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워커의 성공방정식…기호에서 수요를 찾아라
프리워커의 성공방정식…기호에서 수요를 찾아라
2023.02.28 15:46 by 최태욱

EBS의 ‘세계테마기행’ 시청은 필자의 하루 루틴 중 하나에요. 저녁 먹고 잠깐 쉬는 타이밍에 딱 걸리는 시간대라 보게 됐는데, 은근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여행 지역의 역사‧문화적 맥락을 깊이 있게 다루다보니, 보고 나면 뭔가 남는 게 있는 느낌이 강해요. 여행자 중심이 아닌, 오롯이 여행지 중심의 콘텐츠라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그런데 지난주에는 조금 특별했어요. ‘콜롬비아’를 다룬 회 차였는데, 여행지보다는 여행자가 훨씬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지역 곳곳을 안내하는 청년 여행자의 모습에선 ‘지금 이곳이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이 여과 없이 드러났어요. 그런 진정성에 매료돼 마치 관찰카메라를 보듯 그의 행보를 따라갔죠.

방송이 끝난 후 그 주인공을 직접 검색해봤어요. 통·번역가 채현석. 과연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지구과학을 전공한 공학도지만, 라틴 문화에 흠뻑 빠진 나머지 홀로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돋우고, 이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라틴 덕후였어요. 언어, 음악, 문화에 이르기까지 손 안대는 곳이 없을 정도에요.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수익 창출까지 이뤄내고 있는 프리 에이전트(FA)였죠. 단순한 여행 다큐 한 편에도 존재감이 남달랐던 이유가 있었네요.

 

세계테마기행 ‘내 인생의 피에스타 콜롬비아’ 편의 큐레이터로 나선 통·번역가 채현석(사진: EBS)
세계테마기행 ‘내 인생의 피에스타 콜롬비아’ 편의 큐레이터로 나선 통·번역가 채현석(사진: EBS)

| ‘덕력’이 곧 ‘업력’이 되는 사람들
채현석 씨는 소문난 라틴 문화 애호가에요. ‘라틴 피가 흐르는 한국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라네요. 스페인어에 능숙하고, 봉고나 콩가를 연주하며, 취미로 라틴 댄스를 즐기죠. 그의 ‘덕질’이 더 의미 있어 뵈는 이유는 이를 통해 다양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한때 대기업에 다닌 적도 있다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분야를 통해 스스로 업(業)을 일구고 있죠. 스스로도 ‘인디펜던트 워커(independent worker)’라는 정체성을 어필해요.

좋아하는 일이니 생산성 또한 얼마나 좋겠어요. 실제로 라틴 문화와 관련해서는 꽤나 인플루언서로 알려져 있더라고요. 앞서 언급했던 세계테마기행 프로그램에서 큐레이션 역할을 주로 맡던 분들이 관련 분야 교수들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채현석 씨의 영향력을 쉽게 가늠할 수 있어요.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나 봐요. 즐기면서 돈도 벌고 영향력까지 쌓고 있는 그의 모습이 내심 부럽기까지 하네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금 아이러니해요. 기호나 적성에 맞춰 생업을 정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우린 부러움을 느끼죠. 말인즉슨 우린 대체로 그렇지 못하다는 뜻일 거예요. “좋아하는 것도 일이 돼 버리면 골치 아파진다”는 너스레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해야 하는 일들에 발목이 잡혀요.

그렇게 현실과 절충하며 살기에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변화무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년 전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 10년 후의 고용사회 풍경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실제로 올해 초 미국의 노동부 발표를 보니, 자발적으로 시간제 근로자를 원하는 이들이 정규직을 선호하는 근로자보다 6배나 많았대요.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팬데믹 이후 일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바뀐 결과”라고 분석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는 거예요. 고용사회가 붕괴된다는 전망 역시 이러한 인식의 변화로부터 나오는 것이고요.

문득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이란 프로그램이 떠오르네요. 피지컬 끝판왕을 뽑겠다고 몸 좋은 사람들 100명을 모집했는데, 그 면면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기라성 같은 스포츠스타들 사이에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더라고요. 그 정도 몸을 유지한다는 건 말 그대로 ‘운동덕후’라는 얘긴데, 그게 온전히 직업도 될 수 있다는 상징 같은 장면이었어요. 자신이 흠뻑 빠져 있는 취미를 업으로 승화시키는 것. 이게 요즘 사람들이 가진 일에 대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경향은 앞으로 점점 더 도드라질 것 같아요. ‘덕업일체’의 시너지가 세상을 굴리는 동력이 되는 거죠. 늦게나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겠어요. 누구나 좋아하고 즐기는 것 한두 가지는 있잖아요. 비록 우주인이 되고 싶어 스페이스 엑스를 만든 일론 머스크 정도의 스케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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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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