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 남짓 공간에서 이어가는 이재민들의 불안한 삶
한 평 남짓 공간에서 이어가는 이재민들의 불안한 삶
한 평 남짓 공간에서 이어가는 이재민들의 불안한 삶
2015.01.20 17:38 by 조철희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경의초등학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겨울방학으로 한산한 여느 초등학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수십 대의 차량이 들어선 운동장은 이미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고, 각종 민간단체들이 차려 놓은 부스들이 즐비했다. 지난 10일 오전 발생한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고 이재민들의 임시 대피소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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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아파트 화재 이재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는 체육관으로 들어서면, 입구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볼 법한 대형 온풍기가 놓여 있다. 순간 훈기가 전해지지만 이마저도 몇 걸음을 떼어 놓으면 서늘한 공기로 바뀐다. 체육관의 층고가 높아 실내 전체를 데우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 두껍지 않은 단열매트 위로 텐트 70여 동이 늘어서 있다. 이재민들이 밤낮을 지내는 공간이다. 노란색의 일률적인 겉모습 만큼이나 그 속도 다들 비슷하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두터운 이불과 구호물품 상자, 물 병 몇개 등이 보인다. 각자의 공간에서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던 이들이 지금은 한데 섞여 똑같은 이재민 신세다. 말 그대로 ‘하루 아침’의 일이다. 이재민 144명(15일 현재)이 경의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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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내는 딸이 걱정돼 왔어요. 모든 것이 답답하고 불편하죠. 어떻게든 해결 될 때만 기다리는데….”

강원도 동해에 사는 강숙희(68, 가명)씨는 엿새 째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홀로 화재 사고를 겪은 딸 정미연(35, 가명)씨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다. 강씨는 나지막히 “불 났다는 소리 듣고는 전화기도 못 챙기고 그냥 나왔다더라” 말하며 화재 당시의 상황을 대신 전했다. 정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옷만 빌려서는 겨우 직장에 나가는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민의 3분의 2가량이 그와 같은 20~30대로, 대부분 직장인이다. 낮시간의 텐트는 절반 정도 비어 있었다.

오후 3시경, 운동장 대한적십자 급식차 안이 분주하다. “한 끼에 200~300명 분을 준비해야 하니 서둘러야 해요.” 한 봉사자가 커다란 솥을 씻으며 말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바로 저녁 준비에 들어가는 듯했다. 운동장에 서서 시선을 조금 먼 곳으로 옮기면 15층짜리 해뜨는마을아파트의 상층부가 눈에 들어온다. 이 아파트도 이번 화재 피해를 입은 곳으로, 경의초등학교와는 300미터 거리다. 새까맣게 타버린 화재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재민들이 이곳에서 하루에도 수 십번은 마주할 풍경이다.

 

사진 왼쪽부터 해뜨는마을아파트, 원룸 건물, 드림타운아파트, 그리고 불이 시작된 대봉그린아파트. 드림타운과 대봉그린은 얼핏 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똑같이 생긴 두 동의 건물이 1.5미터가량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위치해있다.


  | 시커먼 재와 독한 냄새만이 남아있던 화재 현장  

이재민대피소에서 발을 돌려 화재 현장으로 향했다. 5분여를 걸었을까. 골목 어귀서부터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냄새가 현장에 다다랐음을 알린다. 불이 시작된 10층짜리 대봉그린아파트 좌측으로 같은 10층 건물인 드림타운아파트, 4층짜리 원룸, 15층 높이의 해뜨는마을아파트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건물들 간의 거리는 불과 1~1.5미터 정도. 벽면은 온통 시커멓게 그을렸고, 일부분은 골조마저 내려 앉았다. 맞은 편에는 요양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불길이 더욱 번졌다면 사상자 수도 크게 늘어났을 것이란 생각에 아찔했다.

현장은 엄격하게 통제돼 있었다. 건물 주변으로 폴리스라인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앞을 경찰 십여 명이 지키고 있다. 이 곳에 살던 주민은 본인 확인을 거쳐 경찰과 동행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때마침 이재민 박명자(62, 가명) 씨가 세탁 봉사를 나온 봉사자 너덧 명과 현장을 찾았다. 양해를 구한 후 이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에는 아직 유독가스가 남아 있어 마스크를 써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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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불이 난) 대봉그린이랑 우리 아파트 사이에 다른 건물이 두 채나 더 있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옮겨 붙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건물로 향하며 박 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해뜨는마을아파트 14층에 거주했다고 한다. 입구에 위치한 주차타워는 문이 열린 채 철제 구조물들이 뒤섞여 어그러져 있었다. 미처 빼지 못한 차도 있는 듯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독한 냄새가 느껴진다. 열린 창문으로 한기가 들어 실내는 싸늘하다. 엘리베이터 문에 붙은 공고문들이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던 곳임을 알리고 있다. 멈춰 선 엘리베이터를 등지고 계단을 올랐다. 한 층 두 층 오를 때마다 풀어 헤쳐진 소방호스와 깨진 창문, 나뒹구는 신발 등이 눈에 들어 온다. 5분여를 올라 14층에 닿았다. 복도는 아직도 물기가 남아 축축했고, 몇몇 집들의 현관문은 강제로 연 듯 찌그러져 있다.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는 박 씨를 뒤따랐다.

