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열차’ 중국 스타트업, 다음 역은 ‘버블붕괴’
‘초고속 열차’ 중국 스타트업, 다음 역은 ‘버블붕괴’
2019.11.11 21:00 by 이창희

2014년 다보스 포럼에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대중창업, 만인혁신(大众创业, 万众创新)’을 언급했다. ‘대중의 창업, 만인의 혁신’이란 뜻을 가진 이 슬로건에는 창업을 새로운 국가적 과제로 삼은 중국의 야심찬 의지가 담겼다. 의지는 곧 정책이 됐다. 국가 차원에서 창업을 독려하고 지원을 쏟아 부었다. 많은 젊은이들은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중국은 ‘유니콘’의 둥지로 거듭났다.

하지만 5년이 흐른 현재 상황이 달라졌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다양성이 실종되고 혁신이 사라졌다. 이는 실적 하락과 투자 감소로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과의 무역전쟁은 장기화되고 있다.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중국 창업 생태계에 적신호가 들어온 것이다.

 

위기 국면에 접어든 중국 스타트업.
위기 국면에 접어든 중국 스타트업.

┃꺼져가는 대륙의 기운

지난 5년 동안 중국 스타트업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창업하는 이들이 매년 30%씩 늘어나면서, 2015년 한해에만 443만개의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하루로 환산하면 1만6000개의 기업이 생겨난 셈이다.

14억이 넘는 거대한 인구에서 비롯된 시장 잠재력, 적극적인 창업지원 정책, 풍부한 기술 인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스타트업들은 승승장구했다. 지난 4월 발표된 후룬 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400여개의 유니콘 기업(자산가치 10억 달러 이상) 중 206개 기업이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 203개를 보유한 미국마저 앞지르는 수치다.

중국의 주요 도시들도 하나둘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거듭났다. 유니콘은 베이징(82개), 상하이(47개), 항저우(19개), 선전(18개), 난징(12개), 광저우(8개), 청두(4개), 홍콩(4개) 등 중국 전역에서 활약했다. 참고로 유니콘 5개를 보유한 서울은 전 세계 도시 중 16위에 불과하다.

 

2019년 전 세계 유니콘 조사 결과.(자료: 후룬 연구소)
2019년 전 세계 유니콘 조사 결과.(자료: 후룬 연구소)

여기까지는 별다른 위기의 조짐이 뵈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지표가 전부는 아니다. 중국의 스타트업 투자는 중국 정부의 진두지휘 아래 알리바바·텐센트 같은 거대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자국 대기업의 ‘묻지마’ 투자로 인해 기업 가치가 과대평가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 액셀러레이터 ‘플러그&플레이’ 중국 지사의 피터 슈 CEO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들의 기업 가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보다 2~3배 높게 책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일까? 중국을 제외한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글로벌 대체투자시장 리서치 기관인 프레킨(Preqin)에 따르면 중국 스타트업이 올해 2분기 동안 유치한 투자액은 94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413억 달러의 ‘반의 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VC(벤처캐피탈)는 2015년 487곳에서 올해 45곳으로 10분의 1 수준까지 감소했다.

 

중국 스타트업들은 자국 대기업의 투자를 먹고 자라났다.
중국 스타트업들은 자국 대기업의 투자를 먹고 자라났다.

┃무너지는 신화, 마르는 아이디어

샤오미는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을 대표하는 IT스타트업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스마트폰 제조 분야에서 세계 4위까지 치고 오르면서 다양한 가전제품으로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해 2분기 순이익이 20억 위안에 그치며 전년 동기간(146억 위안)에 비해 85%나 감소했다. 지난해 7월 상장 이후 1년 만에 주가도 반토막났다.

중국을 대표하는 공공자전거 서비스 ‘오포(ofo)’는 2014년 설립 이후 세계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다. 2017년에는 한국의 부산에서도 서비스를 개시했을 정도. 하지만 심각한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9월 신규 자전거 생산을 중단했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철수했다. 결국 2년 6개월 만에 중국 최대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에 인수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디디추싱은 2015년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투자한 두 회사가 합쳐 탄생하며 이목을 끌었다. 이들은 올해 상반기 최대 800억 달러 규모의 상장을 추진했으나 크고 작은 악재 속에 결국 연내 상장을 포기했다.

 

디디추싱은 중국 최대 차량 공유서비스 업체지만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디디추싱은 중국 최대 차량 공유서비스 업체지만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거대 스타트업이 포진한 ‘윗물’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중국 스타트업 전반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중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창업하기 좋은 나라’였다. 하지만 중국의 권위주의 정부는 지원만큼이나 규제도 강력했다. 방치된 자전거를 임의 수거하는 방침에 따라 공유 자전거 스타트업이 큰 피해를 봤고, 복잡하고 값비싼 인증 제도를 만들면서 인공지능(AI)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여기에 몇몇 플랫폼 서비스로 창업이 집중돼 다양성이 실종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사한 아이디어가 혁신으로 포장돼 자국의 막대한 자본을 수혈 받아 몸집만 불렸을 뿐, 탄탄한 수익 구조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투자업체 ‘TD캐피탈’은 “향후 5년 안에 중국 스타트업 대부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고, 홍콩 자산분석사 ‘차이나 에버브라이트’의 아이 위 수석도 “중국 AI 스타트업의 90%는 2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면역주사’ 경험 없는 중국, 이대로 주저앉나

중국은 90년대 개혁·개방 이후 초고속 경제 성장을 거듭해왔다. 여기서 얻은 자신감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업 생태계에도 인력과 자본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이는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부실공사가 건물의 균열을 가져오는 것처럼, 빠른 성장의 이면에 숨겨졌던 갖가지 위험들이 이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자국 스타트업에 뿌려졌던 막대한 자본은 마중물이 되지 못한 채 회수조차 어려워지고 있고, 외국 자본은 조금씩 이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중국 스타트업의 위기는 이제 시작됐다.
중국 스타트업의 위기는 이제 시작됐다.

무엇보다도 큰 위협은 바로 면역력이다. 근대화 이래 지금껏 경제적으로 큰 실패의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공교롭게도 향후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세계 스타트업의 상징인 실리콘밸리는 지난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다 거품이 꺼지면서 크게 주저앉았지만,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부활한 경험이 있다. 이때 정착된 문화는 지금까지도 실리콘밸리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위기 앞에 직면한 중국은 그 같은 경험이 없다. 더구나 미국과 달리 중국은 경제적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정치권의 입김에 취약하기 때문에 자생적인 극복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면역주사’도 맞지 못했는데 ‘치료주사’ 또한 불분명한 상황인 셈이다.

미국과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 역시 중국으로서는 처음 겪는 장애물이다. 양국이 치열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꼬투리’로 작용하는 요즘이다. 인권 탄압에 일조했거나 방치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제재를 받는 중국 스타트업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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