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변화시키는 한 평을 꿈꾸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한 평을 꿈꾸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한 평을 꿈꾸다
2015.01.16 16:10 by 윤민지
 

건물주는 갑작스레 임대료를 올렸다. 그것도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 아버지의 식당이 잘 되어 가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는 결국 식당을 접어야만 했다.

"넌 이렇게 살면 안 돼"

식당 가스통 옆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부여 잡고 한 말을 소년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계속 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이 크구나' 생각했던 소년은, 어른이 돼 유휴 공간을 재활용하는 사회적기업 '페어스페이스(Fair Space)'를 이끌어 가게 됐다. 바로 구민근 대표다.

“건물주가 ‘임대료 못 내면 나가’라고 하면 나갈 수밖에 없는 시대였어요. 아버지와 같이 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이들의 불만이랄까요? 이걸 공간 기부 활동을 통해 풀어보고 싶습니다.”

 

페어스페이스 구민근 대표


  | 공간은 최소한의 ‘권리’이다  

‘소유의 공간에서 공유의 공간으로’,  공간 기부 캠페인을 벌이는 페어스페이스(Fair Space)의 대표 슬로건이다. 구민근 대표는 공간을 “꿈을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라고 말했다. 공간 기부를 통해 공간 기부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간을 공유하는 사회를 조성하면 단지 공간이 없기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으리라 믿는다. 구 대표에게 공간 기부는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 무상으로 공간을 나눠 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간 기부는 한 인간이 사회에서 꿈을 키우고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주는 최소한의 ‘복지’입니다. 대학생이면 공부할 수 있는 도서관, 음악을 하고 싶다면 편하게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공간, 요리사가 꿈이면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꿈을 꿀 수 있잖아요.”

구 대표는 대학원생 때 퍼블릭 디자인(Public design·공공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도시 경관, 공공시설 등을 효율적으로 디자인함으로써 사람들의 생활이 더 나아졌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무실 임대료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대학원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싼 금액이었다. 결국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던 경험은 그에게 깊은 의문을 남겼다.

“공간을 얻지 못하는 것이 개인이 풀어야 할 문제인지, 아니면 국가에서 공간 복지라는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는 게 맞는 건 지 생각하게 됐어요.”

  | 삶을 변화시키는 공간 ‘페어스페이스’  

2013년, 구민근 대표는 페어스페이스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주로 도시의 유휴 공간을 공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했다.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가 많은 공간인 카페, 웨딩홀, 갤러리 등을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공간을 연결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뿐 아니라 먹고 살 수 있는 기회도 원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자신이 만든 물건을 판매하면서 수익도 얻고 일도 할 수 있다면, 결국은 사람들이 필요한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과 같다고 판단했죠.”

구민근 대표는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만큼 아이디어도 많았다. 그를 만났던 작년 12월 26일, 청계천 광장에서는 ‘청계 함께 누리는 사회적 경제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페어스페이스와 (주)착한엄마가 운영하는 행사에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기업 등 사회적 경제를 실천하는 주체들이 대다수 참가했다. 판매처가 없는 사회적 기업은 이곳 사회적 경제 장터를 통해 새로운 판로를 모색할 수 있다고 한다.

 

(왼쪽) 한복 전문점 <젊은 그들> 진성희 대표, (오른쪽) 페어스페이스 구민근 대표


 

지난 해 개최한 ‘덕수궁 페어’ 역시 착한엄마와 함께 했다. 사회적 경제 주체들의 오픈마켓 운영 경험이 있는 착한엄마와 공간 기부 활동에 노하우가 있는 페어스페이스의 성공적인 협업이었다. 서울시는 덕수궁 돌담길을 내어주고, 현대자동차에서는 4000만 원을 후원했다. 덕수궁 페어에서 발생한 매출은 2억이 넘었다.

“덕수궁 페어샵에는 보통 70여 개 팀이 참가합니다. 저희는 공간을 제공하고 참가자들은 자신의 물건을 판매하죠. 많을 때는 하루에 100만 원 넘는 수익이 날 때도 있어요. 수익이 나면 판매자는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해요. 제품군이 한 개였다가 세 개가 된 분도 봤어요. 더 나은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지요.”

 

2014 덕수궁 페어샵 (사진 제공 : 페어스페이스)


 

기존 공간을 공유하는 활동을 넘어, 구 대표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한 평 샵’ 매대 제작이다.

“잼을 맛있고 기발하게 만드는 친구가 있었어요. 딸기잼과 포도잼이 층층이 쌓여 있어서 딸기잼을 먹고 나면 포도잼이 나오는 제품이예요. 헌데 좋은 상품이지만 판매처를 찾기가 쉽지 않았죠.”

