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없는 디지털…서글픔은 그들만의 몫?
감정 없는 디지털…서글픔은 그들만의 몫?
2023.02.20 15:26 by 최태욱

“나이 먹은 사람 죽으라고 만든 거야 뭐야!”

최근에 본 신문기사의 이 한 마디가 쉽사리 잊히지가 않네요. 해당 기사는 키오스크(kiosk‧무인주문기계)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 세대의 불만을 다루고 있어요. 60대 10명 중 8명가량이 키오스크 때문에 음식 주문을 포기한 적이 있다는 얘기도 하고 있죠.

찜찜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필자 역시 비슷한 사례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에요.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어요. 대형가구점 내 식당이었는데, 점잖아 뵈는 노부부가 키오스크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죠. 제가 봐도 유난히 까다롭게 만들어진 기계더라고요. 그 사이 줄은 계속 길어지고, 노부부가 느끼는 황망함에 제가 다 불안할 정도였어요.

그들은 결국 주문을 포기한 채 자리를 떠났어요. 그때 어렴풋이 들렸던 하소연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어요. “아이고, 이제 밖에서는 뭐 먹지도 못하겠네…”라는 한탄. 차라리 화를 내지, 허탈한 듯 내뱉은 말이라 더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났고요.

사실 당장 부모님 걱정할 여유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저조차 모바일로 택시 잡는 문화가 익숙지 않아 크게 고생했었으니까요. 디지털은 그만큼 빠르고 광범위하게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고요. 디지털 소외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제 조금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단순히 불쾌하다거나 불편한 정도의 문제가 아닌,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가 돼버렸죠.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 현상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 현상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Sub.1 ‘D익빈D익부’…이 정도면 불편함 이상의 문제
흔히 작금의 시대를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란 용어로 설명해요. 그 용어의 제대로 된 정의가 무엇이든, 우리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저 ‘편리함’이에요. 손에 쥔 핸드폰 하나로 일상다반사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필자의 경우, 최근에 중고차를 팔면서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제대로 느껴봤어요. 모바일을 통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이 너무 편하고 깔끔하더라고요. 불과 몇 년 전에 중고차를 처분하면서 느꼈던 고단함과 속상함이 ‘원시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죠.

그렇게 만족스런 경험을 몇 번 하면, 더욱더 의존하게 돼요. “세상 좋아졌다”는 말을 되뇌면서 디지털 혁신이 이룬 성과들을 탐닉하죠. 쇼핑도 하고, 은행일도 보고, 뭔가 배우기도 해요. 심지어 새로운 사람도 온라인을 통해 만나죠.

그런데 문득 아찔하단 생각도 들어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의존도가 너무 높아졌다는 우려가 생기는 거예요. 당장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고 상상해보면 더 쉽게 실감이 나죠. 어디서부터 어떻게 복구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멘붕’에 빠지게 되니까요.

어쩌면 우리 부모님 세대, 소위 디지털 소외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심정이 휴대폰을 잃은 우리와 비슷할지 몰라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막막함을 일상 곳곳에서 느끼는 거죠.

물론, 디지털의 혜택을 누리는 건 나이‧세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얼리어댑터’ 성향의 시니어들도 얼마든지 계시고, 따로 배우려는 의지를 보이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적응하기가 어렵잖아요. 콘텐츠를 다룬다는 저조차도 MZ세대의 전유물이라는 ‘숏폼’ 콘텐츠는 낯설고, 그만큼 손도 잘 안가거든요.

진짜 문제는 낯섦과 무관심이 점점 불평등으로 심화된다는 점이에요.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만해도 외부활동에 제약이 참 많았잖아요. 백신접종을 증명하지 못하면, 식당조차 출입할 수 없었죠. 당시 식당에 가면 모바일로 백신 인증을 못하는 어르신들이 입구에서 실랑이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어요. 백신을 안 맞은 것도 아니고, 그저 디지털이 익숙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죠.

심지어 모든 디지털 활동의 기반이 되는 스마트폰이 없는 분들도 생각보다 많아요. 그 분들은 나라에서 보내주는 재난문자조차 받을 수 없죠. 이건 불편함의 정도를 아득히 넘어서는 일이에요.

동시대의 플랫폼 기업들은 너나할 것 없이 데이터 비즈니스를 추구해요. 유저들의 데이터로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서비스를 개발하죠. 디지털 소외가 시장의 소외를, 더 나아가 세상의 소외를 의미하게 되는 셈이에요. 복잡하고 어려워서,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던 벌이라기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질적인 소외 못지않게 중요한 게 정서적인 고립감인 것 같아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이슈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될 때 느끼는 외로움과 박탈감 같은 것들 말예요. 지난 ‘카카오 먹통 대란’ 같은 사건이 대표적이었죠. 최근 신드롬 수준으로 시끌벅적했던 ‘챗GPT’도 마찬가지에요. 해당 플랫폼의 혜택과 유리된 사람들에게 일련의 소동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그저 크나큰 외로움과 고립감만을 안기지는 않았을까요?

 

※해당 칼럼을 이어서 보고 싶다면...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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