, 해외 진출 등을 지원한다. 

외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빠른 근대화를 이뤘던 경험을 살려 양질의 해외 인력과 투자 유치를 위한 노력도 병행 중이다. 후쿠오카시를 포함해 곳곳에 창업 특구를 마련, 외국인 투자자의 체류를 최장 1년까지 보장했다. 원칙적으론 외국인이 일본에서 창업할 경우 ‘경영관리’ 재류자격을 취득해야 하지만 입국 관리국의 심사 전에 사업계획 등을 확인해 이 같은 혜택을 부여한다.

주변 대학들과 비즈니스를 연계하는 실리콘밸리 모델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도쿄대·토호쿠대·나고야대·규슈대·와세다대 등 5개 대학을 중심으로 산학협력을 꾀하면서 다양한 컨소시엄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의 역점 사업인 스마트시티 조성.(사진: 일본 국토교통성)
최근 일본 정부의 역점 사업인 스마트시티 조성.(사진: 일본 국토교통성)

| 초고령화와 재난이 낳은 스타트업의 약진

일본의 고령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속적인 저출산과 수명 연장으로 인해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30%대에 진입했고, 오는 2045년 4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도시에 비해 지방의 고령화가 심각한 상태로,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아키타현은 65세 이상 비율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처럼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일본 정부는 지방을 스마트시티로 탈바꿈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높은 노인 인구를 고려해 자율주행 공공교통 시스템을 마련하고, 의료와 간병 등의 서비스도 구축 중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업을 모두 국가 예산으로만 할 수는 없는 일. 일본 정부는 여기에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접목시키려 한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해 11월 ‘Startup X Act’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도쿄 소재 스타트업과 지자체들을 연계하는 대책을 내놨다. 이를테면, 구마모토에서 스타트업 ‘Z-works’가 다양한 센서를 활용해 원격으로 고령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툴을 만들고, 다카마츠시에서는 ‘에스큐비즘’이 VR을 이용해 가상 상점에서 인터넷 쇼핑몰 상품을 구매하는 기술을 선보였으며, 훗카이도에서는 ‘멜로디 인터내셔널’이 데이터 송신으로 가능한 의료 계측기와 원격의료 시스템 플랫폼을 개발해 보급하는 식이다.

현재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스마트시티는 도쿄 외곽 치바현 가시와시에 조성된 ‘가시와노하’다. 에너지와 식재료 생산, 산업 육성, 주민 건강관리까지 ‘자족 가능한 스마트시티’를 내세운다. 일본 정부는 도쿄 시내와 이곳을 연결하는 특급열차를 놓고, 대형 쇼핑몰과 병원·호텔·도서관 등 각종 인프라를 구축했다. 

 

가시와노하 스마트시티의 모습.(사진: 가시와노하 홈페이지)
가시와노하 스마트시티의 모습.(사진: 가시와노하 홈페이지)

그러자 각종 첨단기술을 무기로 갖춘 스타트업들이 하나 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 업종 별 공유오피스, 스마트 헬스, 원격의료 등을 스타트업들이 담당한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10여 년 전 인구 1000명에 불과했던 작은 마을이 이제는 1만명이 사는 수도권 위성도시가 됐다. 

지구상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국가 특성상 이를 해결하기 위한 스타트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자연재해를 기술로 극복하기 위해 창업한 스타트업을 이르는 ‘감재(減災) 스타트업’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동일본 대지진을 몸소 겪은 시마다 마사유키는 스타트업 ‘원테이블’을 창업, 재난 현장에서 섭취할 수 있는 구호식량을 개발했다. 물과 전기·가스 공급 없이 먹을 수 있고 5년간 비축이 가능한 ‘방재 젤리’가 가장 대표적이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에서는 우주식으로도 연구가 진행 중이다.

 

구호식량으로 판매되는 ‘방재젤리’.(사진: 원테이블)
구호식량으로 판매되는 ‘방재젤리’.(사진: 원테이블)

도요타자동차 출신의 야마모토 겐이치는 지진 발생 직후 전력 공급이 가장 어렵다는 점에 착안, 리튬이온 건전지를 만드는 스타트업 ‘I‧D‧F'를 설립했다. 그는 쓰나미에 휩쓸렸을 때 물에 뜰 수 있는 좌석시트 커버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지진 발생 후 20분 이내에 쓰나미로 인한 침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거나,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스타트업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 여전히 ‘창업’ 보단 ‘취업’…갈 길 먼 ‘J-startup’

이처럼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빠르게 성장 중이다. 지난 2017년 기준 일본 내 총 벤처투자 금액은 2791억엔(약 2조8000억원)으로, 약 2조4000억원의 투자를 기록한 한국과 비슷한 규모를 나타냈다. 기존의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한국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 5년 전과 비교해 벤처투자 금액은 430% 증가했고, 일본벤처캐피털협회(JVCA) 회원사는 67곳으로 전년 대비 20% 늘어났다. 

하지만 빠른 성장세에 비해 아직은 성장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은행이 최근 발표한 기업환경평가 연례보고서 ‘두잉 비즈니스(Doing Business)’에 따르면 일본은 창업환경 측면에서 190개국 중 106위에 그쳤다. 경제력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국가치고는 창업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나타낸다.

정부가 앞장서서 규제를 풀고 시스템을 갖추고는 있지만 여전히 행정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인재들을 수급하기가 매우 어려운 여건이다. 여기에 폐쇄적인 기업 문화와 생계형 직종에 집중된 창업, 제조업에 집중된 수출 등도 창업 분위기 조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카드나 디지털 결제 수단 대신 현금 사용률이 크게 높은 탓에, 이커머스나 핀테크 스타트업의 성장도 더딘 편이다.

 

G20 국가별 기업가정신 발현 동향(사진: London Business School, 일본 종합연구소)
G20 국가별 기업가정신 발현 동향(사진: London Business School, 일본 종합연구소)

성장세가 가파른 것으로 평가받는 투자 역시도 아직 ‘화력’이 부족하다. 소프트뱅크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규모의 VC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의 역할 못지않게 덩치 큰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줘야 하지만 아직은 스타트업에 대한 의구심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

모험과 위험에 부정적인 국민성도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전을 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대학 졸업 후 창업보다 취업을 선호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 청년층의 창업 관심도가 12%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실제 2018년 일본의 창업율은 5.6%로, 미국(9.3%)·영국(14.3%) 등 스타트업 강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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