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더 글로리’로 보는 학교폭력
[칼럼] ‘더 글로리’로 보는 학교폭력
2023.06.27 18:42 by 임한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이진 교수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이진 교수

드라마 ‘더 글로리’의 주인공은 학교폭력의 피해자다. 폭력을 견디지 못해 자퇴해야만 했던 18세 소녀는 서른여섯 살이 되어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들 앞에 나타난다. 철저하게 준비한 주인공의 통쾌한 복수, 그것이 바로 ‘더 글로리’에 열광하는 이유다. 학교폭력은 매일 반복되는 학교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 또 청소년기라는 시기로 인해 가해자가 받게 될 처벌이 크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때문에 학교폭력은 집요하고 잔인하고 지속적이다. 결국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미래에 끔찍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과제다.

# “연진아, 내 세상은 온통 너야.”

올 상반기 사회적인 이슈를 몰고 온 ‘더 글로리’의 유명한 대사 중 하나다. 학교폭력의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문동은(송혜교)은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학교폭력의 피해자다. 폭력을 견디지 못해 자퇴를 해야 했고 서른이 넘어 십수 년 전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들 앞에 나타난다. 치밀한 준비로 가해자들의 약점을 간파하고, 열심히 모은 돈과 안정적 직업을 무기로 복수를 한다. 시청자들은 가해자들의 끔찍하고 뻔뻔한 모습에 분노하다 그녀의 복수에 통쾌해한다.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폭력은 연령대와 상관없이 피해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악영향을 미치지만 학교폭력이 가지는 위해성은 다른 폭력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진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소아·청소년기 학생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따라서 이 시기의 폭력은 정상적인 발달을 막고 삶의 방향 자체를 변화시키는 등 피해자 삶을 통틀어 피해를 준다.

학교폭력은 집단 속에서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다. 가해자 자체가 집단일 수도 있고, 한 명이나 소수의 가해자에 의해 이뤄질 수 있지만, 대부분 다수의 묵인하에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폭력이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책에 빠지기도 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학교폭력은 지속적으로 행해진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사는 집을 기반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입학 후 학교의 구성원, 즉 친구들은 큰 변화 없이 몇 년 동안 이어진다. 때문에 한 번 시작된 학교폭력은 대체로 오랜 시간 지속되기 쉽다. 심지어 시간이 흐를수록 가해자들은 죄책감이 무뎌지고 폭력에 익숙해지면서 더욱 강도 높은 폭력이 행해질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학교폭력 피해자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면 가해자는 이를 알아채고 보복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뿐 아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순환구조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는 폭력으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망가진다. 가장 타격이 큰 것이 정신적 부분이다. 학교폭력에 오래 노출된 피해자는 우울증이나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을 쉽게 느끼게 되고 피해의식으로 인해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크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피해자인 학생이 타인에게 공격성을 보이며 가해자가 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프고 다치는 것이 두렵다. 어쩌다 다쳤다 하더라도 상처는 아물고 나면 그만이지만, 누군가 나를 고의로 다치게 하고 그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 공포는 이루 표현하기 어렵다. 그런데 심지어 그 장소가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하루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학교라면 더 무기력해질 수 있다. 여기에 나를 보호해야 하는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도 오히려 내 탓을 한다면, 친구나 가족마저 내 편이 아니라면 작은 희망마저 사라질 것이다.

학교폭력은 이렇게 피해자를 철저하게 망가뜨린다. 다행히 학교폭력에서 간신히 벗어났다고 해도 학교폭력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는 피해자를 괴롭히며 다양한 정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경험하는 정신질환으로는 ‘적응장애’, ‘급성 스트레스장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해리장애’ 등이 있다.

이는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하고 성장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학교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악화돼 ‘우울’, ‘불안’, ‘불면’ 심한 경우에는 ‘환각’이나 ‘망상’과 같은 심각한 정신 증상을 경험하기도 하고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경우도 흔하다.

학교폭력은 일관되고 강력한 대처만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다. 물론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미성숙한 소아·청소년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해결과 아직 발달단계에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가해자는 반드시 학교폭력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은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게는 자신이 피해자이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며 자신이 학교폭력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가해자도 처벌을 통해 타인을 괴롭히는 폭력은 잘못된 것이며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화재나 지진 훈련을 받듯 폭력에 대응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보호할 힘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힘이 부족하면 증거물을 잘 남기는 것도 배워야 한다. 가장 도움이 될 사람을 찾는 기술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빠르고 강력한 방법은 서로 돕는 것이다. 서로 돕는 환경에서 우리는 좀 더 편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그들만의 세상이다. 험하고 거친 세상에 나가기 전에 여러 가지 삶의 방법과 지혜를 배우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곳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처가 일관되고 공정해야 하는 이유다.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대한 공정성이 아니라 처리방식이나 처벌이 일관되고 공정해야 한다. ‘피해자가 어떤 아이였는지’나 ‘가해자의 장래가 유망한지’와 같은 이유가 아니라 오직 ‘학교폭력’이라는 범죄와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글=박이진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필자소개
임한희

산업경제부 국장. 중석몰촉 <中石沒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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