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고난을 예술적 동력 삼은 미디어 아티스트
‘아트 인 메타버스’展 노아 리 작가 인터뷰
정신적 고난을 예술적 동력 삼은 미디어 아티스트
2022.08.19 14:44 by 최태욱

[Artist with ARTSCLOUD]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국제 미디어 아트페어 ‘아트 인 메타버스’展에 참여했던 해외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제 머릿속은 늘 시달리고 있어요. 끊임없이 현실과 허구를 구별해야 하죠. 정신은 물론 육체적으로도 쪼개지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덕분에 강력한 동력이 생기기도 합니다. 내 속에서 폭발하는 분열과 왜곡의 힘이 예술적인 상상력을 한껏 부추기죠. 저의 예술작업을 창조적 생존 과정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노아 리(Noa Ry·42)작가는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예술가 및 비디오 편집자로 활동했던 베테랑 아티스트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존재감을 뽐냈지만 그 과정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정신분열 장애를 앓으며 끊임없이 편집증과 환각 증세를 겪어야 했기 때문.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핸디캡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간주했다. 예술가가 지닌 ‘다름’은 이내 독특한 개성과 남다른 세계관으로 굳어졌고 다양한 작품들로 구현됐다. “내 작품들은 내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당기고 찢기면서 폭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말에는 작가의 고난과 용기, 그리고 도전이 녹아있다.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국내에서 진행됐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 참여했던 노아 리 작가에게, 아픔을 승화시킨 작가의 예술 세계를 직접 들어봤다. 

 

노아 리(사진) 작가
노아 리(사진) 작가

-어떻게 아티스트가 됐나. 성장 배경을 이야기해 달라. 
“학문적으론 미술학 학사와 문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나의 예술적 여정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예술가가 된 것은 생존을 위한 투쟁 같은 것이었다. 오랫동안 정신분열 정서 장애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적인 갈등 혹은 고통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는 매우 괴로운 경험이다. 뭔가 갈기갈기 찢겨진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정신이 분열된다는 것의 의미는 수많은 정체성 사이의 균형을 끊임없이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감정과 생각을 밀고 당기며 그러한 균형을 꽉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나의 예술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예술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내가 가진 병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랫동안 증상을 겪다보니, 어릴 때부터 인간 내부에 얼마나 많은 차원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개인을 둘러싼 내·외적 세계가 무수히 잘게 흩어져 있는데다 급변하기까지 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매일매일 광기의 산책을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창의력으로 가득 찬 풀(pool)이기도 하다. 이런 감정들이 작품에 그대로 표현되고 있는 것 같다.”

 

노아 리 작가의 예술 세계가 잘 드러나는 작품 ‘조현병(schizophrenia)’
노아 리 작가의 예술 세계가 잘 드러나는 작품 ‘조현병(schizophrenia)’