구민근 대표는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평’(3.3㎡)만이라도 판매할 공간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구 대표가 개발한 접이식 매대인 ‘한 평 샵’의 탄생 스토리다. 평범한 사각형 상자처럼 보이지만, 상자 벽면을 하나씩 펼치다 보면 어엿한 매대가 된다. 페어스페이스는 앞으로 한 평 샵을 공급해 판매자가 자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접이식 매대 '한 평 샵' (사진 제공 : 페어스페이스)


  | 사람들 마음 속의 철옹성  

“공간 기부 캠페인을 재미있게 알리려고 팔찌, 부채 등을 만들어 거리에서 나눠 드린 적이 있어요. ‘당신이 왜 내 공간을 기부하라는 얘기를 하느냐?’ 질문하는 분들도 계셨고,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어요. 2013년에 서울시가 페어스페이스를 공유 기업으로 선정한 후 ‘공유’에 대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사회적 인식이 낮은 탓인지 페어스페이스를 시작하고 1년 정도 지나도 기업을 운영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일이 생겨나지 않았다. 사업 지원금도 끊기고, 수익도 바로 발생하지 않아 힘들었던 시기다. 구 대표는 “그나마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덕에 생활비는 벌 수 있었다” 며 웃었지만,  "다른 일을 할까 고민 한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 놓았다. 결국 구 대표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인생이 두 번이라면 사회적 기업 활동이 아닌 다른 일을 했겠죠. 그런데 한 번이잖아요. 한 번이라면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하자,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지요.”

구 대표는 사회적 기업가를 꿈꾸는 청소년을 모아 ‘소셜 잼(Social Jam)’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이 사회적 가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앞서 현장에 뛰어든 선배로서 조언도 아끼지 않는 맞춤형 아카데미다. 구민근 대표는 청소년들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잠도 못 잘 정도로 바쁘고 힘들다고. 하지만 청소년들이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할 거냐?" 물으면, 대답은 언제나 “그렇다”이다.

  | 그래도 다시, 희망  

구 대표는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고향인 부산에서 아버지와 함께 ‘행복 떡 나눔’ 행사를 연다. 800여 명 분량의 떡과 차를 구 대표의 아버지가 사비로 준비한다. 떡과 차를 행인에게 무료로 나눠준 지도 7년째다.

“처음에는 ‘왜 줄까? 팔려고 하는 거 아냐?’라는 눈초리를 받았어요. 사비로 떡, 차를 준비하고 그걸 조금씩 나눠주니까 이상하게 여기는 거죠. 그렇지만 한두 해 지나가니 작년에 왔던 분이 또 오셔서 새해 인사를 하고 가세요. 나누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한 번 두 번 경험 하고 나면 자신도 충분히 나눌 수 있다는 식으로 바뀌는 겁니다.”

 

2013년 12월 31일에 진행한 '행복떡(차) 나눔 캠페인' (사진 제공 : 페어스페이스)


나눔 문화를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구 대표에게 "우리나라가 정말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할 것 같은가?" 물었다.

페어스페이스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어요. ‘철옹성처럼 서 있는 벽을 처음에는 허물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벽마다 열 수 있는 문을 두고 싶다’고. 우리나라가 예전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졌다고는 하나 아직은 먹고 사는데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요. 스페인의 협동조합인 ‘몬드라곤’은 무려 7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시간이 흘러 연대하는 경험이 두텁게 쌓인다면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구 대표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사람이 예전과 다르게 바뀌었을 때다.

“2014년, 서울 관악구 소상공인회와 함께 소상공인 성장지원 프로그램 ‘관악 마에스터 페어’를 열었어요. 처음에 소상공인들은 서로 경쟁만 했어요. 사흘 정도 지나고 나니 상인들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앉아만 있던 사람이 일어서서 손님을 접대하고, 어떻게 하면 더 팔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장사가 잘 되는 곳 옆에 가서 살펴보기도 해요. 이처럼 페어스페이스를 통해 사람이 바뀌는 모습을 눈으로 보면 정말 최고죠. 등을 타고 올라오는 짜릿함이 장난 아니에요.(웃음)”

서울시의 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청년정책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구민근 대표는 목표가 있다. ‘공유공간 허브센터’ 설립이다.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유휴공간 정보를 모두 모아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센터로, 구 대표는 “공간 제공도 ‘복지’라는 차원에서 센터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고 했다.

  | 모두에게 공정한 공간을 위해  

물었다.

"어릴 때부터 사회를 바꾸는 일, 지금 페어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일과 같은 직업을 가지리라 예상했나요?"

"전혀요."

어린 시절 구민근 대표의 꿈은 축구선수라고 했다.

"하루에 도시락을 세 개씩 갖고 다니며 축구를 했어요. 오전 수업 전에 첫 번째 도시락을 먹은 후 축구 하고, 점심시간에 두 번째 도시락을 먹고는 반 별로 축구를 했죠. 야간자율학습 전에 마지막 도시락을 먹고 또 축구를 했고요."

축구가 좋았던 그가 지금은 사람이 바뀌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축구장에서 선수들이 공정하게 경기를 펼치고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워나가듯 구민근 대표가 나누고자 하는 공간 역시 꿈을 꾸는 사람들의 공정한 경기장이라는 점은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다시 물었다.

"지금의 꿈은 뭐죠?"

“누구나 청계광장이나 남산에 대한 추억이 있을 거예요. 사람들의 추억이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 자기만의 시간을 쓸 수 있으면서도 언제나 열려 있어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랍니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