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가 없이는 약속을 잘 잡지 못한다. 그냥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얘기하면 될 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럴 때는 구차한 핑계라도 하나 만들고 나서야 맘이 놓인다. 가장 편한 핑계는 역시 음식을 넘치게 해버리는 바람에 남았으니 챙겨주겠다는 핑계다. 메뉴로는 잼 같은 것이 제격이다. 한 번에 많이 만들어야 해서 처치곤란인 모습이 쉽게 그려지는 그런 메뉴들. 그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작은 병에 담아갈 수 있는 그런 메뉴들.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으니 약속 잡는 일은 대번에 성공이다. 쉬이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마음들은 잼과 함께 고이 병에 담아 가는 것이 편하다.
받는 사람은 그저 예쁘게 포장된 병만 알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모르겠지만, 나로서야 얼굴을 보았으니 된 일이다. 수고를 알아주지 않아 아쉬울 것은 하나 없다. 물론 그네들은 언젠가는 분명히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왜 만들어졌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그건 아마 내가 그들과 핑계 없이도 약속을 잡을 수 있는 때 즈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기 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임을 안다. 그런 시간과 대화들은 지난한 노력을 요구할 것이고, 나는 그 때문에 순간들을 후회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인지 모를 그 때까지 나는 계속 주방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핑계 없는 시간들을 함께 보내기를 바라면서.
재료
계란 2 알
계란 노른자 5 개
레몬 세 개
버터 60 g
설탕 110 g
레시피
1. 레몬은 깨끗하게 씻어서 한 개만 껍질을 갈아 제스트를 만든다.
TIP 레몬은 뜨거운 물에 잠깐 데친 후, 굵은 소금으로 문질러 닦고 흐르는 물에 헹군다.
TIP 제스트는 레몬껍질의 노란 부분을 그레이터에 갈아내거나, 얇게 벗겨낸 후 곱게 채쳐서 만든다.
2. 넉넉한 그릇에 레몬과 버터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집어넣는다.
3. 레몬즙을 모두 짜서 준비한 제스트와 함께 2에 넣는다.
4. 기포가 간간히 올라올 정도로 약하게 끓는 물에 3을 중탕한다. 거품기로 저으면서 어느 정도 되직한 농도가 될 때까지 조리한다.
5. 거품기에 진득하게 묻어나올 정도가 되면 냄비에서 그릇을 꺼내고, 버터를 넣고 완전히 녹아 섞일 때까지 저어준 후 식힌다.
TIP 식힌 후, 끓는 물에 넣어 소독한 유리병에 넣고 보관하면 좋다. 냉장 보관하면 두 주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
6. 크래커나 식빵 구운 것에 발라서 내면 좋다.
TIP 레몬 커스터드 크림을 바른 크래커는 홍차와 잘 어울린다.
/사진: 이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