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쓰다’…글자에 미학을 담는 미디어 아티스트
‘아트 인 메타버스’展 안톤 프로스 작가 인터뷰
‘예술을 쓰다’…글자에 미학을 담는 미디어 아티스트
2022.08.24 12:18 by 최태욱

[Artist with ARTSCLOUD]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국제 미디어 아트페어 ‘아트 인 메타버스’展에 참여했던 해외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제 기억 속의 저는 평생 예술가였던 것 같아요. 시작은 다양한 그림이었죠. 길거리에서 그래피티를 그리기도 했고,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내 그림이 이상하단 걸 깨달았어요. 버려야 할 부분들이 자꾸 발견되더라고요. 단순화하고 최소화시키다보니 결국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닿았습니다. 그게 바로 ‘글자’였죠!”

안톤 프로스(Anton Fros ·25, 이하 안톤) 작가는 글자와 글꼴에 예술성을 더하는 타이포그래피 아티스트다. 2007년 그래피티(graffiti·벽면 등 야외 건축물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린 그림)를 계기로 예술에 눈을 떴고, 이후 거리 미술, 그래픽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쌓았다. 최근 그의 창의력이 집중되고 있는 곳은 글자와 글꼴이다. 글자의 모양을 추상화로 그려 내는 작가의 독특한 작업은 딱딱했던 글자에 미학의 날개옷을 입히고, 고유의 의미를 자유롭게 확장시키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국내에서 진행됐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 참여했던 안톤 작가에게, 그가 써내려가는 예술에 대해 직접 들어봤다. 

 

안톤 프로스(사진) 작가
안톤 프로스(사진) 작가

-타이포그래피 아트라는 장르가 흥미롭다. 어떤 예술적 여정을 거쳤나.
“2007년부터 거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동네 벽면이나 교각 같은 곳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소위 ‘그래피티’로 시작했다. 이 장르의 특징은 적극성과 강렬함, 그리고 화려함이다. 대부분 즉흥적이고 재빠르게 그려내기 때문에 강한 에너지와 속도감 있는 표현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래피티에서 채도 높은 색상과 강한 터치감이 돋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이후에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래피티를 오래했던 영향인지 과장된 표현들이 많았다.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덜어내는 법을 연구했고, 결국 미니멀리즘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 관심이 ‘글자’까지 이어진 것인가?
“맞다. 사실 그래피티를 했던 시절부터 글자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피티라는 장르 자체가 행위자나 모임의 이름을 그리는 등 ‘영역표시’의 뉘앙스를 갖기 때문에 글자를 기본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던 중 글꼴 자체에 흥미를 느껴서 한동안 폰트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직접 글자와 글꼴 구성을 개발했고 이를 배포하기도 했다. 같은 글자라도 표현에 따라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 흠뻑 매료됐던 시간이었다.”

 

안톤 작가의 데뷔 폰트 ‘real Russia’. 어느 도시에나 있을 법한 낡고 삭막한 건물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안톤 작가의 데뷔 폰트 ‘real Russia’. 어느 도시에나 있을 법한 낡고 삭막한 건물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하지만 폰트 개발과 예술 창작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실제로 폰트 작업이나 로고 디자인을 하면서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결국 내 마음 속에는 내 인생을 무엇과 연결시키고 싶은지에 대한 답이 명확했다. 바로 ‘예술’이었다. 예술가로서 더 발전하고 싶고, 나만의 철학이 담긴 작업을 이어가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글자의 형태를 가지고 그리는 추상화’라는 방향성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예술가로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포트폴리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소개한다면. 
“데뷔작인 ‘real Russia’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해당 작품은 내 작업을 대중화하는 데 도움을 준 폰트다. 글씨체와 글자 모양에 대한 아이디어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낡고 험악한 집들로부터 얻었다. 이 폰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인 ‘비핸스(Behance)’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이를 계기로 ‘사람들이 미학이 담긴 폰트를 충분히 좋아한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패션 분야와 협업한 작품들도 내 작업에 의미를 더했다. 창작자는 물론 대중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패션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당신이 입는 코트나 재킷, 운동화가 창의적인 글씨로 뒤덮여있다고 생각해보라!(웃음)”

 

안톤 작가와 패션브랜드와 협업했던 창작물
안톤 작가와 패션브랜드와 협업했던 창작물

-작품의 원재료가 글자인 만큼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수월할 것 같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큰 현대 미술관 중 하나인 ‘에라르타(ERARTA)’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 중에 ‘지방은 항상 춥다’(It's Always Cold in the Provinces)라는 작품이 있다. 이는 문자 그대로의 ‘추위’가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금속을 사용해 날 것의 차가운 이미지를 표현했는데, 문자 그대로의 의미까지 더해져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지방은 항상 춥다’(It's Always Cold in the Provinces)_ERARTA 소장
‘지방은 항상 춥다’(It's Always Cold in the Provinces)_ERARTA 소장

-아츠클라우드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는 어떻게 참가하게 됐나. 
“현재 나의 작품 대부분이 디지털 형식으로 제작되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디지털 아트 전시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바로 도전을 결심했다. 나는 늘 예술의 발전을 고민하고 있었고, 국제적인 형식으로 확장시키고 싶은 욕망도 높았다. 이 행사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 참가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아내가 한국계이고, 한국에 사는 친척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나에겐 인연이 꽤 깊은 나라다.(웃음) 실제로 진행된 전시는 생각보다 훨씬 멋졌다. 수많은 나라의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고 그 수준도 상당했다. 앞으로도 아츠클라우드와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의 출품작을 소개해 달라.  
“밥 말리의 노래 ‘Love the life you, and live the life you’의 가사를 가져와 애니매이션으로 만든 디지털 아트 작품이다. 전시회 참가를 결심했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밤을 지새우던 중 문득 떠오른 구절이었다. 작업을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준비해야할 것도 많았고 실제 스케치도 여러 번 이뤄졌다. 스케치가 완성된 후에는 포토샵과 애프터 이펙트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초기 구상부터 관객들을 기쁘고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만화경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역동적인 애니메이션을 통해 멋지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작품의 제목처럼 관객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 있었기를 바란다.”

 

'아트 인 메타버스' 출품작 ‘Love the life you, and live the life you’의 스케치(왼쪽)과 작업창
'아트 인 메타버스' 출품작 ‘Love the life you, and live the life you’의 스케치(왼쪽)과 작업창

-글자를 활용하는 독특한 작업이 인상적이다. 작가로서의 향후 포부를 밝혀 달라.
“나는 예술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축으로 삼고, 계속해서 발전해가는 창작자를 꿈꾼다. 처음 벽에 낙서를 했던 그 순간부터 그래픽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를 했을 때까지 늘 한결 같았다. 지금은 그 노력을 글자와 글꼴에 쏟고 있을 따름이다. 앞으로도 나만의 독특한 창의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연이 깊은 한국에서 나의 창의성을 선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아츠클라우드에게 거듭 감사드린다.”

 

/사진: 안톤 프로스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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