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다 보면 특이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각 현관문 앞에 잔뜩 쌓여있는 택배 상자들이 그것이다. 코로나19 국면을 맞아 물건을 ‘직접 전달’하지 않는 경향도 있지만, 실제 물동량 자체도 크게 늘었다. 통계청의 집계를 보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3월과 4월에 각각 전년 대비 11.8%, 1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온라인·모바일 쇼핑 시장과 택배 사업자만 때 아닌 호황을 누린다. 사회 전반적으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는 추세 속에서 해당 시장의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언택트’가 주요 키워드가 된 시대에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개념이 바로 온라인 주문 처리의 흐름, 즉 ‘풀필먼트(Fulfillment)’ 비즈니스다. 국내에선 물류창고 정도의 개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상품의 선별부터 보관, 포장, 배송까지의 모든 흐름을 스마트하게 처리하는 과정을 뜻한다. 특히 ICT 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맞춤형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으로의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아마존이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여기서 나왔다. 아마존은 지난 2006년부터 FBA(Fulfillment by Amazon)란 명칭의 풀필먼트 서비스를 도입했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드넓은 미국 전역에서 하루 배송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시스템의 힘이다.
선도 기업의 성공사례에 시대의 요구까지 더해지면서 풀필먼트는 이제 유통과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의 필수조건으로 자리매김했다. 알리바바가 중국 5대 택배기업 중 하나인 윈다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일본 야후재팬이 물류 기업 야마토와 손을 잡는 이유도 그래서다.
국내 역시 풀필먼트의 격전지가 된지 오래다.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풀필먼트 시스템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신선 식품을 전문으로 하는 ‘마켓컬리’는 이미 지난 해 9월, 자회사 프레시솔루션을 화물운송사업자로 지정받으며 물류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마쳤다. 이커머스 기업 ‘쿠팡’이 음식 배달 플랫폼 ‘쿠팡이츠’를 론칭하고, 반대로 배달 플랫폼인 ‘우아한 형제들’이 ‘B마트’를 통해 이커머스에 나서는 것도 각자 강점이 있는 물류망을 통해 풀필먼트를 갖추려는 포석이다.
최근 플랫폼 기반의 온라인 커머스로 기세를 올리고 있는 네이버의 참전도 눈여겨 볼 만 하다. 네이버는 지난 3월 위킵, 신상마켓 등 물류 기업에 투자를 하는 동시에, CJ대한통운과 파트너십을 맺고 24시간 내 배송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포탈 사이트인 네이버는 이미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결제 금액을 보유한 커머스 기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룡이 본격적으로 풀필먼트 센터를 확보해나간다면, 그 폭발력을 상상하기 힘들다. 네이버와 함께 국내 포탈을 양분하고 있는 카카오 역시 풀필먼트 시장 진출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향후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배송 서비스 중심의 경쟁이 될 것”이라며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부터 CJ대한통운 같은 택배업체까지 풀필먼트에 꾸준히 투자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풀필먼트 시장 규모는 올해 약 1조8800억원으로 추산되며, 2022년까지 2조3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기업과 고객을 잇는 풀필먼트를 통해 한국의 ‘아마존’으로 군림하게 될 곳은 어디일까? 벌써부터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