집 안은 온통 검은색을 뒤집어 써 어두웠다. TV, 밥솥, 침대, 소파 등 가전제품이며 가구들이 하나 같이 타거나 그을려 쓸 수 없게 된 모양새다. 벽은 내장재까지 다 타 앙상한 모습을 드러냈고, 한쪽 벽면은 아예 뻥 뚫려 있다. 그 밑으로 10층짜리 드림타운아파트가 내려다 보였다. 창문을 따라 시커멓게 그을린 흔적이 역력했다. 며칠 전 벌건 불기둥이 솟았을 자리다. 박 씨는 휴대전화 불빛을 비춰 옷가지들을 살폈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골라낸 옷들을 비닐봉투 네 장에 나눠 담고는 집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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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개 건물 300세대 태워… 왜 피해 컸나?  

지난 10일 오전 9시 20분경, 의정부시 의정부동에 위치한 대봉그린아파트 1층 주차장의 오토바이에서 시작된 불이 주차된 차량 10여대를 태운 뒤 건물 전체를 뒤덮었다. 불은 순식간에 주변 건물로 옮겨 붙어 인근의 아파트 2동과 단독주택 2동, 다가구주택 1동을 더 태웠다. 4명의 사망자와 126명의 부상자를 냈고, 소방서 추산 90억 원의 재산 피해를 입혔다. 이로 인해 발생한 이재민은 288세대 368명에 이른다. 불은 주차된 오토바이의 키박스 부분에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발화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도시형 생활주택이라는 새로운 주택 유형을 도입했다. 도시민의 생활패턴 변화로 1~2인 가구 증가세가 뚜렷해지면서 이들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도시형 생활주택이란 도시에 건설하는 85㎡ 이하, 20세대 이상 300세대 미만의 소형 공동주택을 말한다. 정부는 저렴한 주택을 신속히 공급하고자 건축물간 거리 규제, 소음 보호 기준, 주차시설 건설 기준 등 일부 건설기준을 완화했다. 그리고 몇몇 완화된 기준이 이번 화재의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되고 있다.

피해를 입은 아파트 3개 동도 지난 2011년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허가받은 시설물이다. 처음 불이 시작된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아파트 간의 거리는 약 1.5미터. 2~6미터의 이격거리를 갖는 아파트와 달리 좁은 건물간 거리로 불이 쉽게 확산됐다. 부족한 주차공간도 빠른 화재 진화를 방해하는 요인이 됐다. 현행법상 전용면적 60㎡ 이상의 아파트는 세대 당 1대 이상의 주차면을 확보토록 하고 있으나, 도시형 생활주택은 지역별 조례에 따라 세대 당 0.1~0.5대 분만 마련하면 된다. 총 88세대가 입주해 있던 대봉그린아파트도 부족한 주차공간으로 많은 차량들이 인근 도로에까지 주차해오던 상황. 이는 소방차의 신속한 현장 진입을 방해했다.

 

해뜨는마을아파트 14층에서 내려다본 모습. 옥상이 보이는 건물이 10층짜리 드림타운아파트다.


 

현행 소방법상의 허점도 드러났다. 스프링클러는 11층 이상 고층 건물부터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10층 높이의 대봉그린아파트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불이 시작된 주차장에 스프링클러만 있었다면 불길이 초기에 잡힐 수도 있던 터라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한편, 두 아파트의 외부 마감재는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지어졌다. 이는 콘크리트 벽에 스티로폼을 대고 시멘트를 덧바르는 공법이다. 시공 비용이 저렴하고 공기도 단축된다는 점 때문에 많이 쓰이지만,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는 맹점이 이번 사고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불과 수 분만에 가연성 스티로폼을 태우며 불길이 건물 전체를 뒤덮었고 인근 건물로 옮겨 붙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외부 마감재에 대한 규제는 30층 이상의 주거시설에만 해당된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전국적으로 약 35만 세대가 지어졌거나 공급될 예정이다. 이 중 60퍼센트가 수도권에, 30퍼센트는 서울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까지 서울에만 도시형 생활주택 6천여 동 10만2천여 세대가 보급됐거나 그럴 예정이며, 이중 80퍼센트에 해당하는 8만3천여 세대가 10층 이하의 건축물이다.

 

이재민대피소가 있는 경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화재현장이 그대로 보인다. 이재민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을 마주할 풍경이다.


  | 갈 곳 정해지지 않은 이재민들  

임시 거주공간 제공 등 이재민들이 하루 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을 수 있도록 대책이 강구되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때문에 많은 이재민들이 초등학교 강당과 교실에 들어찬 텐트 안에서 불편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마저도 초등학교가 개학을 하면 비워줘야 한다. 현재의 이재민대피소는 오는 25일에 철거된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의정부 실내체육관이나 306보충대가 다음 후보지로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확실히 정해진 바는 없다”고 밝혔다. 의정부 실내체육관으로 옮기면 답답한 텐트 속 생활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에서 소요산 방면으로 두 역 떨어진 녹양역과 버스로 15분 거리로, 교통 불편이 가중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말 해체된 306보충대는 여전히 군사시설로 남아 있다. 이재민들에게 얼마큼의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인지는 미지수다.

 
필자소개
조철희

늘 가장 첫번째(The First) 전하는 이가 된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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