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의 주인은 나”…고용사회의 종말, 新프리워커의 시대를 열다
“내 일의 주인은 나”…고용사회의 종말, 新프리워커의 시대를 열다
2023.02.09 15:11 by 최태욱

연초부터 은행 발 ‘엑소더스’로 시끌벅적했네요. 국내 5대 시중은행에서 3000명이 넘는 인원이 희망퇴직으로 은행을 떠난다는 내용이었죠. 80년대 생까지 포함됐을 정도라니, 인력구조 개편에 대한 은행의 의지가 꽤 단호한 것 같아요. 하긴 금융 산업이 비대면‧디지털 우위로 바뀐지는 꽤 오래됐죠. 저조차 실물통장 구경한 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니 말이에요.

작금의 현상은 꽤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요. 은행은 ‘안정적인 직장’의 대명사였고, 행원은 ‘엄마 친구의 딸’이 주로 맡았던 직업이었으니까요. 뭇사람들의 부러움이었던 그들의 희망퇴직 릴레이, 뭔가 상징적인 신호처럼 보입니다.

현재 경영학의 창시자로 통하는 피터 드러커(1909~2005)는 일찍이 2002년 출간한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를 통해 “미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제, 임시직, 컨설턴트직, 용역 계약자로 일할 것”이라고 전망했었어요.  당시에는 무슨 얼토당토 않은 말인가했겠지만, 지금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죠. 실제로 ‘평생직장’이 사라진다는 말은 꽤 오래전부터 들었잖아요. 그게 요즘은 더 피부에 와 닿는 것 같고요. 고용 시장이 유난히 경직된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라면, 직장을 커리어의 계단 정도로 삼는 해외에선 더욱 명징하겠죠.

문득 얼마 전 막을 내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생각나네요. 특정 기업에 일생을 바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꽤나 구닥다리로 느껴졌던 건 회상 장면의 레트로한 질감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찐’으로 똑똑한 재능들이 재벌기업을 박차고 나와 창업하는 걸 수년 간 지켜봐온 저로선 더 큰 괴리감이 느껴졌어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회사에 대한 충성이 사그라지고, 정년이 무의미해지는 시대, 근속연수가 더 이상 자랑거리일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디에 충성하고 어떻게 삶을 일궈나가야 할까요? 거대 조직의 일원이라는 안도감, 어지간하면 자리가 보장된다는 안정감, 꼬박꼬박 월급 나온다는 안락감을 어떤 가치로 치환할 수 있을까요?

미래·경제학자들의 의견은 20년 전 피터 드러커와 비슷합니다. ‘프리에이전트(Free Agent, 이하 FA)’ 방식을 미래 고용사회의 대안으로 꼽죠. 문자 그대로 ‘프리(free)’한 시간‧장소‧조건‧사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늘 것이라고 말해요.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 프리랜서나 프리터족, 초기 스타트업이나 소호(SOHO), 1인 창직‧창업자, 디지털노마드, 지식기업가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될 겁니다. 말만 들어도 골치 아프고, 심지어 고달플 것 같다고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시계는 20세기 어디 즈음에서 멈춰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월급 노예 이제 그만!’…고용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
‘월급 노예 이제 그만!’…고용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

Sub. 1 고용사회 붕괴를 암시하는 몇 가지 지표들
고용사회의 변화를 캐치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몇 가지 용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첫 번째는 ‘온디맨드(On-Demand)’ 입니다. 지난 2002년 IBM에서 차세대 비즈니스 전략을 발표하며 세운 개념인데, 전적으로 이용자의 입맛에 맞춰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는 경제 시스템을 일컫는 말입니다. 단시간만 차를 대여하고 싶다하니 ‘쏘카’가 등장했고, 아침에 먹을 식재료를 새벽에 받고 싶다하니 ‘컬리’가 생기는 식이죠.  “정보를 가진 자가 권력을 갖고 그 권력은 점점 고객에게로 이동할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예견과도 일맥상통해요.

온디맨드 경제 시스템은 태생적으로 빠르고 민첩합니다. 친구 중에 늘 1.25배속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는 놈이 있는데, 어쩌다 기존 속도로 보게 되면 전혀 적응을 못하더라고요. 그게 정속인데도 너무 느리고 답답한 거죠. 기존 산업 구조에서 온디맨드 경제를 100% 커버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서인 것 같아요. 대기업에서 일하다 스타트업씬으로 진출한 이선윤(가명, 39)씨는 이에 대해 이렇게 애기해요.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각 조직의 업무와 이해관계가 복잡해요. 전담 조직, 타부서 C레벨 할 것 없이 보고 관문이 쪼개져있고, 전부 문서로도 남겨야 하죠. 그 과정에 복병도 많습니다. 사내정치나 예산, 하다못해 책임자의 취향도 걸림돌이 되죠. 스타트업에선 이틀이면 끝날 업무가 대기업에서 한 달 가까이 걸리는 이유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등장한 두 번째 용어가 바로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입니다. 목적을 위해 초소형‧초단기로 일하는 무대죠. 그 무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긱 워커’라고 부르는데, 앞서 언급했던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 프리랜서나 프리터족, 초기 스타트업이나 소호(SOHO), 플랫폼노동자, 1인 창직‧창업자, 디지털노마드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민감도와 속도 모두 온디멘드 시스템에 최적화되어 있죠.

그중에서도 가장 친숙한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생각해볼까요? 뭔가 특별한 재능이나 매력, 전문성이 있는 소수만의 영역인 것 같나요? 글쎄요.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인구 대비 유튜버 수 세계 1위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애매하네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긱 이코노미가 이미 왕성하게 작동하게 있다는 얘기일 거예요. 미국에선 전체 근로자의 40%가 긱 워커로 활동하며, 5년 내에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이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고스란히 우리에게 이식된 것을 감안하면, 우리 역시 이러한 수치와 무관하지 않겠죠.

전조가 되는 현상들은 이미 많습니다. 국내 전체 취업자 2600만 명 중 1000만 명이 긱 워커라는 조사 결과까지 있을 정도에요. ‘위워크’로 대표되는 소형 섹션 오피스 시장도 덩달아 폭발했죠. 2017년 600억원 수준이었던 시장 규모가 지난해 7700억원으로 급성장했어요.(KT경제경영연구소) 평균 근속연수의 하락 수치, MZ세대 3명 중 1명은 조기 퇴사한다는 통계 등도 이러한 세태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참고로, 지난해 국가공무원 7급 공채 시험 경쟁률은 43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하네요. 9급 역시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고요. 한때 ‘철밥통’으로 추앙받았던 그 안정감은 이제 더 이상 동시대가 추종하는 가치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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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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