-작품의 주제나 소재도 그런 상황과 직결될 것 같다. 
“내 증상의 특징은 왜곡과 분열이다. 그래서 나의 심리적 자아는 수십 수백 갈래로 나눠진다. 이런 특징을 묘사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고 싶었지만, 나를 만족시킬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용어가 없었다. 그래서 ‘분열하는 유기체’(Dividing Organism)라는 뜻을 축약해 ‘다이보그(DIVORG)’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이는 나를 온전히 표현하는 말이자, 내가 추구하는 예술관을 상징하는 말, 즉 주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정체성 역시 경계가 사라지고 뒤섞인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모두 ‘다이보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언급한 주제에 대해 주로 어떤 표현 방식을 활용하나. 
“나의 작업은 어떤 재료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디지털, 아날로그의 경계가 없다. 최근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그림이나 조각 같이 기존의 아날로그적인 오브제를 실시간 매핑하여 전혀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디지털 애니메이팅 작업을 통해 아날로그였던 예술 작품에 새로운 정체성이 부여되고, 일상 속에서 언제든 활성화된다. 기술이 생명을 가져다주는 과정은 내게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노아리 작가의 작품 ‘animalis’. 작가의 작업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병합이다.
노아 리 작가의 작품 ‘animalis’. 작가의 작업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병합이다.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예술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유는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예술은 마치 거울과 같다. 삶의 모습이 다양한 것처럼, 나의 예술 역시 수 천 가지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뒤섞여 작품으로 구현된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작품으로 소통하는 일이 제한됐었지만, 4년 전부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조금씩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서서히 바깥 세상에 익숙해져야겠다고 다짐했던 내게, 소셜미디어는 좋은 통로가 되어 주었다. 아직까지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용기를 내려고 노력한다. 사실 마스크에 가린 얼굴이나마 이렇게 공개하는 것도 이번 인터뷰가 처음이다.(웃음)”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자세도 인상적인데? 
“가정적인 환경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내 아버지는 1980년대에 이미 컴퓨터를 다뤘던 연구원이었다. 형제들 역시 둘 다 현직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가 기억하는 세상은 오랫동안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형제들만큼은 아니지만, 나의 DNA에도 기술의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내 작품에는 오래된 컴퓨터의 회로기판이나 키보드 같이 컴퓨터 부품들이 자주 쓰이는데, 이는 모두 아버지께서 주신 것들이다.”

 

노아 리 작가의 작품 ‘merge’. 작가는 분열과 결합에 대한 메시지를 주로 다룬다.
노아 리 작가의 작품 ‘merge’. 작가는 분열과 결합에 대한 메시지를 주로 다룬다.

-아츠클라우드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내 예술적 여정은 두 구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어둠의 시기다. 의도적으로 고립되어 대중을 피했던 시기다. 2017년이 됐을 때 처음으로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렸던 ‘Neuzeit ruins’ 전시회가 변곡점이었다. 이후에는 일부러 많은 전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벌써 8개의 전시회에 참가했다. 아츠클라우드의 ‘아트 인 메타버스’ 역시 그 중하나다. 한국에서 참가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 놀랐고,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의 출품작을 소개해달라. 
“‘황금시대(golden age)’라는 애니메이션 3D 페인팅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다. 작업한 건 두 달 정도지만, 아마도 내 인생 전부가 농축된 작품일 것이다. 나의 개인적 역사가 없었다면 이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기술적으로는 내가 만든 조각과 3D그림들을 3D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세라믹 플라스틱, 컴퓨터 회로 기판, 실리콘 등으로 작업했고, 스마트폰의 도구를 사용해 실시간 애니메이션 매핑 작업도 거쳤다. 예술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관점은 ‘나의 정신 건강 문제가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고, 어떤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가’하는 부분이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황금시대’는 내가 살고 있는 우주를 보여주고자 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트 인 메타버스’ 출품작 ‘황금시대(golden age)’
‘아트 인 메타버스’ 출품작 ‘황금시대(golden age)’

-해당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 
“우리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과 마주하는 순간 어떤 것이든 가면을 쓰게 된다. 그때마다 우린 어떤 가면을 써왔을까?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가장무도회에서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 또한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마음속이나 가상 세계가 아닌 ‘진짜’ 세계에 표현하는 경이로움을 말하고 싶었다. 얼마나 큰 자유를 선사하고 얼마나 홀가분한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지 말이다. 나의 생명을 유지시켰던 것은 ‘창의성’이었다. 그게 없었으면 나는 영혼의 어둠 속에 빠져 허우적대다 쓸쓸히 사라졌을 것이다. 창의적인 감정과 생각이 여러분 삶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된다. 작가로서의 포부를 밝혀 달라. 
“메타버스와 NFT의 붐은 우리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삶의 여러 영역에서 분열과 결합의 중요성이 더욱 빛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다이보그(DIVORG)’로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예술가의 길은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목적이고, 충동이며, 내 안의 속삭임이었다. 앞으로도 그런 힘에 이끌리는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내 안의 다양한 자아들이 던져대는 질문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 질문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사진: 노아 리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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