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에서 예술가로’…인생2막 그려가는 미디어아티스트
‘아트 인 메타버스’展 라리사 본다렌코 작가 인터뷰
‘건축가에서 예술가로’…인생2막 그려가는 미디어아티스트
2023.01.04 18:47 by 최태욱

[Artist with ARTSCLOUD]는 아트 특화 메타버스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국제 미디어 아트페어 ‘아트 인 메타버스’展에 참여했던 해외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인생 절반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어요. 저는 그렇게 쌓은 경험과 기술이 정말 마음에 들었죠. 일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그 기술까지 잊히고 싶진 않았어요. 그렇게 인생 2막이 시작된 거예요. 우리가 살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디지털 아티스트로서 말이죠.” 

라리사 본다렌코(Larisa Bondarenko, 56) 작가는 삶의 후반전을 일구고 있는 아티스트다. 건축가로서의 화려한 이력과 성취를 뒤로하고, 순수한 열정만으로 캔버스 앞에 다시 앉았다. 큰 욕심이나 조바심이 없는 작가의 자세는 그녀의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저 자신이 보는 대로 표현하는 것을 예술가의 미덕이라 여기고, 삶과 사람과 자연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얼굴을 다양하게 드러낸다. 지난해 봄, 국내에서 진행됐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도 자신의 심안을 여과 없이 드러냈던 라리사 작가에게, 그녀가 꾸려가는 인생2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라리사 본다렌코(사진) 작가
라리사 본다렌코(사진) 작가

-건축가로서 은퇴한 이후,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1년 전에 은퇴했다. 하지만 다른 길을 향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가로서의 인생이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이제 두 번째 파트를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공부했고, 꽤 소질도 보였다. 평생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일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어떻게 건축가가 됐는지 궁금하다. 
“멘토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던 당시에 모스크바 건축 연구소를 졸업하고 활발히 활동하던 건축가 이고리 세르게예비치(Igor Sergeevich)를 교수님으로 만났다. 그는 매우 지적이고 박학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것이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주었고, 그를 내 평생의 멘토로 삼게 됐다. 당시의 나는 매우 젊고 야망이 있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웃음)”

-은퇴 1년 만에 전직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나의 결정은 전혀 충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평생 그림을 그렸고, 은퇴 후에는 손자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면서 나 역시 작품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해왔다. 실제로도 손자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했다. 또한 나에게는 기술이 있었다. 인생 절반을 컴퓨터로 도면을 그렸지 않나. 건축가 시절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코렐드로(Corel DRAW)’ 프로그램으로 정물화를 그리곤 했었다. 어찌 보면 디지털 아트는 내게 굉장히 친숙한 분야다. 실제로 첫 한 해 동안 여러 대회와 전시회에 참가할 수 있었고, ‘Urban Plein air’ 대회의 ‘디지털 아트’ 분야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라리사 작가의 첫 작품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
라리사 작가의 첫 작품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

-작가의 예술관을 소개해 달라. 주로 어떤 주제를 다루나.
“그림을 그리는 기술은 친숙하지만, 작가로서의 예술관을 구축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그래서 시각 예술의 방향성을 모두 열어 놓고 고민을 했다. 나는 모든 예술가들이 그가 보는 대로 자신을 표현한다고 믿는다. 나에게는 사람이나 사물, 자연이나 현상들에서 굉장히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 그런 부분들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내가 보는 삶의 풍경화가 주된 테마로 자리 잡았다.” 

-그런 주제들이 잘 표현되어 있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는 ‘버려진 채석장(Abandoned Quarry)’이다.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그림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겐 이 작품이 그렇다. 매우 열심히, 그리고 보람차게 작업했다. 눈앞에 놓인 자연의 상태에 대한 나의 감상이다. ‘모닥불(Bonfire)’ 같은 그림도 같은 선상 위에 있다. 어느 가을, 온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온 숲에서 느낀 화사함, 우리가 옹기종기 모여 빵을 구운 모닥불을 표현한 작품이다.” 

 

라리사 작가의 최애작 ‘버려진 채석장’(왼쪽)과 ‘모닥불’
라리사 작가의 최애작 ‘버려진 채석장’(왼쪽)과 ‘모닥불’

-아츠클라우드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나는 디지털 아트에 진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향을 그저 트렌디하다고 여기지만, 나에겐 인생 그 자체나 다름없다. 건축가들은 컴퓨터로 일하기 때문이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 소식을 처음 봤을 때 무척 반갑고 흥미로웠다. 디지털 아트 분야의 세계 대회 아닌가.(웃음) 예술가 친구들과의 열띤 논의 끝에 참가를 결심했고, 바로 참가작까지 확정해 버렸다.”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의 출품작을 소개해 달라. 
“이번 작품은 ‘공원의 악사’(Musician in the Park)라는 제목의 디지털 드로잉이다. 매우 오랜만에 ‘코렐드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린 그림이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늘 실생활에서 내 작품의 줄거리를 찾는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손자와 함께 걷고 있는데, 공원에서 검은 안경에 모자를 눌러 쓴 한 노인이 벤치에 앉아 트럼펫을 불고 있는 걸 봤다. 그것이 나에게 왜 그렇게 흥미롭게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남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표현했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나이든 사람들은 더 대담해져야 한다. 인생은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많은 기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가치 있는 줄거리라고 믿었다.” 

 

아트 인 메타버스 출품작 ‘공원의 음악가’(Musician in the Park)
아트 인 메타버스 출품작 ‘공원의 음악가’(Musician in the Park)

-향후 어떤 아티스트로 관객들에게 기억되고 싶은가.
“예술은 자유롭다. 유화나 수채화나 풍경화 같은 그림 기법이 특정 작가에게 특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예술가가 품은 감상이나 아이디어를 가장 잘 구현하기 위해 선택해서 사용하면 그 뿐이다. 나 역시 지금은 디지털 아트를 좋아하지만, 언제든 새로운 표현 방법을 추구할 수 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것을 담아내느냐가 아닐까? 무엇을 마주하든, 늘 그 속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는 예술가로서 기억되고 싶다.”

 

/사진: 라리사 본다렌코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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