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란 신성시한 기물이나 성배처럼 신성시되었다]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고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음에도 작고 작가의 작품은 희소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조화가 의미 부여하기에 설득력이 부족했는지 ’에디션‘이 등장했다. 고인이 된 작가가 인정하지 않은 에디션에 의해 탄생한 로댕의 지옥의 문은 유족이나 정부가 가능케 했다.
신성시 되는 작품을 명품처럼 에디션으로 제작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이미 사진, 판화 등 평면 작품도 시리즈나 에디션 개념으로 작업한 작가도 있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소중히 관리하고자 하는 마음은 문화적 가치와 유산으로서 다음 세대 물려주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모든 작가의 작품이 신성시되고 유산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그럴지라도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존감은 신격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앞에서 숨도 크게 쉴 수 없는 엄숙함은 종교의 예배나 고해성사 같다]
엄재국 작가에게 작품은 계단 같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의 발판처럼 스스로 만든 작업을 밟고 올라가는 이유가 있다. 자유이다. 창작이란 자유로운 세상으로 입문하는 것임에도 도리어 창작의 연륜이 길어질수록 꾸미고 정착하는 작가들 본성이 드러난다.
[아트의 개념은 자유로움이다]
아트는 곧 스스로 자살하는 것이다. 자살(자유롭게 살아가는 것)하지 못해 제도와 규칙 윤리와 도덕 등을 내려놓는 창작의 짐은 수고와 땀을 흘리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
엄재국 작가는 아트라는 계단을 오르면서 기존 신성시되는 작품을 정육점 칼로 과감하게 찢어 저울에 올려 판매했다. 물감의 무게나 질량이 아닌 사고와 개념을 정리하여 판매했다.
도축된 정육점 생고기를 잘라서 판매하듯 작품을 찢었다. 첫 고객으로 신달자 시인이 캔버스 한 덩어리 30g은 300만 원에 전달되었다. 무엇에 홀린 듯 많은 분이 정육점 주인인지 화가인지 또는 작품을 전자저울에 올려 무게로 판매하는 신기함에 홀렸다.
현대미술이란 작업의 방식과 판매부터 달라야 한다. 이러한 화두가 실험적이라 할 수 없는 것은 첫 인사동 개인전에 선보인 캔버스를 길게 잘라서 만든 둥근 공은 엄재국 작가의 작품을 잘라 만든 것이다. 손으로 만지는 것도 허용하지 않은 미술관을 조롱하듯 작품을 발로 찰 수 있도록 한 기이한 발상은 뒤샹의 작품 [샘] 못지않은 걸작품이다.
작가의 열정과 아이디어 그리고 두려움 없는 용기를 지켜주고 알리는 것도 용기라 생각한다. 프리지와 수많은 아트페어에 포장된 작품은 많지만, 한국적 개념을 현대미술로 변환한 작가는 더러 있겠지만 깨거나 부수고 찢어서 작품을 판매하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신화가 되었다.
한편, 전시는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11일까지 열린다.