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은 녹음기를 들고 에버랜드 곳곳을 돌며 갖가지 소리를 담아왔다. 채집한 소리를 맞히는 게임 때문에 조별로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채집이 시작됐다. 낙엽 부수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철문 닫는 소리,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소리 등 각양각색의 소리들이 한 자리에 모아졌다.
“이건 나도 못 맞추겠다. 무슨 소리니?”
임경용씨가 박박 긁는 소리에 놀라 묻자 학생들은 “환경미화원 아저씨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소리”라며 “쪼그려 앉아 녹음하는데, 주변 잡음이 들어와 여러 번 시도했다”며 씽긋 웃었다. 듣기훈련의 교육적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영상 위주의 환경에 둘러싸인 학생들이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함으로써 감수성과 집중력, 상상력을 함양하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도 키울 수 있다.
이날 교육에 참여한 정현수(가명‧18)군은 “같은 재질도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이 있는 것처럼 소리가 들린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이희선(가명‧16)양은 “소리 자체가 이야기가 될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면서 “앞으로는 집에서 방문을 꽝꽝 닫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본격적인 듣기훈련에 앞서 학생들은 청소년이라면 꼭 알아야 할 채소와 과일을 관찰하고 관련 상식을 맞추는 미션도 수행했다. 빨래 방망이를 연상시키는 도깨비 방망이, 280개 이상의 씨앗이 가득한 호박 등 광활한 에버랜드가 품은 식물들을 직접 만져보는 ‘에버랜드 식물사랑단 프로그램’을 통해 식물도감을 꺼내 읽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프로젝트 구석ZINE’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이날의 다양한 체험을 바탕으로 11월 9일부터 글쓰기 과정을 시작한다. 이날 현장학습에 동행한 글쓰기 지도강사 장혜령씨는 “듣기‧글쓰기 훈련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한데, 학교에서는 이런 교육과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이어 “실제로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생각하고, 표현할 줄 아는 학생들이 글도 잘 쓴다”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표현력을 기르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는 무주YG재단은 YG엔터테인먼트가 지난해 설립한 비영리재단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와 협약을 맺고 인문학과 음악을 연계해 청소년들의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을 함께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구석ZINE’이 대표적인 성과다. 장래주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예술키움본부장은 “이번 프로젝트는 OECD 회원국 중 5년 연속 최하위 행복지수를 차지한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한 취지”라며 “시각예술 관련 교육프로그램은 많지만, 듣기와 글쓰기를 결합시킨 문화예술교육은 보기 드문 케이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